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피부를 하얗게 하는 치료를 저렴하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최근 서울의 한 의원을 찾아 의사에게 물었다. 피부과와 전혀 상관없는 과 전문의가 미용 목적으로 찾아갔을 때 어떤 치료법을 제시할지, 또 보험금 지급이 까다로워졌다는데 실비 처리가 가능할지 궁금했다. 그러자 의사는 영양주사를 추천하며 실손의료보험 청구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의사는 “간의 기능을 좋게 해야 한다. 즉각적인 효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미백 효과가 있는 수액으로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간 신데렐라주사와 마늘주사 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사제는 병명을 넣어 실비보험을 청구할 수 있다. 설사약을 같이 처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에서는 이러한 청구 방법이 횡행하고 있는 듯했다. 상담 말미에 병원 직원이 들어와 의사에게 다른 환자에게도 “이틀 치 설사 처방전을 내어달라”고 요청했다.
의료 현장에서 보험사에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다며 미용 목적의 비급여 영양주사 치료를 권유하는 관행이 여전히 횡행한다. 그러나 손해율이 높아진 보험업계는 이미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식으로 배수진을 쳤다. 병원은 영양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는데 보험금을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치료를 했다가 자칫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보험 사기범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영양주사는 연예인들이 피부 톤을 밝게 하려고 시술한다고 알려져 입소문이 났다. 백옥주사·신데렐라주사·마늘주사 등이 대표적이다. ‘미백 주사’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치료 목적의 의약품이다. 백옥주사(글루타티온주사제)는 알코올 중독이나 만성 간질환 환자의 간 기능 개선, 신데렐라주사(티옥트산주사제)는 심한 육체노동으로 사람 몸속의 지방산인 티옥트산이 줄어든 경우 보급 목적, 마늘주사(푸르설티아민주사제)는 비타민 B 결핍증 치료 등을 목적으로 허가됐다.
허가사항 외에 미용 목적으로 주사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정부의 경고가 몇 년 전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 병원에선 피부 미용을 목적으로 환자에게 투여하고 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인터넷 카페에서는 영양주사의 미백 효과를 문의하는 글이 넘쳐난다.
병원에서는 ‘실손보험 청구’를 무기로 내세운다. 아예 ‘실비보험으로 수액 맞기’라며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곳도 있다. 앞서의 의원에서는 어떤 주사가 피부를 뽀얗게 할지 모르니 3~4개 주사제를 돌아가며 꾸준히 맞아보라고 제안했다. 특히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주사제는 대부분 실비 처리가 된다고 했다. 비급여 주사제는 병·의원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해당 의원에서는 “용량을 많이 넣어주기 때문에 가격이 좀 더 나간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말을 믿고 섣불리 치료하는 건 금물이다. 허위진단서로 보험금을 받으면 사기범으로 전락할 수 있을뿐더러 보험을 청구하는 과정에서도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최근 보험업계는 손해율이 상승하자 영양주사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한 손해사정사는 “옛날은 몰라도 요즈음에는 영양주사는 대부분 (지급을) 안 해 준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올해 초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한 차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한 보험사가 영양주사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사항 외로 사용하면 치료 목적 소견이 있어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공문을 개원가에 보내서다. 이에 의료계는 “의사의 의료행위는 불합리한 협조요청에 휘둘리지 않고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며 반발했다.
당시 보험사가 권고사항이 아니라 환자에게 전달해달라는 요청이라며 한발 물러났으나, 영양주사의 경우 현재 보험금 심사를 더욱더 까다롭게 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병원에서 급격하게 많이 청구하는지, 실제 치료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병원 진료과목과 상관없는 병명코드로 청구됐을 때 사례를 점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치료 목적으로 영양주사를 처방받으려는 애꿎은 환자들만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암 환자들은 비타민 주사를 맞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마저도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암 환자들이 모인 카페에서 한 갑상샘암 환자는 “비타민주사가 갑상샘암 치료제가 아니어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비타민이 결핍됐다는 소견서를 제출하라고 해서 냈는데 치료제로 인정할 수 없다는 보험사 답변이 다시 돌아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보험업계도 고충이 적잖다는 입장이다. 대부분 보험사가 영양주사 청구 금액을 따로 취합하지는 않지만 그 규모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영양주사 과다 청구는 실손보험 손실로 이어진다. 금융감독원이 28일 발표한 ‘2020년 실손보험 사업실적 및 향후 대응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보험 손실은 2조 5000억 원에 달한다. 2019년보다 149억 원 늘었다. 특히 비급여 부분 실손보험 지급보험금은 4년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앞서의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말 치료 목적으로 주사를 처방했는지 혹은 미용이나 건강 목적인지, 보험사가 모두 적발하기 쉽지가 않다. 부당 청구를 하는 병원이 꾸준한 이유일 것”이라며 “손해율이 높아지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환자들은 의료쇼핑을 자제하고 의료 현장에서도 양심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손해율 상승을 막기 위해 병원별로 다른 진료비를 체계화하는 등 비급여 관리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은 “매년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실손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된다. 이는 과잉 의료에 대한 통제장치 부족 및 비급여 진료에 대한 일부 계층의 도덕적 해이 등에 기인한다”며 “필수적인 치료비는 보장을 확대하되 보험금 누수가 심한 비급여 항목은 보험금 지급심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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