[비즈한국]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아마 지금 40대 전후의 성인이라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던 사람이 없을 것이다. 80년대에 젊음을 누렸던 이들의 슈퍼스타가 마돈나였다면, 2000년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니 앤 조지아’에서 10대인 딸 지니와 친구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레트로의 대명사’로 꼽고 그를 주제로 파티를 연다고 할 때, 30대인 엄마 조지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장면을 생각해 보라. 화려하게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나이를 먹고 활동이 뜸한가보다 싶을 때, ‘프레이밍 브리트니’라는 다큐멘터리가 왓챠 익스클루시브에 공개됐다.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일군의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브리트니에게 자유를!”이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잠깐,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옥에라도 갔나? 어안이 벙벙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명 ‘브리트니 해방운동’이라 불리는 이 시위는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된 아버지에 의해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현실을 알리고, 그에게 자유를 보장하라고 외친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2008년부터 ‘정신 불안정’을 이유로 아버지인 제이미 스피어스가 법정 후견인으로 지정되어 13년간 지속된 상태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650억 원대의 자산가인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여전히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으며 생활한다는 뜻이다. 사회활동을 왕성히 하던 만 39세의 여성이 말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년후견인 제도는 질병과 장애, 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성인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치매 증상을 보이던 노령의 재벌그룹 총수에 대해 자식들이 성년후견인 지정을 둘러싸고 분쟁이 있었고,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여배우의 성년후견인을 두고 가족 간 공방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에서 보이듯, 대부분 후견인 제도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타인의 보살핌을 꼭 필요로 할 때 불러오는 제도다. 그런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치매나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고는 들은 바 없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놀라운 점은 후견인 제도라는 것이 한 인간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다. 정신을 잃어가는 나이 든 노인의 경우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브리트니처럼 멀쩡하게 신체 건강한 성인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감옥이 따로 없을 만큼 억압적이다. 브리트니의 후견인은 브리트니의 신체와 재산에 관해 통제 및 관리할 수 있는데, 방문객을 통제하는 것부터 의료기록을 들여다보고 주치의와 상담할 수 있으며, 녹음과 투어와 계약을 진행할 수 있고, 신용카드도 해지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미성년자와 같은 신세라는 것.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후견인을 맡은 아버지는 딸은 자유로우며, 후견인 제도는 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강변하겠지만, 650억 원대의 자산을 가진 딸을 자신의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입장이란 것을 생각하면 의심의 눈초리가 가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다큐멘터리 초반 브리트니 해방운동을 벌이던 한 지지자의 말처럼, 과연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남자였어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성인, 심지어 아이를 둘 낳은 엄마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어쩌다 아버지를 후견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녀의 성장 과정과 커리어 전반을 훑는다. 보호자 역할을 했던 비서, 어린 브리트니를 발탁했던 아동 탤런트 에이전트와 음반 회사 마케팅 디렉터, 평론가, 패션 디렉터, 투어 디렉터 등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일했거나 그를 오랜 시간 봐왔던 이들을 인터뷰한다. 후견인과 관련해 일했던 변호사와 심지어 ‘파파라치’라 불리는 포토그래퍼와 비디오그래퍼의 인터뷰도 있다.
흥미로운 건 그 일련의 인터뷰를 좇으면서 우리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한 슈퍼스타를 어떤 식으로 ‘소비’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거다.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후견인 제도에 갇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상황을 언급하지만 그 후견인인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를 악당으로 규정짓고 그의 뒤를 캐는 데 노력을 할애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나오긴 하지만, 그보다는 제목처럼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인간을 대중과 사회가 어떻게 프레이밍(Framing: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보도할 때 특정한 프레임을 이용해 보도하는 것)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공공연하게 신체 부위를 거론하고, 옛 연인과 ‘관계’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를 묻는 매스미디어의 행태는 지극히 단편적으로 다뤘음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삭발을 하고, 파파라치의 차를 우산으로 공격하는 충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수없이 벌였음에도 누구도 브리트니의 정신건강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슈퍼스타의 망가짐, 몰락은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 꽤 돈이 된다(우산으로 차를 공격당한 파파라치 역시 돈이 된 사진을 건졌다는 발언을 남긴다)! 아주 짧게 보여주지만, 그 당시 언론과 대중과 사회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라는 인간의 흥망성쇠를 꽤나 가학적으로 즐겼음을 느낄 수 있다(돌이켜보면 나 또한 그랬다).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다루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도 엄청나게 폭발적이다. 해시태그(#)를 단 ‘프리 브리트니’가 소셜미디어에 쏟아졌고, 미국 하원의 청문회에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가 소환되었으며, 브리트니와의 관계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던 옛 연인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소셜미디어에 자신이 여성혐오 수혜자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그리고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가슴 노출을 시킨 재닛 잭슨)에게 사과문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74분의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지,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주워 담기에 급급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한 사회가 여성 연예인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넷플릭스에서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이제서야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온 사회가 사과를 건네는 느낌. 설령 그가 다시 활동하지 않는다 해도, 온전히 자유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으면 좋겠다. 미안했어, 브리트니.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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