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지만, 죽은 사람이 살던 공간과 남긴 물건엔 못다 한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지난 5월 1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는 유품정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대중문화에서 터부시되었던 ‘죽음’을 이야기한다. 대중문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죽음을 다루는 직업은 법의학자 정도? 드물게 장의사나 장례지도사도 있었지만 이 작품처럼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을 정면으로 다룬 것은 거의 처음인 듯하다(단편영화 ‘유품정리인’은 있었다).
‘무브 투 헤븐’은 한정우(지진희)와 한그루(탕준상) 부자가 운영하는 유품정리업체의 이름. 스무 살 청년 그루는 유품정리사 업무에는 능숙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이기에 남다른 면이 많다. 드라마 1화, 작업현장에서 발을 다친 뒤 고시원에서 앓다 죽은 비정규직 청년의 공간을 정리할 때 한그루의 특징과 그를 보조하는 아버지 한정우의 관계성이 또렷이 드러난다. 한 번 본 것은 절대 잃지 않는 사진 같은 기억력을 지닌 그루는 정리하며 찾은 청년의 편의점 구매 영수증에 적힌 물품을 정확히 복기하며 그 청년이 삼각김밥과 라면을 좋아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이를 한정우가 ‘아마 삼각김밥과 라면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저렴하고 할인이 되는 품목이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짚어준다. 남과 소통하는 게 어려운 그루를, 죽은 자가 남긴 물건을 통해 교감하며 사람과 사회를 배워가게 하는 식이다.
그루에겐 일찍 잃은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는 소중한 아버지도 있고, 어릴 적부터 앞집에 살며 그루를 다정히 챙기는 친구 윤나무(홍승희)도 있고, 아쿠아리움에서 좋아하는 물고기를 관찰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있었다. 그런 그루의 삶이, 아버지 한정우의 죽음으로 흔들린다. 예정된 죽음이든 갑작스러운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든 생활이 일정한 규칙 안에서 이뤄져야 했던 그루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이부동생 조상구(이제훈)가 삼촌이란 이름으로 임시 후견인이 되어 그루의 집에 들어서고, ‘무브 투 헤븐’의 일도 3개월간 그와 함께해야 한다.
사실 ‘무브 투 헤븐’의 인물 서사는 익숙하다. 장애가 있는 혈육을 졸지에 맡게 되면서 서서히 가족애를 쌓아가는 이야기라면 이미 ‘레인맨’ ‘오 브라더스’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영화에서 익숙히 봐왔던 것이므로. 조상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데리러 오기로 한 한정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그에게 애증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 한그루의 후견인을 맡기로 한 것도, 정우가 남긴 유산에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서사에서 흔히 그렇듯 조상구는 그루와 함께하며 달라지게 된다.
이런 뻔한 설정에도 ‘무브 투 헤븐’은 보는 이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다. 정확히는 한그루와 조상구가 함께 유품정리사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고시원에서 죽은 비정규직 청년부터, 아들의 양복을 사고자 매일 은행에서 5만원씩 찾아 방에 숨겨두던 할머니, 스토킹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어린이집 교사, 세상의 편견 때문에 사랑을 선택하지 못했던 젊은 의사, 함께 세상을 떠날 것을 결심한 연고자 없는 노부부, 해외로 입양됐으나 파양당하고 국내에서도 생모에게 거부당한 청년 등 등장하는 죽음들은 모두 ‘지금 나의 일’은 아닐지언정 내 주변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정규직이 되고 싶어 부당한 현실에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죽음을 맞은 청년을 보면서 5년 전 ‘구의역 김군’부터 최근 평택항 부두에서 정리작업을 하다 죽은 대학생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독사’는 노년이고 청년이고 가릴 것 없이 ‘어쩌면 몇 년 뒤, 몇십 년 뒤 나의 일’로 느껴질 만큼 빈번해졌고,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은 어지간하면 큰 이슈가 안 될 만큼 잦아진 사회문제가 되었다. ‘무브 투 헤븐’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소외된 죽음들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 이상 ‘남의 일’이라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죽음들이다.
일상에서 유품정리사는 신속하게 고인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무브 투 헤븐’ 속 유품정리사 한그루에게 제일 중요한 건 고인의 마음이 깃든 물건을 어떻게든 남겨진 유족에게 꼭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가족이 아니고는, 아니 어쩌면 가족이어도 모를 수 있던 고인의 마음을, 한그루는 아스퍼거 증후군 특유의 직중력과 집착으로 찾아낸다. 그루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돌아가신 분들도 말을 할 수 있다고, 그러니 그들의 마음을 들어 달라고 유족에게 유품을 전달하는 과정은 자못 먹먹하다. 그런 과정을 함께하다 보니, 형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비뚤어져 있던 조상구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상구 또한 한그루와 함께하면서 형의 진심을 알게 되니까.
‘무브 투 헤븐’을 보는 내내, 가족을 떠나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휴대폰부터 노트, 사진첩, 서류함 등의 기록적인 물건들을 무엇을 보관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기민하게 판단해야 했다. 수많은 옷가지와 신발 중에서 추억으로 남길 것들을 골라내고, 기부처에 보낼 만한 쓸 만한 곳들을 골라 그것들을 포장해 보냈다. 남기기 애매하지만 손때 묻은 일상용품은 따로 골라내 유품 소각업체로 옮겼고. 그 일련의 과정들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척 서글픈 시간이지만 동시에 떠난 가족과의 추억을 복기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브 투 헤븐’에서 절친한 동생을 보내는 상구처럼, 오랜 시간을 딛고 겨우 아버지를 보내는 그루처럼, 누군가를 떠나보낼 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라맛’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뭉근하게 끓인 누룽지처럼 따스하고 익숙한 위로를 건네는 드라마 ‘무브 투 헤븐’. 10화로 이뤄진 1시즌을 ‘순삭’하듯 몰아봐도 체하지 않고 편안하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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