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 눈에 띄게 늘어난 게시글 중 하나는 ‘스승의날 선물’ 문의다.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제정되면서 학부모의 부담이 크게 줄었지만 어린이집만은 예외다.
#‘내 아이 밉보일까 봐’ 어린이집 간식·선물 사 나르는 학부모들
최근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학부모의 걱정이 늘고 있다. 특히 만 0~3세 영유아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불안감이 더욱 크다. 학부모들의 우려는 어린이집 교사들을 향한 ‘선심성 선물’ 공세로 이어진다. 내 아이가 혹시 밉보일까봐 혹은 좀 더 잘 챙겨줬으면 하는 마음에 경쟁적으로 선물, 간식 등을 보내는 씁쓸한 행태가 만연하다.
A 씨는 3월부터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 한 달가량을 보내던 중 주변 엄마들을 통해 ‘어린이집에 교사들 간식 등을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됐고, 빵과 음료 등을 사 어린이집에 전달했다.
그는 “원장이 받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 순간 깜짝 놀랐다”며 “어린이집에 간식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주변 엄마들에게 듣지 않았다면 보내지 않았을 거다. 그랬다면 내 아이가 차별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라며 한숨지었다.
또 다른 학부모 B 씨는 “맞벌이의 경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시간이 외벌이 가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길다.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들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며 “2주에 한 번씩은 과일을 박스로 사서 나른다. 어린이집에서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C 씨도 “어린이집의 다른 학부모가 교사에게 한우 세트를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찝찝한 감정이 남더라.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데 안 할 수 없지 않나. 뭐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푸념했다.
은연중 학부모에게 선물 등을 요구하는 행태도 있다. D 씨는 지난 설에 하원한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세뱃돈 봉투에 1000원권 10장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는 D 씨에게 따로 연락해 “원장에게는 비밀로 하고 세뱃돈을 넣었다. 아이가 예뻐서 보낸 거다”라며 “앞주머니는 원장이 확인하지 않으니 염려 말라”는 말을 전했다.
D 씨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감사하다는 인사만 전했다. 주변 엄마들을 통해 가방 앞주머니에 상품권을 넣어 보낸다는 얘길 듣고 그제야 아차 했다”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이를 핑계 삼아 따로 연락이 왔다. 그럴 때마다 기프티콘, 선물 등을 보냈다. 결국 어린이집을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아이를 보내는 동안 굉장히 불쾌하고 난감했다”고 말했다.
#유치원은 되고, 어린이집은 안되고…원장만 해당, 교사는 김영란법 적용 제외
김영란법은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유아교육법 등에 따라 유치원·초·중·고 교사 등을 적용대상으로 한다. 유치원부터는 교사들에게 선물, 카네이션 등을 선물할 수 없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예외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보육기관으로 분류해 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다만 어린이집 원장은 다르다. △누리과정 운영 △국공립어린이집 운영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인 공공기관의 직장어린이집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경우의 원장은 김영란법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어린이집 원장이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어린이집 원장의 경우 공무수행사인에 해당해 청탁금지법에 적용된다. 다만 보육교사의 경우 공직자로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원장을 제외하면 어린이집 교사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 법적 문제가 없다. 때문에 스승의날 등을 앞두고 학부모의 고민은 깊어진다. 일부 어린이집은 학부모의 선물을 당연한 문화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스승의날 선물 문의 글을 찾아보면 어린이집 교사들이 ‘받았을 때 좋았던 선물’이라며 댓글을 남긴 것도 찾아볼 수 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교사에게 선심성 선물을 보내지 않도록 안내하는 어린이집도 있다. 학부모가 가져온 선물을 정중히 돌려보내기도 한다. 인천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선물을 보내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이 선물을 받기 시작하면 서로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일괄적으로 모두 돌려주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 측은 “어린이집 등에서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 학부모가 선물 등을 전달하지 않도록 안내한다고 알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법 개정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관계자는 “어린이집이 김영란법에 제외된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어린이집 또한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당장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어린이집 측과 논의하면서 선물 전달 등에 대한 사항을 합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이러한 내용을 모든 학부모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이집 측에서는 선물 받지 않기 캠페인 등을 자발적으로 전개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위해서라도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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