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다니는 요가원에서 늘 앞에 자리를 잡다가 뒷줄 구석에 매트를 깔았던 날이 있다. 한참 요가를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앞줄 수강생의 대부분이 ‘X'자가 그려진 같은 브랜드의 요가복을 입고 있었다. ‘대세구나’라는 생각에 곧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젝시믹스는 지난해 단일 브랜드로 매출 1094억 원, 영업이익 108억 원을 달성하며 론칭 이래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경쟁사인 안다르가 760억 원, 뮬라웨어가 453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실적이다. 요가복으로만 여겨지던 레깅스의 일상화가 시장을 키운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애슬레저룩 시장은 2009년 5000억 원에서 2020년 3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애슬레저(athletic+leisure), 웍슬레저(work+athleisure), 원마일웨어(one-mile wear)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스포츠웨어와 일상복, 나아가 홈웨어까지 겸용할 수 있는, 경계 없는 패션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반짝 유행이 아닌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연 젝시믹스 대표는 이를 몸소 실천 중이다. 일할 때도, 퇴근 후 운동을 할 때도, 심지어 집에서까지 자사 레깅스를 입는다. 4일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을 때도 요즘 유행인 바이커쇼츠(무릎 위까지 오는 기장의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대표 사무실에는 군데군데 여러 개의 행거와 테스트 제품이 널려 있어 ‘제품 출시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해서 바쁘다’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운동 마니아 이수연 대표 “나부터 충성고객”
이수연 대표는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젝시믹스에 입사했다. 2016년 디자인팀장으로 입사하기 전에는 디자이너로 일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수영을 하고 점심시간엔 사내 헬스장에서 PT를 받았으며 퇴근 후에는 요가와 필라테스를 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이후 젝시믹스에 입사해 실장, 이사, 대표이사까지 진급하면서도 꾸준히 운동을 놓지 않았다.
운동으로 변화하는 몸과 일상 사진 등을 SNS에 올리며 인기를 끈 ‘파워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이 대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8만 5300명(6일 기준)이다. 헬스, 요가, 필라테스, 골프, 홈트 등 운동하는 사진에 특히 좋아요 수가 많다.
“회사 대표라면 당연히 회사 브랜드의 가장 큰 충성고객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라면 우리 제품을 사용할까?’라는 마인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신제품 출시 전 직접 입어보고 요가,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해보는 이유입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전면 재수정에 들어가요”
젝시믹스의 성장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자사 몰’이다. 젝시믹스의 자사 몰 판매 비중은 90%에 달한다. 이는 매출과 직결된다. 패션 플랫폼의 수수료는 20% 후반 대로 매우 높은 편이다. 플랫폼을 거치지 않고 자사 몰을 통해 구매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업체가 가져가는 수익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패션 플랫폼을 통한 구매 방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와중에 여타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젝시믹스는 설립 시점부터 소비자직접판매(D2C)구조를 적용했어요. 고객들이 실제 제품을 이용한 뒤 남긴 리뷰를 제대로 관리한 효과인 것 같아요. 특히 제품에 부정적인 리뷰는 댓글을 단 뒤 따로 모아서 꼼꼼히 읽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올해 초에는 서울시에서 조사한 ’100대 인터넷 쇼핑몰 평가‘에서 마켓컬리, 홈플러스 등과 나란히 1위(의류 몰 분야)를 하기도 했죠”
#운동하는 여성이 많아졌다…레깅스는 자기 표현 수단
‘운동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분위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실내용 운동복 정도로 취급되던 레깅스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도 하며 곧바로 퇴근해 운동을 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됐다. 한 유명 연예인이 레깅스와 짧은 티셔츠를 입고 시구를 했다가 사과까지 한 7년 전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운동하는 여성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날씬한 몸뿐만 아니라 건강한 몸, 근육 붙은 탄탄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한다. 셀룰라이트가 그대로 드러날지라도 노란색, 하늘색같이 밝은색의 레깅스를 입는다. “어떤 심리일까?” 묻자 이 대표는 “예쁜 옷을 입고 운동하면 기분이 좋잖아요” 심플하게 답했다.
“여성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레깅스를 활용하는 게 좋은 변화라고 봐요. 레깅스는 몸의 라인을 드러내기 때문에 운동 효과를 눈으로 바로바로 볼 수 있죠. 어두운 색뿐만 아니라 형광색 등 비비드한 색 레깅스 판매량도 실제 많아요. 레깅스가 민망한 패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편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착용할 수 있는 기능성 패션 아이템으로 포지셔닝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젝시믹스는 흐름을 잘 탔다. 코로나19로 인한 홈트레이닝, 건강에 대한 관심이 애슬레저 시장 성장에 영향을 주며 스포츠 브랜드 외에도 등산복, 골프복, 명품 브랜드까지 플레이어가 많아졌다. 빠른 속도로 확장되는 시장에서 그래도 ‘레깅스’ 하면 ‘젝시믹스’로 통한다. “긴장되진 않나요?” 묻자 1초도 안 돼서 답이 나왔다. “전혀요” 조용조용하게 이야기하던 이 대표가 인터뷰 중 유일하게 큰 소리로 답한 순간이었다.
“남성용 레깅스를 포함한 맨즈 제품부터 운동을 하면서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메이크업을 뜻하는 ‘애슬레저 뷰티’ 영역까지 계속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성장을 만든 레깅스 제품 또한 계속해서 품질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며 발전시키는 중이고요. 젝시믹스는 최근 3년간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을 유지해왔어요. 올해 목표도 2배 성장입니다. 과열되는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국내 대표 애슬레저 브랜드가 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습니다”
레깅스는 여전히 우리 사회 논란의 불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등산복으로 레깅스를 입어도 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가 하면, 레깅스 입은 여성을 불법촬영한 남성이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으며 공분을 산 사례도 있다. 법원은 부적절하고 불쾌감을 유발하는 행동일지라도 촬영된 부분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부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성이 입고 있던 옷이 일상복이고 노출이나 굴곡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깅스를 둘러싼 논란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문제는 ‘옷’이 아니다. 레깅스는 그저 레깅스다. 그리고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시대에 맞게 변화한 이 ‘핫템’ 유행의 선두에 젝시믹스가 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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