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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리 은하계 중심에 '거대 원반'이 떠돌고 있다

원래 밝기의 97퍼센트나 어두워진 별 관측…아주 거대한 타원체가 앞을 지나간 것으로 추정

2021.06.21(Mon) 11:21:32

[비즈한국] 2015년 9월 천문학자들은 케플러 우주 망원경이 관측한 별들의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었다. 케플러 망원경은 별 곁에 외계행성이 돌면서 주기적으로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때 발생하는, 규칙적이고 아주 미미한 밝기 감소 현상을 포착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별을 하나 발견했다. 보통 아무리 큰 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도 행성에 비해선 별이 워낙 크기 때문에 별빛이 어두워지는 정도는 기껏해야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별은 밝기가 무려 20퍼센트 가까이 뚝 떨어지면서 확연하게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 급격한 밝기 감소는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지도 않았다. 분명 단순히 평범한 작은 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갔다고는 보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또 일반적인 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너무 급격한 밝기 감소였다. 대체 그 별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일부 상상력이 풍부한 천문학자들은 그 별 곁을 지나간 외계인들의 거대한 인공 물체 때문일 거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러 추가 관측을 통해서 별 주변에 넓게 퍼져 있는 혜성 무리에 의한 현상이었다는 쪽으로 정리가 되어가는 추세인데, 여전히 미스터리한 별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 요상한 별에게 WTF 별이라는 거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비속어처럼 보이게 의도한 것 같은 별명이기는 하지만, 점잖은 척하는 천문학자들이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이 별명의 의미는 ‘What The Flux; 대체 밝기가 왜 저래?’ 별이다.) 

 

별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상상 속의 인공 구조물 ‘다이슨 스피어(Dyson Sphere)’. 한동안 외계 문명의 인공물체 때문이라는 가설이 돌기도 했던 태비 스타는 아쉽게도 거대한 혜성 무리에 의한 현상으로 추정된다. 이미지=dotted hippo


그런데 최근 2021년 WTF 별을 능가하는 별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원래 밝기의 20퍼센트만 어두워졌던 WTF 별만 해도 큰 충격이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별은 97퍼센트라는 엄청난 밝기 감소를 보였다. 약 200일, 6개월에 걸쳐 밝기가 가파르게 어두워지며 원래 밝기의 겨우 3퍼센트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보이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밝기로 돌아오는 기이한 현상이 관측되었다. 그 이후로는 다시 반복되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이 별에게도 잘 어울리는 (그리고 덜 거친) ‘WIT(What Is This; 이게 대체 뭐야?)’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 별은 지구 밤하늘에서 궁수자리 방향으로 약 2만 5000광년 떨어져 있다. 정확히 우리 은하 중심부 부근에 위치한다. 우리 은하 중심의 이 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 은하 정중앙에 거대한 블랙홀 말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존재가 또 있는 것일까? 

 

우리 은하에서 발견된 미지의 거대 원반 물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변광성은 처음이야! 

 

천문학자들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VISTA 4m 망원경을 통해 주로 밝기가 변화하는 변광성들을 대대적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1929시간이 넘는 관측을 통해 하늘 전역에서 알려진 33개의 구상성단과 350여 개의 산개성단 속에서 10억 개가 넘는 별들을 관측했다. 이 관측 프로젝트를 VVV 서베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우리 은하 원반 남쪽과 은하 중심부에 집중해 대대적인 관측을 이어가는 더 확장된 VVVX(VVV eXtended) 서베이 관측도 수행하고 있다. 

