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8년 네이버·카카오·넥슨·스마일게이트를 시작으로 최근 중견급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 노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벤처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그에 걸맞은 처우 개선이 없자 근로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이다.
국내 대형 게임 개발사 웹젠은 지난 5일 노조를 설립했다. 회사가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있음에도 급여 상승폭이 뒷받침되지 않자 직원들이 노조 설립에 나선 것이다. 사측은 일찌감치 임직원 평균 보수를 연 2000만 원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직원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ICT 회사 간 인력 빼가기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000만 원 인상은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개발 등 특정 직군의 인력의 연봉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높아 불공평 이슈도 불거졌다. 국내 중견 게임회사 개발자는 “최근 네이버·카카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SK텔레콤 등도 인공지능(AI) 등 개발 인력을 대거 채용하고 있어 개발자 몸값이 올랐다”며 “웹젠의 보수 인상 계획도 개발자를 잡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2016~17년께부터 ICT 업계의 실적이 대폭 늘며 IT 플랫폼 기업 전반에 노조 설립이 잇달았고, 최근엔 카카오뱅크·한글과컴퓨터도 노조를 만들며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들은 임금이 짜기로 유명함에도 노조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 생긴 산업이라 70~80년대 강력한 노동운동으로 노동자 권리를 쟁취한 중후장대 산업과는 문화가 사뭇 다르다.
이에 직원들의 집단 행동이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최근 정보기술(IT) 업계가 큰 돈을 벌기 시작하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회사 몸집은 대기업만 해졌는데, 임금·고용·근로시간 등은 과거 벤처기업 수준에 머물고 있는 문제점이 불거진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벤처업계에 몸담아온 중년 개발자는 “초기에는 벤처정신을 일종의 기업문화로 받아들여 성장에 매진했다”며 “그러나 20~30년이 지난 지금은 이미 성장했거나 성장 정체기에 접어든 기업들이 과거의 기업 문화와 보상 체계를 유지한 채 경영을 유지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기업화하면서 수평적 조직 문화가 퇴색되고 과거처럼 스톡옵션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성과의 공정 배분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는 90년대 이후 출생자가 대거 사회에 진출하며 가속화한 측면도 있다.
최근 SK하이닉스에서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성과급 논란이 인 것처럼 회사의 성과에 비례해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게 직장인들의 상식처럼 자리 잡았다. 연봉제가 정착돼 높은 임금 인상률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성과에 연동해 보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류에 대해 기업 문화가 선진화돼 간다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변화가 빠른 IT 기업의 경우 성장 잠재력을 깎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는 제품의 교환주기가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큰 공장에서 수십 년간 같은 제품을 찍어내는 제조업과 조직 문화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특정 서비스가 흥행하더라도 대개 수명은 4~5년에 불과하고 후속작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게 IT 기업의 숙명”이라며 “고정된 실적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임단협을 통한 안정적인 임금 인상을 보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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