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은하는 납작한 원반 은하(Disk Galaxy) 중 하나다.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중심으로 별들이 둥글고 빽빽하게 모인 벌지(Bulge)가 있고, 그 주변에 별과 가스 구름이 납작한 원반을 그리며 모여 있다. 그 은하 원반 속에 살면서 은하 원반을 옆에서 바라본 단면의 모습이 바로 우리 밤하늘을 얇게 가로지르는 은하수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은하의 원반은 평평하지 않다. 감자칩처럼 뚜렷하게 뒤틀린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은하 원반의 워프(Warp)라고 한다. 우리 은하뿐 아니라 우주에 있는 거의 모든 원반 은하이 실은 이런 워프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더 정밀한 관측에 따르면 우리 은하 원반의 뒤틀린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뒤틀린 방향이 변화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살짝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 방향 자체가 주기적으로 회전하는 세차 운동을 하는 것처럼 살짝 뒤틀린 우리 은하의 회전축 자체가 주기적으로 회전하는 은하 규모의 세차 운동을 하고 있다!
지구의 자전축처럼 세차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 은하.
하루 24시간에 한 바퀴씩 자전하는 지구의 자전축은 사실 고정되어 있지 않다. 쓰러지기 직전의 팽이가 흔들리는 것처럼 지구의 자전축도 약 26000년 주기로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은 지구의 자전축을 쭉 연장하면 그 주변에 북극성이 놓여 있지만 약 14000년 전에는 거문고자리의 베가가 놓여 있었다. 그 당시에 밤하늘 일주 사진을 찍었다면 북극성이 아닌 베가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밤하늘이 담겼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은하 역시 이런 세차 운동이 확인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정밀하게 우리 은하 속 별들의 움직임과 위치 지도를 완성하고 있는 가이아 위성의 최신 데이터를 활용했다. 은하 중앙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별들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중심의 은하 원반에 대해 수직으로 얼마나 벗어난 곳까지 별들이 분포하고 있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우리 은하가 뚜렷한 워프 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우리 은하는 원반의 양끝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뒤틀려서 S 자로 휘어진 S-타입의 워프 구조를 갖고 있다. 실제로 이런 구조는 우리 은하뿐 아니라 얇게 옆으로 누운 방향으로 관측되는 대부분의 원반 은하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천문학자들은 은하 원반을 이루는 별들의 나이에 따라 워프의 분포가 어떻게 달라보이는지를 비교했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어린 별들만 보고 워프를 측정할 때, 그리고 나이가 많은 별만 보고 워프를 측정할 때 그 뒤틀린 원반의 경사와 방향이 달라진다. 즉 시간에 따라 은하 원반이 뒤틀리는 정도와 방향이 달라진다. 우리 은하 원반의 뒤틀린 방향이 계속 일정한 주기로 요동치는 세차 운동의 주기는 대략 6억에서 7억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태양계가 우리 은하를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1은하년(약 2억 년)의 세 배 정도에 달하는 아주 긴 시간이다.
왜 우리 은하의 원반은 춤추는 무용수의 주름진 치맛자락처럼 뒤틀린 채 긴 주기에 걸쳐 천천히 방향이 요동치고 있을까?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시되지만 우리 은하 워프의 기원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뮬레이션 연구에서는 수십억 년에 걸쳐 우리 은하를 꾸준히 맴돌고 있는 위성 은하들에 의한 중력으로 은하의 원반이 뒤틀렸을 거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분석에 따르면 궁수자리 왜소은하, 마젤란 은하와 같은 우리 은하 주변 위성 은하만 가지고는 이렇게나 오래 유지되는 안정적인 워프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아직은 이 흥미로운 구조의 기원에 대해 결말이 나지 않았지만, 최신 관측 결과를 통해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분명 우리 은하의 원반은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태양계는 춤을 추는 거대한 은하 원반의 치맛자락 가장자리에 매달려 다른 별들과 함께 요동치며 아름다운 군무를 완성하고 있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f356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8-0686-7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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