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창업기획자로 불리는 액셀러레이터(AC, Accelerator)가 300곳을 돌파했다. 올 3월 31일 기준 우리나라의 AC는 총 321곳에 달한다. 사업을 시작한 날부터 3년이 되지 않은 초기 창업자를 선발·투자하고 육성하는 것이 AC의 주된 업무다. 아이디어나 아이템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하거나 사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예비 창업자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들 중 하나인 곽성욱 시리즈벤처스 공동대표를 만났다. 곽 대표는 창업자들은 자신과 기업에 맞는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6월 곽성욱·박준상 대표가 공동 창업한 시리즈벤처스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지역 특화 AC다. 초기 투자 단계를 일컫는 씨드 단계와 본격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시리즈A 단계 중간에 있는 기업들의 투자를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부울경 특화 AC로 제조 스타트업 집중 투자
곽성욱 대표는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당시 미국 금융권에서 경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실물 경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금융권에서 일할 때가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이었다. 사람들이 클릭 몇 번으로 돈을 잃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봤다. 회의감이 들기도 하면서, 실물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곽 대표는 실물 경제에 관여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았다. 그는 “많은 사업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AC였다. 한국의 기업의 시스템을 잘 알 수 있고, 각 분야의 대표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서울에는 AC가 너무 많았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반면 그 외의 지역은 AC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고향인 부울경 지역 특화 AC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울경 지역은 오래전부터 제조업에서 강점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시리즈벤처스도 자연스럽게 투자하는 기업들의 절반이 제조업종이다. 곽 대표가 최근 관심을 갖는 분야는 모빌리티 서비스. 곽 대표는 “모빌리티 서비스는 최근 모호했던 규제의 경계가 명확해지면서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기업 간 인수합병이나 대기업 참전으로 스타트업과 제휴를 맺고 있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진입하기 좋은 시기고, 실제로 몇몇 기업에 투자했다. 내년쯤 투자 기업들이 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5년 차 AC인 곽 대표는 AC 대표 중에서는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하지만, 수많은 기업이 곽 대표에게 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 1년에만 수천 개 기업의 사업계획서를 들여다본다.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나이 어린 내가 투자자를 모집하고, 기업 대표들에게 투자를 권유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사업을 한다고 할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게다가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AC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였다. 기업 대표들이 투자라고 하면 방어적인 자세부터 취했으니까. 사기 아니냐는 말도 종종 들었다.”
그는 “AC는 재무적 투자자(FI, Financial Investor)와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로 나뉜다. 시리즈벤처스는 극단적인 FI를 추구하려 했다. FI는 사업권을 노리는 투자가 아닌 투자금에 대한 배당과 원리금 수익에 목적을 둔다. 특히 우리는 투자금 회수 기간을 타 AC보다 짧게 두고 있다. 철저한 기업 분석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생겼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은 수익을 얻으니 자연스럽게 투자 조합 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호재도 있었다.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핀란드 순방 경제사절단에 시리즈벤처스도 동행하게 된 것. 곽 대표 “언론 보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시리즈벤처스를 알릴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투자 시 AC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됐고, 투자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곽 대표가 AC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100%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는 “특정 재화를 만드는 1위 기술을 가진 기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시장의 발전 가능성은 최대 100억 원 정도라고 하자. 이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더라도 투자사는 관심이 없다. 시장이 작고 기업 성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투자사는 기업의 아이디어만을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별거 아닌 아이템이 수익을 많이 내고, 거액의 투자금을 확보할 때도 있다. 투자는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시장 규모, 투자 시기 등 고려할 게 정말 많다. 하지만 대표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왜 인정받지 못하는지에만 의문을 품는다. 투자자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서 곽 대표는 투자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대표’라고 말한다. 그는 “정말 진부하지만 액셀러레이터는 사람을 본다. 아이디어, 성장성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 기본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대표”라며 “우리가 기업을 판단할 자료라곤 사업계획서 정도다. 그다음이 대표인 거다.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들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회사의 비전에 대한 계획이 뚜렷한 대표를 원한다”라고 덧붙였다.
곽 대표는 기업 대표들을 만나며 항상 ‘착한 투자자’를 만나라고 조언한다. 그는 “계약 조건을 기업에 맞게 설정한다고 착한 투자자가 아니다. 기업의 상황을 이해하고 합리적이고, 명확한 해결법을 제시하는 투자자가 착한 투자자”라며 “지분만 축내는 투자자라든지, 독소 조항을 거는 투자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금이야 받을 수 있겠지만 후속 투자 등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 본인과 호흡이 맞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투자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유명한 투자사라도 본인과 투자심사역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사업 발전 가능성이 작은 반면 작은 투자사라도 대표와 합이 잘 맞아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투자를 담당하는 사람이 나와 호흡이 맞는지, 어떤 산업군에 주로 투자를 해왔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곽 대표는 “예전에는 정말 돈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놓친 기업들도 꽤 있다. 지금은 투자할 기업과 대표를 최대한 오래 보려고 노력한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대표가 명문대 출신이라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더라. 나와 잘 맞는 대표와 기업들을 찾기 위해 앞으로도 분주히 노력할 것이며, 사업하기 좋은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보탬이 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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