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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리포트] 2030이 털어놓은 '내가 퇴사하려는 이유'

늘어난 신입사원 퇴사…전망 불안·박탈감·재취업 등 이유 달라도 "사회구조 변화와 관련"

2021.05.26(Wed) 18:21:03

[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왜 그만뒀냐고요? 그걸 왜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문제가 회사에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할까요? 혹은 사회 구조적 문제일지도 모르죠. 그 많은 직원 중 일부는 공채 시험을 통과해서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누군가는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계약직으로, 또 누군가는 단기 계약을 맺은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요. 어떤 형태든 사람은 계속 나가는데 회사는 신경도 안 쓰죠. 구직자는 널려 있고 또 뽑으면 되니까요.”

 

A 씨는 번듯한 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한 지 2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이다. 퇴사하고 일주일은 늦잠을 잘 수 있음에 행복했고, 그다음 일주일은 불안함에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직장을 그만두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실제 통계로도 증명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 결과에 따르면 ‘1년 이내 신입사원 퇴사율’은 2010년 15.7%에서 2016년 27.7%로 늘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2019년 진행한 조사에서도 ‘1년 이내 신입사원 퇴사율’은 48.6%를 기록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21만 8000명 줄었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반대편에선 취직 후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늘고 있다.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는 시민의 모습. 사진=박정훈 기자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이들의 퇴사 배경에는 ‘회사의 부조리한 조직문화’, ‘상사의 꼰대질’, 혹은 ‘야근과 주말 근무 강요’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물론 실제 이런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까진 그보다 더 다층적인 이유가 작동한다.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의 경쟁률은 해마다 높아지는데 중소기업은 구인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나마 개선된 비정규직의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의 70%에 그친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세대·성별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사회 구조적 문제는 20~30대 저연차 사원들에게 격차에 따른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실제 행동으로 옮긴 퇴사자와 고민 중인 저연차 재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을 가진다는 ‘퇴사’이기에 정답은 없다. 다만 세대 밖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배가 불렀다’거나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와 같은 손쉬운 비난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모두 “2030세대가 퇴사하는 이유는 변화하는 사회 구조와 관련 있다”​고 입을 입을 모았다.

 

Q. 어떤 회사, 어떤 직군에서 근무하는지(했는지) 소개해주세요.

 

A 씨(여·27세): 중견기업 경영지원팀에서 2년간 근무했고, 한 달 반 전에 퇴사했습니다.

 

B 씨(여·29세): 공기업에 취직한 지 1년이 좀 안 됐고요. 회사에 다니면서 타 공기업 신입 채용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C 씨(남·29세): 영상제작 미디어업계 종사자 3년 차입니다. ‘경력 이직’과 ‘퇴사 후 신입 지원’ 두 가지를 두고 고민 중입니다.

 

D 씨(남·31세): 반도체 관련 대기업 2년 차입니다. 당장 퇴사나 이직을 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습니다.

 

Q. 퇴사를 한, 혹은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씨(중견기업 퇴사자):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1년 정도 고민을 했는데,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경력을 더 쌓아서 이직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같은 고민이 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하곤 친구와 문구 브랜드 론칭을 준비했어요. 병행을 하다가 얼마 전 회사에 사직서를 냈습니다.

 

B 씨(공기업): 전 연봉과 사내 문화 때문에 중고신입으로 취직을 준비 중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공기업 가운데서도 업무량이 많고 연봉은 낮은 것으로 유명해요. 연봉이 전체 공공기관 평균에 미치지 못해서 또래 직원들의 불만이 많기도 하고요.

 

C 씨(미디어 업계): 제가 일하는 직종은 원래 이직이나 퇴사가 많습니다. 업무 자체가 밤낮, 주말 가리지 않고 많은 편이에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여러 번 점프해서 대기업에 가는 사례도 많지만 대부분 그 전에 체력이 버티지 못하는거죠. 그럴 바엔 아예 대기업에 신입으로 취직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하고 퇴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3년이라는 근속연수가 아까워서 이직을 준비하면서 대기업 신입 지원도 함께 고려하고 있습니다.

 

D 씨(대기업): 지금 다니고 있는 기업의 연봉이나 근무환경 등에 대체로 만족합니다. 2년 차가 되면서 어느 정도 업무에 자율성도 주어지고 있고요. 다만 업무량이 많고 성과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가 많다는 불만은 있습니다. ‘언제 치킨집 차리게 될지 모른다’는 농담을 동료들과 할 정도로 회사에 모든 걸 의지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도 있어요. 그래서 강박감을 느낄 만큼 투자나 자기계발에 힘을 쏟는 것 같기도 해요.

