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괜찮다 싶은 드라마가 죄 tvN이나 JTBC인지는 오래되었다. 보면 ‘때깔’부터 다르다. 지난 4월 14일 시작한 JTBC 드라마 ‘로스쿨’도 처음 볼 때부터 JTBC 드라마임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인 한국대 로스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교수와 학생들이 얽히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법정물. 첫 화에서 사람이 죽고, 주인공인 양종훈 교수(김명민)가 용의자로 긴급 체포되는 등 속도감이 빠르다. 방영 직후 넷플릭스에 업로드되어 한국 TOP 10 콘텐츠 순위에 항상 올라 있는 편.
한국대 로스쿨에서 형법을 가르치는 양종훈 교수는 원래 강직한 검사였으나 존경해 마지않던 선배 검사 서병주(안내상)의 56억 원 상당의 ‘공짜 땅 뇌물수수’ 건으로 검사와 피의자로 만났다가 서병주가 무죄로 풀려나자 검사를 그만두고 로스쿨 교수가 된다. 훌륭한 법조인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편법을 자행하는 ‘법꾸라지’ 법조인은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
문제는 한국대에 56억 원을 기부하며 로스쿨 교수로 오게 된 서병주가 모의재판 수업 중간 휴식시간에 살해당한 것. 서병주가 마시던 커피 컵에서 양종훈의 지문이 나오고, 서병주의 손에서 양종훈의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등 모든 정황이 양종훈에게 불리하다. 또한 출세지향적인 진형우 검사(박혁권)가 서병주 사건 담당 검사가 되면서 양종훈을 무리하게 용의자로 기소하면서 양종훈은 자신이 직접 범인을 추리해가며 자신을 변호해야 할 입장이다.
드라마 제목이 ‘로스쿨’인 만큼, 로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 사법고시 2차까지 합격했으나 아버지처럼 여겼던 친삼촌인 서병주의 뇌물수수 사건에 충격 받고 사시를 포기하고 로스쿨로 전향한 한준휘(김범), 차상위계층 특별전형으로 로스쿨에 입학한 강솔A(류혜영), 판사를 지향하며 평생 1등의 길만 걸어오던 강솔B(이수경),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하며 성공을 다짐하는 서지호(이다윗), 의상학과 출신으로 남자친구 따라 로스쿨에 응시했다 합격한 전예슬(고윤정), 산부인과 의사였다가 로스쿨에 입학한 유승재(현우) 등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의 각각의 상황과 그에 따른 성장이 미스터리 스릴러와 함께 맞물려 풀어나간다.
재미난 건 학생들의 상황이 서병주 교수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은 것. 한준휘의 삼촌 서병주에 대한 반감은 말할 것도 없고, 서병주 교수의 논문을 표절한 일로 민감한 상황인 강솔B, 검사였던 서병주에게 원한이 있는 서지호 등 모두가 이 사건에 조금씩 얽혀 있다. 양종훈은 이들의 상황을 추리하며 ‘합리적 의심을 거두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도록’ 차근차근 퍼즐을 맞춰 나간다.
‘로스쿨’은 5월 6일, 8화까지 방영하며 16부작의 반환점을 돌았다. 한준휘, 강솔B와 강솔B의 아버지인 헌법 교수 강주만(오만석) 등 의심 가던 인물들이 차례로 혐의를 벗어나면서 누가 범인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신 그 외에 산발한 문제들이 시선을 잡아 끈다. 강솔A네 가족의 주변을 맴돌면서 강솔A의 쌍둥이 언니 강단을 찾는 아동 성폭행범 이만호(조재룡)가 쥔 카드는 무엇인지, 양종훈과의 악연은 물론 강단과도 선거법 위반 고발 건으로 악연인 국회의원 고형수(정원중)는 어디까지 갈 것인지, 돌아오면 스모킹 건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강단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등 아직 파헤쳐야 할 일이 산더미다. 한정된 공간인 한국대 로스쿨 안에 이해관계가 맞물린 사람들을 과도하게 집약한 결과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의 병폐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권력자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한 숱한 거래, 잘못된 성공 지향으로 저질러진 논문 표절과 시험문제 유출, 조두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아동 성폭행범 이만호의 심신 미약 인정, 태연히 자행되는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의자 인권 침해, 가스라이팅과 데이트폭력 등 ‘로스쿨’에 등장하는 문젯거리들은 모두 뉴스를 장식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만드는, 땅에 발붙인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덕분에 나를 비롯 지인들은 ‘딴 건 몰라도 법을 조금은 알아야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다 못해 드라마 속 이만호 같은 인간도 법을 공부해서 ‘법꾸라지’마냥 자신에게 이롭게 법을 이용하려 드는데, 최소한의 자기 권리를 찾으려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법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봉변당하는 사람을 돕다가 도리어 폭행으로 고소당해 100만 원으로 합의한 경험이 있는 강솔A처럼, 당하고 나서야 ‘법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항변하고 싶지 않거든.
JTBC에서 그간 선보인 법정물들로는 판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 함무라비’, 검사들을 주인공 삼은 ‘검사내전’, 변호사들의 법조 활극 ‘리갈하이’ 등이 있었다. 미궁에 놓인 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계열로는 ‘미스티’나 ‘SKY캐슬’ ‘부부의 세계’ 괴물’과 궤를 같이한다. 흥미를 돋우는 소재와 ‘엔딩 맛집’이라 불리는 파격적인 전개와 속도감, 여전한 김명민의 카리스마 연기로 ‘로스쿨’은 괜찮은 시청률과 좋은 반응을 얻는 중이다. 여주인공인 강솔A가 지나치게 정형화된 캐릭터인 데다 이만호나 고형수 등 패를 쥔 주요 인물들의 연기가 다소 과한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지만, 무분별한 막장이 판을 치는 요즘 시대에 ‘로스쿨’은 정도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아 관심이 간다.
지금 바람이 있다면 ‘로스쿨’이 현실과 괴리되게 쉽게 정의가 구현되는 손쉬운 결말로 맥을 빠지게 하거나 꼿꼿이 고수하던 캐릭터가 방향성을 잃게 만드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 ‘SKY캐슬’ ‘미스티’ ‘부부의 세계’ 보면서 느꼈던 마지막의 허망함만은 제발 피해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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