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공공사업은 계약 상대방이 공공기관, 지자체, 정부 중앙부처(이하, ‘공공기관 등’)라는 점에서 부도의 염려가 없고 결제가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신용도가 우수하고 서류 작업에 강점이 있다면, 인맥이나 연고 없이도 기술 배점이 높은 입찰에서 수주를 노려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공공사업에는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 제도’가 있다. 이는 일종의 블랙리스트로서 계약 체결 및 이행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업자를 입찰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즉,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란 입찰 참여를 금지하는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말한다. 공공사업은 원칙적으로 경쟁입찰 방식을 따르는데, 사업자들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면 입찰의 공정성과 계약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입찰 참여를 배제하는 것이다. 공개 경쟁 입찰원칙이 무의미해지고 국가 예산이 낭비되며 국가사업의 원활한 수행에 지장이 초래된다는 이유다.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의 제재 사유는 다양하다. 주요 제재 사유로는 △사업의 조잡한 관리 △담합행위 △뇌물 수수 △미승인 하도급 △계약서류 위·변조 △고의 무효 입찰 △계약불이행 등이 있다.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 부과되면 그 효과는 모든 공공·관급입찰에 미친다. 예를 들어 어느 사업자가 지자체에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받으면 그 기간 다른 지자체, 국가, 공공기관 등이 발주한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의 효력이 확장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A 공공기관은 부정당업자 제재처분을 부과하고, 그 사실을 조달청이 운영하는 나라장터에 통보한다. 나라장터는 부정당업자 정보가 입력될 경우 해당 사업자가 나라장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 결과 A 공공기관으로부터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받은 사업자는 다른 공공기관은 물론, 지자체와 정부 중앙부처 등이 발주한 모든 공공·관급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이처럼 전산 시스템을 통해 제재 처분 효과를 확대하는 점이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별도의 제재 처분이 아니라 전산 시스템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은 의회유보 원칙에 위반되고 과잉제재라는 의견이다.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은 A 중앙관서가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부과하고 그 사실을 B 중앙관서에 통보하면, B 중앙관서는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다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나라장터를 통해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의 효력을 확장하는 관행의 근거조항으로 지목됐는데 대법원은 위 조항을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했다(2015두50313). 따라서 효력확장의 위법·부당성에 대한 다툼은 현실적으로 실익이 없는 논의가 되어버렸다.
결국 제재 기간 동안 모든 공공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불이익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제재에 따른 불이익을 줄일 수는 없을까? 이러한 시도로는 제재 처분의 발효 시점을 조정하거나 복수의 제재 처분의 효력 기간을 중복시키는 방법이 있다.
산업 분야마다 일이 몰리는 성수기가 있고 일이 없는 비수기가 있다.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이 비수기에 부과되면 큰 문제가 없으나, 성수기에 부과되면 집행정지를 신청하여 그 효력 발생을 미룬다.
복수의 공공기관이 제재 처분을 부과하는 경우 그 발효 시점은 제각각이고, 이 때문에 제재 기간이 사실상 확장되는 불이익이 있다. 예를 들어 A 공공기관은 1월 1일 자로 6개월간의, B 공공기관은 7월 1일 자로 6개월간의 제재 처분을 부과했다고 하자. 이때 제재 기간은 사실상 1년(6개월+6개월)으로 확장된다. 이러면 A, B 공공기관의 제재 처분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해 발효 시점을 미룸으로써 제재 기간이 겹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발효 시점과 제재 기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부정당업자 제제 처분 사안에서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이 많다. 이를 두고 무분별한 집행정지 신청으로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있다. 계약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업자들을 단죄해야 하나, 사업자들은 집행정지를 악용해 입찰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집행정지는 행정소송법 등에서 예정된 절차이므로 그 절차 이용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 집행정지는 제재 처분을 취소시키는 효과가 없고, 단지 발효 시점을 미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집행정지를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을 잠탈하는 꼼수로 묘사한다. 하지만 오히려 회사가 살고 망하는 일을 가지고 마치 비디오 게임에서 페널티를 걸듯이 전산 시스템에서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제재 처분 효과를 확대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집행정지의 요건은 무엇이며 그 신청 시 강조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집행정지 요건으로는 △본안 사건의 승소 가능성, △중대한 손해를 예방할 긴급한 필요성, △집행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을 것 등이 있다.
집행정지는 가처분 절차이므로 본안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본안소송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다면 구태여 집행정지의 기회를 줄 필요도 없으므로,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 본안소송에서 어느 정도 승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그리고 집행정지가 기각되면 회사가 부도를 맞는다거나 구조조정, 사업 폐지 등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한다는 점도 자세히 소명해야 한다. 어쩌면 집행정지 인용의 관건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제재 처분으로 회사가 망하면 이를 회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집행정지를 해달라는 것이다. 이때 주장하는 사정으로는 △매출에서 공공사업 비중이 높다는 점, △협력업체와의 거래 중단이 예상된다는 점, △공공사업 준비를 위해 투입한 비용이 이미 막대하다는 점, △제재 처분 발효 시 주무부서의 폐지, 관련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등이 있다.
그 밖에 최근 국가계약법 시행령 개정으로 리니언시 사업자에 대해서는 제재 기간 감경이 가능해졌다. 의회유보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해 효력확장 조항의 추가도 예정돼 있다. 내용이 길어졌는데, 감히 말하자면 대략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부정당업자 제재 처분에 대한 최근 몇 년의 논의를 다 따라잡았다고 볼 수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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