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라면 하는 거지 별 수 있어요? 앞이고 옆이고 막아 놓으니 답답하고 불안하죠.”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통유리창에는 담배 광고를 가리기 위한 시트지가 부착돼 있다. 정문부터 옆문까지 ‘ㄱ’자 유리창 면적의 절반 이상은 불투명하게 가려져 있다. 점주 정 아무개 씨는 옆문 쪽에 원형 반사경을 한 개 더 마련할지 고민 중이다. 이전에도 가끔씩 술 도난이 발생했는데 3주 전쯤 소주 몇 병을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정 씨는 도난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좀도둑이라 다행이었지 강도가 들었다고 생각해보라”며 “예전에는 노숙자들이 술을 훔쳐도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게 다였지만 이제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 볼 수 없으니 무섭다”고 토로했다. 밤에도 편의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가 든든한 보험 같았는데 담배 광고 ‘시트지 조치’로 이 보험을 잃은 듯하다는 것이다.
중구의 또 다른 편의점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점주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바로 시공을 했다”며 “건물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이라 공간이 협소한데 밖을 못 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현실 외면하는 탁상 행정 결과물”
전국 5만 개 편의점의 유리창에 반투명 시트지가 부착되고 있다. 카운터 뒤에 설치된 담배 매대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시야를 차단하기 위함이다. 보건복지부는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명분 아래 잠자던 담배 광고 노출 규제를 꺼내들었다. 근거로 삼은 법은 2011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9조 4항과 담배사업법 등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라는 업계 반발에 정부가 사실상 동의하면서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지는 않았다.
복지부는 편의점 1~2m 앞에서 담배 거치대나 광고물이 보일 경우 법을 어긴 것으로 간주하고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의 영업정지를 당할 수 있다. 해당 규제는 당초 지난해 5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단속을 유예해달라는 업계 의견에 따라 올 7월부터 단속이 시행된다.
업계 관계자는 “담배 광고 노출을 막자고 편의점 설계 구조를 바꾸는 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담배협회와 제조사가 협의 끝에 내놓은 것이 유리창에 시트지를 붙이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점주들은 정부 발표에 발맞춰 반투명 시트지나 편광필름을 붙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탁상 규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시트지 조치’가 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서대문구의 한 지하철 역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아직 시트지 시공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 조치에 선제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A 씨는 “곧 시공을 앞두고 있는데 혹시 몰라 저녁에 담배 매대 조명을 다 끄고 퇴근한다”며 “좁은 지하도 매장에 붙여놓으면 일반 점포보다도 더 복잡해보일 것 같아 불만”이라고 전했다. 출입구 양 옆에 설치해 놓은 외부 매대도 걱정이다. A 씨는 “성인 눈높이 위치의 시야를 가리는 거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실루엣으로만 봐야한다”며 외부 매대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을 우려했다.
인근의 편의점 점주 B 씨는 매출에 영향을 끼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담배 매대 안 보이게 하자고 다른 상품까지 가려버리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편의점은 밤낮 상관없이 밝은 내부 분위기가 중요한데 대낮에도 꽉 막혀 있어 일반 상품의 광고 효과가 반감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인 눈높이 시야 차단…직원 안전 우려
가장 큰 문제는 치안이다. 대다수 점포가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의 경우 전면 통유리창이 원칙처럼 여겨진다. 편의점은 지난해 기준 강도・폭행 등 각종 범죄가 시장・노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한 장소다. 건축물의 범죄 예방설계 가이드라인도 편의점 설계 기준은 정면 가로막힘이 없어야 하고 외부에서 보일 수 있도록 시야가 확보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로구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C 사 직원은 “밤이 되면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주택가 점포에서 특히 불만이 많다”며 “편의점 특성상 1인 근무가 잦고 야간에 여자 혼자 근무하기도 하는데 고정 고객층만 찾는 담배 광고 하나 때문에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종열 CU가맹점주협의회 회장은 “흡연 유입을 막으려면 청소년 흡연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이번 규제안을 가리켜 ‘판매자만 규제하는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문만 열고 들어가면 바로 담배 광고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우회적인 규제로는 담배를 판매하는 소상공인들만 부담”이라며 “국민건강 증진이 목표라면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부가 담배 광고를 원천 금지하는 게 맞지 않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규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OECD 최고 수준인 성인 남성 흡연율을 절감하고 국민 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담배라는 상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형민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흡연을 지양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담배 구매자는 처음부터 담배를 구입하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편의점에 방문한다. 단순히 상품을 잘 보이지 않게 하는 정책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다른 대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를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지적하며 “담배 광고를 가리기 위해 시트지를 부착하는 방안은 안전 문제를 야기하고 다른 상품의 광고 효과를 저해한다”며 “흡연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는 담배 광고를 없애는 게 맞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법안 취지에 맞는 규제를 고안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통해 현장에 맞는 방책을 짜야한다”고 덧붙였다.
강은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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