 

Q. 회사 내에서 기성세대와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나요?

 

A 씨(중견기업 퇴사자): 저는 ‘노’라고 말하는 막내는 아니었어요. 누군가 ‘노’ 하면 뒤에서 상사가 하는 뒷담화를 들어주는 편이었죠. 여전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지시나 기분에 맞추는 게 기본값인 것 같아요. ‘할 말 하는 90년생이 온다’라는 프레임이 나온 지도 오래됐지만 기존 관행이 어디 가나요. 평일 저녁 회식에 주말 등산까지 가자고 하면 가야 했죠.

 

D 씨(대기업): 오히려 ‘요즘 친구들은’ 하고 운을 떼는 상사의 말이 더 피곤해요. 사람 대 사람으로 기본적인 예의나 배려, 업무 연관성만 고려해도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괜히 앞서서 배려하거나 본인이 꼰대가 아님을 강조하는 식의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더라고요.

 

그래픽=김상연 기자

 

Q. 밀레니얼 세대의 퇴사율이 이전 세대와 비교해 높은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씨(중견기업 퇴사자): 주변 친구들을 보면 ‘내 연봉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집은 살 수 있을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지 같은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거죠. 대기업 정규직에 취직하는 게 구직자의 10%나 될까요. ‘부동산은 계속해서 오르고 산업 구조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다’, 혹은 ‘더 좋은 회사로 옮겨야겠다’는 결심에 따라 행동을 취하는 거죠. 한 친구는 ‘내가 그만두는 것보다 회사가 망하는 게 빠르겠다’는 농담도 하더라고요. 아버지 시대에는 회사와 나를 동일시했다는데 우리 세대는 그러기엔 당장의 생존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너무 커요.

 

C 씨(미디어 업계): 핵심은 ‘박탈감’이 아닐까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잖아요.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는지에 따라 삶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지니 모두가 ‘잘 끼우고 싶다’, ‘다시 끼우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건 결국 대기업에 가는 것, 좋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수렴하는데 점점 ‘좋은 고등학교에 가는 것’,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요. 문제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의 삶도 ‘멋진 삶’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의식주가 온전히 해결되는 ‘기본적인 삶’이죠.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모두가 기를 쓰고 남을 밟아야 하는 거라고 봐요.

 

Q. 10년 뒤 나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A 씨(중견기업 퇴사자): 당장 다음 달의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10년 후는 정말 가늠이 안 가네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자면 내 브랜드가 성공해서 많은 사람이 내가 디자인하고 제작한 물건을 사용할 것 같아요. 한동안은 힘들겠지만 희망찬 꿈을 꾸고 있어요.

 

B 씨(공기업): 대학생 때부터 공기업 취업을 준비한 가장 큰 이유는 ‘안정감’이에요.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 미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제가 무서운 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좀 더 좋은 근무 환경과 높은 연봉, 수도권 근무 같은 조건을 바라면서 새로 준비하고 있는 만큼 10년 뒤엔 이 조건을 충족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겠죠. 그때는 만족할 수 있을까요?

 

C 씨(미디어 업계): 여전히 아침마다 주식 차트를 보는 개미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한 가지 분명한 건 20대 후반인 지금보다 격차가 더욱 벌어져 있을 거라는 점이에요. 20대에 부동산을 소유했는지, 대기업 취직에 성공했는지,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격차는 점점 벌어지겠죠. 조직 문화를 유연하게 바꾸고 저녁 회식을 없애는 것보다 시급한 게 당장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조금씩이라도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 ‘90년생이 온다’ 같은 책을 보란 듯이 꼽아놓고 자족하는 사이에 내 또래, 혹은 더 어린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근에 깔려 죽기도 하잖아요. 무엇이 더 중요한지의 문제라기보단 어떤 것에 집중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봐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회사를 나간 이들은 어디로 갈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A 씨는 인터뷰 말미에 “드라마 ‘​미생’​에 나온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표현이 자주 생각난다. 그만두고 보니 회사 안에 있을땐 몰랐던 안온함이 그립다. 지금의 계획이 잘 안풀리면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든, 어디에 있든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이다. ‘그럴 바엔 나의 일을 하자’​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고, 아직까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세대론을 비판하는 이들은 ‘MZ세대의 특징’, ‘90년대생과 일하는 법’​과 같은 범주를 정하고 여기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계층적·지역적·​성별적 차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불안감은 커지는데 회사 내에 수면실을 마련하고 상사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하는 정도로 이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세대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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