 

각 사진 가운데 빨간 원으로 표시된 것이 별 VVV-WIT-08이다. 2012년 확연하게 밝기가 어두워지면서 거의 사라진 듯 보이다가 다시 2013년 원래 밝기로 돌아온 것을 볼 수 있다. 사진=ESO


이러한 대대적인 변광성들의 밝기 변화를 관측한 결과 천문학자들은 너무나 이상한 별을 발견했다. 그 별은 VVV-WIT-08이라 불린다. 이 별은 2012년 서서히 밝기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그해 4월 원래 밝기의 97퍼센트가 감소해 최저 밝기에 도달했다. 이후 서서히 밝기가 밝아지면서 원래 밝기로 돌아왔다. 총 6개월에 걸친 이러한 극심한 밝기 감소는 다른 그 어떤 별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아무리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별이라도 별 혼자서 이렇게 거의 사라지다시피 할 정도로 어두워지는 경우는 없다. 게다가 완전히 깜깜하게 사라졌다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래 밝기로 돌아왔다는 것이 더욱 수수께끼다. 

 

혹시 이 별 앞을 무언가 가리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 이 별은 굉장히 높은 밀도로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우리 은하 중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천체들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별이 가린다 하더라도 그 별도 아주 깜깜하지 않고 크기도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수백 일에 걸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별빛을 가리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평범한 다른 별이 앞을 가리고 지나갔다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주 거대한 거성 VVV-WIT-08 별 앞으로 훨씬 더 거대한 타원형의 무언가가 가리고 지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Amanda Smith

 

WIT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간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단순한 별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별빛을 97퍼센트나 가려야 하기 때문에 빛을 굉장히 잘 차단하는 가림막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또 아주 긴 시간 동안 별빛을 가려야 하기 때문에 그 크기도 별에 비해 훨씬 커야 한다. 천문학자들은 관측된 밝기 감소의 시간과 패턴을 통해 살짝 기울어진 채 찌그러진 타원 모양을 한 거대한 무언가가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갔을 것이라 추측했다. 우주를 떠도는 아주 거대하고 두꺼운 타원형의 별빛 가림판. 대체 무엇이 이런 가림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간 타원체의 정체는? 

 

천문학자들은 어린 아기 별 주변의 먼지 원반부터 작은 블랙홀 주변의 강착 원반, 아주 거대한 고리를 가진 떠돌이 행성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상황을 모델링해서 관측 결과를 재현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태양에 비해 훨씬 어린 갓 태어난 별 주변의 먼지 원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거대한 원반을 갖고 있는 어린 별들은 흔하게 발견된다. 우리 태양계도 오래전에는 아기 태양 주변에 두꺼운 먼지 원반을 에워싼 모습이었다. 

 

앞서 2015년 천문학자들은 아주 어린 갈색왜성 또는 거대한 행성으로까지 의심되는 천체 주변에서 아주 거대한 고리를 발견했다. 바로 마마제크의 별(Mamajek’s object)이다. 이 별은 아주 젊은 갈색왜성 J1407을 동반성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이 갈색왜성은 그 주변에 토성 고리의 200배가 넘는 아주 거대한 크기의 고리를 두르고 있다. 이런 거대한 고리를 갖고 있는 동반성이 마마제크의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복잡한 밝기 감소 현상이 관측된 적이 있다. 어쩌면 이번에 발견된 WIT 별도 이런 거대한 고리를 두른 어린 별이 앞을 가리고 지나간 건 아닐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토성의 200배 규모에 해당하는 아주 거대한 고리를 두르고 있는 갈색왜성 J1407가 배경의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아주 긴 시간에 걸친 복잡한 식 현상이 목격되었다. 사진=Ron Miller

 

