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시작은 10만 원이었다. 기사를 쓰기 전 맛만 볼 생각이었다. ‘투기가 아닌 투자’로 접근해야지 마음 먹었다. 기왕이면 커피 값 정도 벌고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해 불었던 주식 광풍과 비슷했다. 주변의 또래 중 가상화폐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모이기만 하면 코인이 화젯거리가 됐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앞 테이블과 뒤 테이블에서 코인 이야기가 들렸다.
더는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초조해졌다. ‘삼성전자 주식을 얼마에 샀는지’를 두고 친구들이 으스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5만 원에 매수한 친구는 승자였고, 8만 원에 매수한 친구는 후회했다. 주식 투자를 아예 하지 않는 친구는 모임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충고를 빙자한 오지랖을 들어야 했다.
#직접 체험한 가상화폐 변동성…예측 불가능한 시장
가상화폐 투자자의 절반 이상이 20~30대다. 국회 정무위원회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금융위원회를 통해 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등 주요 4대 거래소에서 받은 투자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 가운데 20대가 32.7%(81만 6039명)로 가장 많았으며, 30대는 30.8%(76만 8775명), 40대는 19.1%(47만 5649명)다.
떠밀리듯 시작했지만 방법은 주식 거래 방식과 비슷했고, 어떤 부분에선 훨씬 간단했다. 24시간 장이 열려 있으니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는 건 분명 매력적이었다. 보유하고 있던 농협은행 계좌와 제휴한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계좌를 만드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10만 원을 넣은 이틀 뒤, 3%의 수익을 보고 300만 원을 가상화폐 계좌에 추가로 입금했다.
거래 규모가 작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들을 이르는 말)에 투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거래 규모 1, 2위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절반씩 넣었다. 이들만 해도 잠을 설칠 정도로 변동성이 컸다. 하루에 작게는 3%, 크게는 7%까지 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주식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폭이었다. 규모가 작은 코인들은 20%, 30%부터 하루 만에 100% 이상 오르기도 했다. 물론 떨어질 때도 그만큼 폭이 컸다.
큰돈이 들어가니 커피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하루에도 열댓 번 기분이 널뛰었다. ‘5% 수익만 보고 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며칠 만에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자 다른 마음이 들었다. 남들은 원금 이상을 번다는데 겨우 5% 수익 보고 손을 떼려니 배가 아팠다. 거래소 창의 스크롤을 내릴 때도 +20%, +10%의 변동률만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내 안에서 잘못됐음을 깨닫고 돈을 빼려고 했을 땐 이미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 결제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뒤였다. -10%에 물려 더 넣을 수도, 뺄 수도 없는 상황이 돼서야 왜 코인이 ‘도박’인지 알 수 있었다.
#현생 불가능하다면 전문가들 “분산투자 원칙 세우고 지켜야”
“솔직하게 말하면 코인 커뮤니티와 카카오톡 유료정보방에서 거의 살고 있다. 가상화폐 과세에 반대하는 국민청원 동의도 했다. 취업 준비에 쓰려고 모아둔 돈 500만 원을 전부 코인에 투자했다. 120%를 벌고 나서 원금을 빼고 번 돈으로 계속 투자를 하고 있다.”
11일 만난 28살 취준생 A 씨는 “코인은 도박”이라고 인정하면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 같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짧은 시간에 원금의 100%, 200%를 벌어들인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몇 년 모은 적금을 깼다거나 등록금, 생활비, 퇴직금을 전부 코인에 투자했다는 사연도 심심찮게 보인다. 지난 4월에는 투자 실패를 비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34살 직장인 B 씨는 단타를 노렸다. 지난달 초 첫 코인 투자에서 300만 원으로 100만 원을 벌었다. 상승세인 알트코인에 300만 원을 ‘몰빵’해 하루 만에 30% 이상을 먹고 빠졌다.
그때부터 ‘현생 불가(현실 생활 불가능)’였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B 씨의 한 달 월급은 실수령액이 280만 원 좀 넘는다. 월급의 절반을 벌었던 첫 경험이 너무 강렬해 B 씨는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갔다. 방식은 단기투자였다. 하지만 첫날의 운이 계속 가진 않았다. 단타로 손해를 여러 차례 본 뒤 지금은 일론 머스크의 발언 이후 폭락한 도지코인에 물려 있다.
B 씨는 “갖고 있던 주식을 팔고 그다음엔 적금을 깼다. 부동산은 꿈도 못 꾸고 주식은 시드머니의 한계가 너무 컸다. ‘마지막 사다리’라는 커뮤니티 발 기사들에 공감한다. 가상화폐 투자는 내가 가진 돈만큼 할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대박도 가능할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원금이 반 토막 나 있었다. 내가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건 알지만 지금도 이걸 회복할 길은 코인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의 속성은 제로섬이다. 내가 따는 만큼 누군가는 잃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소 수수료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암호화폐는 더 나은 삶을 오르기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소수에게 돈을 몰아주는 ‘사다리 게임’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예상할 수 없는 시장에 큰돈을 거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고 설명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중요한 건 배분이다. 코로나19로 시장의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투기성 자본에 너무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특히 청년 세대의 경우 자산 운용에 대한 공부 없이 한탕을 노리는 위험한 상황이 많이 보인다. 부동산에 대한 진입 장벽이 실제로나 체감상으로 높아지다 보니, 그 반대급부로 위험 자산에 대한 투기 경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비교적 안전 자산인 채권, 금, 달러 등에 일정 비율 이상을 투자하면서 여윳돈으로 위험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30대 재무 상담 경험이 많은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은 지금의 투자 광풍를 염려했다. 서 원장은 “가상화폐는 아직 불투명한 이유의 급락이 심하다. 우연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가상화폐가 투자가 아닌 투기라는 근거다. 도박에 전 재산을 걸고, 나아가 인생을 거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하다. 1~2년 안에 당장 써야 하는 돈이 아닌 여윳돈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투자를 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가상화폐 시장에는 도박으로 접근하는 투자자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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