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불가리스 사태’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등 경영진이 사퇴하면서 남양유업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들어갔다. 4일 기자회견에서 홍 전 회장은 “논란이 생겼을 때 회장으로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 사과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며 회장직에서 내려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이 여전히 남양유업 대주주로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구체적인 쇄신 방안이 나올 때까지 소비자의 불신은 이어질 전망이다.
#아버지가 일군 기업 2대에서 내리막길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은 1950년 6월생으로 남양유업 창업주 홍두영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남양유업 이사에 올라 경영수업을 받았다. 1988년 부사장을 거쳐 홍두영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1990년에 남양유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홍원식 회장은 대표이사 취임 후 제품 다각화에 힘썼다. 1990년대 불가리스, 아인슈타인 우유, 아기사랑 수 등의 상품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5년 유제품 업계에 ‘고름우유’ 사건이 터지고 매출이 급감하자 홍 회장은 6개월에 걸쳐 농가를 설득해 남양유업 생우유제품을 모두 1등급화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품질 개선에 힘썼다.
남양유업은 외환위기 당시에도 무차입 경영을 실현하며 부동산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았고, 오랜 기간 사옥을 마련하지 않았다. 무차입 경영은 홍두영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으로 홍원식 회장이 그대로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남양유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20% 안팎이다. 2009년 남양유업은 매출 1조 원에 이르렀다.
2012년 1조 3000억 원의 최대 매출을 기록한 남양유업은 2013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른바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 때문이다. 2013년 1월 수요 예측 실패로 남은 재고를 대리점에 강매해 피해를 준 내용이 세상에 공개됐고, 같은 해 5월 4일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 섞인 폭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국민의 공분을 샀다.
남양유업은 이 일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홍원식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사건 후 남양유업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여직원은 결혼하면 계약직 강등, 임신하면 퇴사 압박’ 등의 폭로가 나왔고, 결국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 우유 DHA 함량을 과대 광고한 사실이 밝혀졌고, 커피믹스 사업에 진출하며 인체에 무해한 카제인나트륨을 유해하다고 선동해 타사의 이미지를 깎기도 했다. 여러 사건의 여파로 남양유업은 2013년 약 17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1994년 이후 2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국민들은 여전히 남양유업을 믿지 않는다
남양유업은 2017년 대리점 판매수수료 편취 및 대리점 입막음, 2019년 홍원식 전 회장의 외조카 황하나 씨 마약 투약 논란,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대한 허위비방 악플 등의 문제가 꾸준히 발생했다. 이때까지 홍 전 회장은 공식석상에 나와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홍원식 전 회장이 지난 4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13일 남양유업이 자사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해 과장 논란이 빚어진 데 따른 것이다.
홍원식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전 회장의 사임이 남양유업 쇄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남양유업 지분 51.68%를 보유해 단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또 6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는 홍원식 전 회장, 모친 지송숙 씨, 장남 홍진석 상무가 포함돼 있다. 장남 홍진석 상무는 지난 4월 회사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해 해임됐지만 여전히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홍원식 전 회장의 사과가 ‘악어의 눈물’이 되지 않으려면 홍 전 회장의 지분 매각, 오너 일가 이사회 전원 퇴진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남양유업은 지난 7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영 쇄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10일부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긴급 이사회에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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