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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디 액트', 딸은 왜 헌신적인 엄마를 죽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동 학대와 청부 살인 사건…빼어난 싱크로율에 몰입도 극대화

2021.06.01(Tue) 10:53:50

[비즈한국] 온갖 질환과 병을 가진 아픈 소녀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딸인 그 소녀를 위해 헌신하는 엄마가 있다. 이들 모녀의 스토리에 감동하여 집을 지어주고, 기부금을 모아준 이웃과 대중이 있다. 그럭저럭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만한 감동적인 사연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동 학대와 살인사건이 끼어든다. 2015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일어난 충격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디 액트’의 이야기다.

 

2015년 미국에서 있었던 충격 실화를 고스란히 재현한 드라마 ‘디 액트’​.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으로 보이는 엄마 디디를 빼어나게 소화한 패트리샤 아퀘트와 삭발은 물론 실존 인물의 억양까지 디테일하게 구현한 조이 킹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사진=훌루 제공

 

미국 훌루(Hulu)에서 2019년 방영한 8부작 드라마 ‘디 액트’는 엄마 디디 블랜차드(패트리샤 아퀘트)와 딸 집시 로즈 블랜차드(조이 킹)의 관계에 집중한다. 2015년 6월, 디디와 집시의 집에 무슨 일인가 생긴 것 같다는 이웃집의 신고로 시작한 드라마는 이내 침대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한 디디 블랜차드를 비춘다. 다양한 희귀병을 지녀 휠체어 신세인 딸 집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과연 이 모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난 걸까? 디디는 왜 죽어야 했고, 집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모녀는 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행사로 새로운 집을 선물 받고 2009년 새로운 동네에 이사 온다. 방송사 인터뷰에 임하는 디디와 집시의 모습은 지극히 애틋하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생각에 기쁘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제일 친한 친구는 엄마인 걸요”라고 대답하는 딸과 “집시 엄마라서 행운이에요. 전 엄마가 되려고 태어났어요”라고 말하는 엄마, 이 얼마나 애틋한 모녀인가. 그런데 인터뷰가 끝난 뒤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제가 잘했나요?”라고 묻는 집시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집시 블랜차드는 온갖 질환과 병으로 휠체어 신세에 위 튜브로 식사를 공급 받는 처지다. 엄마 디디의 도움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어 보이는 집시.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은 엄마의 잘못된 깨달음으로 시작된 것. 사진=훌루 제공

 

모녀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건 이웃집 엄마 멜(클로에 세비니)도 느낀다. 쇼핑몰에서 우연히 모녀가 목걸이를 훔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아를 홀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디디의 모습에 이내 모녀를 이해하기로 하지만. 침샘 제거술을 받아 위 튜브로만 식사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집시의 상태에 의문을 갖는 의사도 있다. 가장 큰 의심자는 모녀 중 딸인 집시다. 집시가 설탕 알레르기가 있어 죽을 수도 있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던 엄마의 말이 거짓이란 걸 응급실에서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설탕 알레르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집시는 밤마다 엄마 몰래 콜라와 크림 등 온갖 단 것을 섭취한다. 그런데··· 집시가 멀쩡하게 집안을 걸어 다닌다! 이때부터 시청자는 충격에 휩싸인다. 디디가 거짓말한 것도 놀라운데, 평생 휠체어 신세인 줄 알았던 집시가 밤이면 밤마다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묘한 배신감에 휩싸일 정도.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좋아한다는 집시가 엄마 몰래 노트북으로 남녀의 키스 신을 찾아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멀쩡한 10대 소녀 같아 보인다.

 

집시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나 사귀게 된 닉(캘럼 워시). 다중 인격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닉은 집시의 부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만다. 사진=훌루 제공

 

‘디 액트’는 앞서 말했듯 2015년 미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실화를 다룬다. 딸 집시 블랜차드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사귄 남자친구에게 엄마 디디 블랜차드를 청부 살해한 사건으로, 더 끔찍한 건 환자인 줄 알았던 집시가 멀쩡한 상태였고 오랜 시간 엄마에게 학대를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으로 뮌하우젠 증후군(아프다는 거짓말이나 자해를 통해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정신질환), 그중에서도 남에게 그것을 자녀나 반려동물 등 ‘대리인’에게 투영하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엄마 디디가 오랜 시간 집시에게 자행한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정신질환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청부살해한 희대의 악녀가 된 집시 블랜차드. 오랜 시간 엄마에게 학대와 가스라이팅을 겪은 집시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괴로워한다. 사진=훌루 제공

 

엄마와 딸 사이는 세계를 불문하고 지극히 가까운 특별한 관계. 엄마가 자녀를 키우면서 생기는 특별한 애착관계는 딸이든 아들이든 비슷할 테지만, 자라면서 이성인 아들과 달리 동성인 딸은 엄마와 친구 같은 관계를 형성하기 쉽다. 더 시간이 흐르면서 늙어가는 엄마를 딸이 곰살스레 보필하곤 한다. 그러나 디디와 집시의 관계는 정상적인 애정을 넘은 뒤틀린 집착으로 가학적인 관계가 된다. 디디는 어릴 적부터 자신을 강하게 대했던 엄마에 대한 반감으로 딸 집시에게 과보호를 일삼는다. 그 과보호는 디디가 경범죄로 집시와 몇 개월간 떨어져 있던 것을 계기로 한층 과해진다. 결정적으로, 병으로 늙어가는 디디의 엄마가 옛날과 다르게 디디에게 의존하는 경험을 하곤 디디는 깨달음을 얻게 된 거다. 내 딸 집시도 아프면 나밖에 없겠구나! 이 잘못된 깨달음은 집시의 정상적 성장을 통째로 앗아갔고, 결국 디디 자신의 죽음으로 귀결된다.

 

91년생인 집시를 오랫동안 95년생으로 속이는 등 엄마 디디의 ‘아이가 자라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만을 의지할 것’이란 비뚤어진 생각이 디디와 집시 모녀의 불행을 낳았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디 액트’는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훌루 제공

 

‘디 액트’는 실존 인물의 이름부터 당시 집 인테리어와 모녀의 스타일링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집시를 연기한 조이 킹이 삭발을 감행하는 등 불과 몇 년 전 있었던 실화를 그대로 화면에 담아내려 심혈을 기울였다. 드라마를 보고 난 후 실제 인물과 사건을 검색해 본 사람들은 그 싱크로율에 감탄할 것.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건 이해하기 힘든 모녀의 관계와 심리를 빼어나게 표현한 패트리샤 아퀘트와 조이 킹의 연기. 영화 ‘보이후드’로 재기한 패트리샤 아퀘트는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엄마 디디를 훌륭히 소화하며 2020년 골든글로브 미니시리즈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넷플릭스 영화 ‘키싱 부스’로 하이틴 스타로 떠오른 조이 킹의 강렬한 연기는 그가 뻔한 하이틴 스타로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만천하에 증명한다.

 

‘디 액트’는 왓챠의 독점 콘테츠 ‘왓챠 익스클루시브’에서 5월 26일 공개됐다. 5~6회인 중반부가 슬쩍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왜’라는 의문과 긴장감을 놓치지 않아 몰입도가 높다.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면 영화 ‘서치’로 유명해진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영화 ‘런’도 추천한다. 집시 블랜차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로, 스릴러 영화 특유의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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