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 BIZ.HANKOOK

전체메뉴
HOME > Story↑Up > 라이프

[아빠랑] 골골이 새겨놓은 신라인의 불심, 경주 남산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절터 150, 불상 130, 탑이 99개

2021.05.04(Tue) 11:59:54

[비즈한국] 골마다 절이요, 봉마다 탑이요, 바위마다 부처다. 신라인의 불심을 그대로 간직한 경주 남산은 신라 천 년의 역사 또한 오롯이 품고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도, 신라 말 경애왕이 견훤의 칼에 죽은 곳도 남산 자락이다. 경주 남산을 오르는 길은 걸음마다 이야기가 가득하다.

 

경주 남산은 신라 역사의 중심이자 신앙의 중심이었다. 남산 삼릉골에 자리한 선각육존불. 집채만 한 바위에 가느다란 선을 일필휘지로 새겨 넣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골짜기마다 절, 봉우리마다 탑

 

신라 역사의 중심이었던 남산은 신앙의 중심이기도 했다. 신라인들에게 서라벌은 불국토였고, 그 핵심은 남산이었다. ‘절이 별처럼, 탑은 기러기처럼’ 많았던 경주에서도 남산은 ‘골짜기마다 절이요, 봉우리마다 탑이요, 바위마다 부처님을 모신 곳’이었다. 40여 개의 골짜기에서 발견된 절터만 줄잡아 일백오십, 바위를 광배 삼은 불상이 일백삼십, 봉우리를 기단 삼은 탑이 아흔아홉이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헤아린 숫자다. 아직도 경주에선 한 삽만 떠도 유물이 쏟아지고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 강탈해간 문화재가 수도 없으니 남산의 유물유적은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경주 남산을 오르는 것은 신라 천년의 역사를 따라가는 길이요, 옛 신라인의 불심을 헤아리는 길이요, 신라 통일 이후 하나된 한국인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삼릉은 남산의 마흔 개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유물유적이 많은 삼릉골의 입구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소나무 숲으로 유명한 삼릉은 남산의 마흔 개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유물유적이 많은 삼릉골의 입구이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와 함께 경주를 찾았던 ‘1박2일’도 여기서 남산 답사를 시작했다. 삼릉에서 계곡을 따라 500m쯤 가다 보니 머리 없는 부처님이 단정히 앉아 있다. 높이가 1.6m, 무릎 너비가 1.5m쯤 되는 비교적 큰 좌불인데 세세하게 묘사된 옷고름과 매듭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위풍당당한 모양으로 봐서 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다가 1964년에야 햇볕을 다시 보게 되었단다.

 

머리 없는 부처님 위쪽 바위에는 마애불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마애불이란 바위에 새긴 불상을 통칭하는 말. 바위를 파고 들어가 불상을 새기거나 바위 위에 그대로 양각 혹은 음각을 한다. 십여 년 전에 파괴된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대불이나 중국의 석굴에 있는 석불들이 모두 마애불의 일종이다. 

 

삼릉골에 있는 마애관음보살상. 바위에 새긴 불상을 통칭해 마애불이라 부른다. 사진=구완회 제공

 

#‘경주남산 7대 보물’을 따라 가는 길

 

마애관음보살상을 지나면 ‘1박2일’에서 ‘경주남산 7대 보물’로 꼽은 불상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집채만 한 바위에 가느다란 선을 일필휘지로 새겨 넣은 선각육존불은 마치 한 폭의 탱화를 보는 듯하다. 울퉁불퉁 거친 표면이 그대로 살아 있는 바위 화선지 위에 정과 끌을 붓 삼아 자유로운 필치로 석가삼존과 아미타삼존을 그려 넣었다. 

 

선각육존불에서 다시 200m쯤 올라가면 마애여래좌상이 사람들을 맞는다. 선각으로 단순하게 처리한 몸체 위에 양각으로 도드라진 얼굴이 푸근하다. 바위 속에 있던 여래부처님이 막 얼굴부터 밖으로 나오는 듯하다. 둥근 턱에 불룩한 볼, 두툼한 입술에 복스런 코가 영락없이 어릴 적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다. 신라 서라벌에도 이런 얼굴의 동네 아저씨가 있었던 것일까. 

 

연꽃 좌대에 광배까지 갖춘 석조여래좌상.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다음에는 오랜만에 마애불이 아니라 연꽃 좌대에 광배까지 갖춘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여러 조각난 것을 이어 붙인 광배와 유난히 오똑한 콧날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데, 이것들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란다. 그래도 풍만한 몸매와 부드러운 옷주름이 석굴암 본존불을 닮은 석조여래좌상은 충분히 아름답다.

 

다시 산을 오르면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대좌불이 산 아래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6m 높이의 대좌불은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으로 얼굴은 비교적 정교한 양각인데 머리 위쪽은 대충 쪼아내고 몸체는 거칠게 표현되었다. 아까 보았던 마애여래좌상이 바위 속에서 막 얼굴이 나오기 시작하는 모양새였다면 이번에는 머리부터 시작해 상체까지 튀어나오는 형국이다. 

 

6m 높이의 마애여래대좌불이 산 아래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다.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마애여래대좌불에서 조금 더 오르면 금오봉 정상에 이른다. 원래 남산이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을 중심으로 60여 개의 봉우리들이 모인 산이다. 하룻동안 금오봉과 고위봉을 모두 둘러보는 것은 무리이므로, 여기서부터 쉬엄쉬엄 내려가는 것이 좋다. 

 

<여행메모>


삼릉 

△위치: 경주시 배동 산73-1

△문의: 054-779-8585

△이용시간: 24시간, 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아빠랑] 한옥과 카페, 근대와 현대가 나란히, 북촌
· [아빠랑] 대구의 근대를 품은 붉은 벽돌집, 청라언덕과 계산성당
· [아빠랑] 미술관에 남아있는 대한민국 근대사, 서울시립미술관
· [아빠랑] 다시 새겨보는 '부활'의 의미, 서울의 천주교 순교성지
· [아빠랑] 우리가 알아야 할 제주의 아픔, 제주4·3평화공원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