이런 나이가 젊은 별은 대부분 우리 은하 원반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은 영역에서 주로 태어난다. 하지만 WIT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려면 우리 은하 원반에서 좀 더 멀리 벗어나는 길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려야 한다. 게다가 이번에 관측된 WIT 별의 밝기 감소는 다양한 파장대에 걸쳐 모두 동일하게 관측되었다. 그런데 만약 갈색왜성 주변의 크고 작은 먼지 입자로 이루어진 고리에 의한 밝기 감소였다면, 관측한 파장대에 따라서 빛이 가려지는 정도가 다르게 관측되었어야 한다. 따라서 WIT 별의 밝기를 어둡게 만든 범인은 이런 어린 별 주변의 거대한 고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반면 더 진화된 단계인 주계열성 이후의 별들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중심의 핵에서 수소가 아닌 헬륨을 태우면서 외곽의 수소 껍질층을 날려버리는 수평계열성(Hoziontal branch) 이후 단계의 별들은 동반성과 함께 쌍성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점점 진화가 진행되면서 동반성에서 물질을 빼앗아오면서 그 주변에 아주 두껍고 거대한 원반을 형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6년 확인된 별 TYC 2505-672-1도 이번에 발견된 WIT 별과 굉장히 유사하다. 지구에서 1만 광년 거리에서 발견된 별 TYC 2505-672-1은 두 별이 서로 69년을 주기로 함께 맴도는 쌍성이다. 그런데 그중 준왜성인 한 별 주변을 거대한 먼지 원반이 둘러싸고 있다. 이 거대한 원반이 다른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 최대 3년 가까이 별빛이 가려진다. 이는 지금껏 발견된 식 현상 중 가장 오랜 시간 이어진 기록이다. 

 

거대한 먼지 원반을 두른 채 동반성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3년 가까운 아주 긴 시간 동안 식 현상이 벌어졌다. 사진=Jeremy Teaford, Vanderbilt University


이번에 확인된 WIT 별의 밝기 감소 역시 이처럼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밝기 감소 폭도 굉장히 컸다. 앞에 무언가 가리고 지나가면서 벌어진 식 현상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아는 한) 앞을 가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달랑 별 혼자서 밝기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은 적어도 수십에서 수백 AU(지구와 태양의 거리) 크기의 아주 거대한 원반 형태의 무언가가 지나갔으리라 추측한다. 이는 사실상 우리 태양계 모든 행성들의 궤도가 통째로 쏙 들어갈 정도로 아주 거대한 크기다. 게다가 별빛을 거의 완전히 가릴 정도였으니 이 먼지 원반의 두께도 0.25AU가 넘을 정도로 아주 두꺼울 거라 추측한다. 

 

우리 은하 중심부로 접근하면서 별들이 빽빽하다. 영상=NASA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건 WIT 별의 밝기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패턴을 보면 그 별빛을 가린 존재가 굉장히 선명하고 딱딱한 경계를 가졌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먼지 구름처럼 경계가 모호하고 두리뭉실한 것이 아니라 훨씬 뚜렷한 경계를 갖고 있는 거대한 원반 형체의 무언가가 우리 은하 중심부를 떠돌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연히 은하 중심부에 있는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면서 그 거대한 실루엣의 흔적이 지구에서 포착된 것이다! 아주 높은 밀도로 거대하고 둥글게 뭉쳐 있는 땅땅한 원반 물체! 혹시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원반 형태의 거대한 비행 접시가 은하 중심의 블랙홀로 인해 제어를 벗어나 표류라도 하고 있는 걸까? 아주 거대한 우주 호떡이 우리 은하 중심부를 떠돌고 있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번 연구에서는 반 년에 걸쳐 WIT 별 앞을 천천히 가리고 지나간 존재가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지 못했다. 다만 그 존재의 대략적인 형태와 특징은 파악했다. 이 존재가 어떤 궤도를 그리면서 우리 은하 중심부를 떠돌고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 또 다른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은하 중심부는 아주 높은 밀도로 별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으므로 머지않은 미래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이 적지 않다. 

 

운이 좋아서 다시 한번 별이 거의 사라질듯 어두워졌다가 원래 밝기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진다면, 미지의 원반 물체도 결국 잡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 은하 중심부를 떠도는 우주 대왕 호떡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abstract/505/2/1992/6294924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abstract/482/4/5000/5162859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41/4/2845/1206172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16/04/aa26528-15/aa26528-15.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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