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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부장에 고함] 30주년 유느님을 만든 건 8할이 '멋진 선배'

무명의 유재석에게 길을 제시하고 가능성을 지켜본 '두 PD 이야기'

2021.05.18(Tue) 10:17:59

[비즈한국] 안티 없는 우리들의 ‘유느님’, 방송인 유재석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마치 그의 30주년을 축하하듯, 얼마 전 열렸던 백상예술대상에서 유재석은 TV부문 대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그가 출연하고 있는 TV 프로그램들에서는 최근 유재석의 데뷔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고, 그의 방송인 인생 발자취에 대한 조명 또한 새삼스레 회자되고 있어 화제다.

 

이중 유재석이 토크 MC로 자리한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 퀴즈’)에서는 최근 1회 차 분량 전체에 유재석이 어떻게 유명 방송인으로 성장해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유재석 특집’을 특별 편성하기도 했다. 본인의 이야기를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 유재석이기에 ‘유 퀴즈’의 시청률 또한 평소보다 월등히 좋았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데뷔 30주년을 맞은 유재석을 주제로 한 ‘유 퀴즈 온 더 블록’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진=tvN 화면 캡처

 

이날 ‘유 퀴즈’의 토크 게스트로 등장한 이들은 유재석과 오래도록 좋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한 방송인 남창희, 무명시절 청춘의 무게를 함께 해온 방송인 지석진, 유재석의 떡잎을 알아봤던 전 MBC PD 김영희였다. 그들은 유재석과의 추억들을 소회하며 그가 어떤 남다른 면모를 보여 왔으며, 어떤 배려를 해왔고, 어떤 성실한 태도로 방송 30년의 세월을 아로새겨 왔는지 언급했다. 

 

흔히들 사람들은 유재석을 두고,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최고의 공감 진행자, 후배들을 아끼는 미담의 주인공, 그 어떤 노력도 불사하지 않는 성실한 노력꾼” 등의 미사여구로 그의 성공 이유를 꼽는다. 이러한 면모들은 사실 그간 세간에 많이 주목받아온 바 있는 면모이기에, 그를 집중 조명하는 ‘유 퀴즈’에서 지금과는 다른 측면의 유재석의 성공 비결을 캐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면밀히 ‘유 퀴즈’를 시청했는데, 흥미로운 발언은 출연하지는 않았으나 잠깐의 전화 인터뷰 게스트로 출연한 전 KBS 김석윤 PD로부터 시작됐다. 현재는 드라마와 영화 쪽 분야의 연출가로 맹활약 중인 김석윤 감독은 유재석의 길었던 무명생활을 함께했고, 지금은 유재석하면 떠오르는 트레이드 마크인 메뚜기탈을 유재석에게 처음 씌운 사람이다.

 

유재석은 메뚜기탈을 쓰기가 마냥 싫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진=tvN 화면 캡처

 

김석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메뚜기탈은 당시 참으로 쟁쟁했던 남희석, 강호동, 신동엽 사이에서 가능성 있어 보이나 영 존재감 없어 보였던, 유재석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주기 위해 본인이 고안해낸 아이디어”였단다. 당시에는 그 속내를 몰라 “탈 쓰기가 마냥 싫었다”는 유재석. 김 감독의 깊은 속내를 알게 된 그는 자기를 무조건 밀어주고 이끌어 준 사람의 ‘진짜 마음’에 감사해 했다. 

 

그 뒤로 이어진 또 다른 유재석의 발견은 MBC에서 그와 함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이하 ’책을 읽읍시다’)’를 함께 했던 김영희 PD를 통해서 살펴보게 됐다. 김영희 PD는 조금씩 TV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재석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또 다른 PD 중 한 명. 그는 당시 유재석을 ‘책을 읽읍시다’에 캐스팅한 이유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유재석은 폭발적으로 웃기는 사람이 아니다.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금방 고갈되어 질리는 한 방이 아닌 은은함이 있어서 캐스팅했다.” 이게 9년 차 때까지 무명이었던 그를 ‘책을 읽읍시다’에 발탁한 이유라고 한다.

 

김영희 PD는 폭발적인 웃음보다 질리지 않는 유재석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를 발탁했다. 사진=tvN 화면 캡처

 

여기에 추가되는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유재석은 당시 MBC 예능 국장이었던 김영희 PD 덕분에 힘들었던 ‘무한도전’ 초창기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시청률이 형편없어 방송국 내에서 ‘무한도전’ 폐지가 논의됐던 시기, 편성팀으로부터 ‘무한도전’과 유재석을 무한 신뢰했던 김영희 PD가 강력하게 폐지를 막아줬던 것. ‘무한도전’을 통해 우리의 ‘유느님’과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토요일 밤들을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지는 스토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재석의 미담 및 그의 방송인 비하인드 스토리 속에서 신기하게도 유재석을 선택한 두 명의 PD들(김윤석, 김영희)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볼 줄 아는 이들의 결정적인 선택과 수호가 없었다면 유재석이 과연 지금의 ‘유느님’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을까. 방송인 유재석 자체의 성실함과 노력도 그의 성공을 이끈 중요한 요인이었겠지만, 나는 이들의 사람 보는 혜안과 배려, 도움이 없었다면 데뷔 30년의 유재석은 지금의 우리에겐 다른 의미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TV 속에서 유재석과의 과거를 말하는 두 PD들의 말을 들으며 순간 문득, 이런 직장 혹은 인생 선배가 요즘 젊은 친구들의 주변에 존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이 조금 넘는 직장생활 경험으로, 직장생활 내 정말 감사했던 선배들은 대체로 두 부류였다. 첫째는 존재 자체가 미미한 후배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진심으로 고민해 주고 그 길을 제시해 주는 선배. 둘째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후배의 포텐이 터질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려주고 지켜주는 선배다. 이 기준에 맞게 적용해 보면 김석윤 감독은 전자의 선배, 김영희 PD는 후자의 선배로 적용된다.

 

이런 멋진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유느님’이라 부르는 ‘공감의 화신’은 멋지게 데뷔 30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배인가? 될 놈 되게 만드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어도, 주변에 유재석 같은 될성부른 후배님들이 보이질 않는다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당신 주변의 후배들 먼저 찬찬히 눈여겨 봐라. 생각지도 못했던 후배 한 명이 당신의 혜안과 배려와 기다림으로 누군가는 인생의 큰 기회를 얻고 배울지도 모른다. 당신의 선택, 세세한 도움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그 사람의 큰 성장을 돕는다면, 그것만큼 멋진 인생이 어디 또 있겠는가. 멋진 선배가 되면, 멋진 인생은 자연스레 슬쩍, 옵션처럼 따라올 것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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