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유통산업의 빠른 변화를 관련 법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에 월 2회 의무휴업을 부과하는 것을 복합쇼핑몰, 면세점, 백화점까지 넓히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3개월째 심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판을 제도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보다 변화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2월 유통법 개정안 13건에 대한 첫 법안 심사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국회에서 유통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일부 의원들과 업계 등에서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상임위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대형마트 vs 전통시장 프레임만 ‘10년째’
유통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스타필드와 롯데몰 같은 복합쇼핑몰은 월 2회 문을 닫아야 한다. 복합쇼핑몰 내에 입점한 면세점 등에는 적용 예외를 뒀지만 실제 스타필드나 롯데몰 같은 대형 쇼핑몰에는 면세점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입점 매장에 규제가 적용된다.
이 외에도 백화점과 아웃렛·전문점 등을 영업 제한 대상에 포함하는 안, 전통상업보존구역 범위를 현행 전통시장·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1km 이내에서 20km 이내로 변경하는 안, 대규모 점포 허가제를 도입하는 안 등도 담겼으나, 정부는 과도한 규제가 소비자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서를 내놓은 상황이다. 다만 복합쇼핑몰 월 2회 영업제한에는 조건부 찬성했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전환에 가속도가 붙은 업계 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해 9월 진행한 ‘2020 신유통트렌드와 혁신성장 웨비나’에서 토론자로 나선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이젠 대형마트 vs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시장 vs 오프라인시장’으로 유통환경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최근 온라인 쇼핑의 급속한 확대에 따른 대형 오프라인 쇼핑몰의 구조조정 현실을 감안할 때 규제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2012년 유통법이 제정된 이후 관련 단체들은 주요 골자인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관련 의견을 꾸준히 제시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2월 시장조사 기관인 모노리서치를 통해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일’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의무 휴업일이 생기면 전통시장에 가겠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다수는 백화점이나 아웃렛, 대형마트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현장에서도 의문…규제보단 유연함 필요
현재 국회에 계류된 대부분의 법안은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프라인 쇼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권이다. 상권별로 다른 규제가 들어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지자체에 넘기는 방식이 논의돼야 한다. 국회가 시장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법안을 논의하는 데에는 선거나 공약과도 관련이 있다. 좀 더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10년간 대형마트 vs 전통시장 프레임에 집중하다가 흐름을 다 놓쳤다. 소비자는 마트가 열지 않으면 전통시장을 찾는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장을 본다.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씩 쉰 게 8년이 됐는데도 이로 인해 전통시장 매출이 늘었다는 통계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 규제를 확대해 복합쇼핑몰까지 적용한다는 건 국회가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부동산 정책과 같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 오르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저 규제를 통해 막기에 시급하다. 정책도 효과를 봐 가면서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잘못된 방향을 고집하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박성의 진짜유통연구소 소장도 유통공룡으로 ‘롯데·신세계·현대’가 꼽히던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이젠 강의를 나가서 유통공룡을 물어보면 ‘쿠팡·네이버·아마존’을 말한다. 그런데도 아직 규제는 과거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유통공룡을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모든 영역에 있는 공급자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일부 대형사에 책임을 더 지게 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 최소한의 보호망을 정립하고 나머지는 공급자와 소비자, 그리고 플랫폼이 돌아가는 생태계에서 자체적으로 정화하게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
'이러다 어쩌려고…' 백화점 확진자 나와도 안내 없이 영업
·
"지옥의 742번 시내버스를 아십니까?"
·
NH투자증권, '옵티머스 펀드' 전액 배상 권고안 수용 여부 골머리
·
[단독]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법원에 '이건희 장충동 집' 상속 신청한 사연
·
고객간담회 후 엇갈린 반응, 확률 조작 '메이플스토리' 살아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