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간호 인력 확충하고 간병 문제 해결하라!”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지금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야 한다!”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앞, 간병시민연대 등 7개 시민단체가 소리쳤다. 간병인들에 대한 병원들의 불법 의료행위 지시와 방조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면서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간병인들이 병원의 묵인하에 실시하는 무면허 의료행위 탓에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자회견 직후 간병시민연대는 혜화경찰서에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강남성모병원) 병원장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투약 제대로 안 했다고 간호사가 간병인들 혼냈다”
환자들이 입원하면 돌봄 인력으로 간병인을 고용한다. 법적 자격이 없는 유령 인력인 간병인은 보호자가 직접 구해야 한다. 병원에서 간병인 파견업체를 소개해주는 경우도 많다. 간병인 고용 비용은 만만치 않다. 하루에 최소 10만 원인데, 그마저도 최근에는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워지며 가격이 12만~15만 원으로 올랐다. 간병인 대다수가 조선족들인데,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한 달에 간병비로만 300만~45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동 간병이라고 부담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4·6·8인실 등 병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소 60만~180만 원을 공동 간병비로 지불한다. 간병시민연대가 지난 2월 26일부터 4월 6일까지 국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와 보호자 1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인 간병을 받은 사람의 63%가 하루에 10만 원 이상을 간병비로 썼다. 공동 간병의 경우에는 1일 간병비로 5만~10만 원을 지불한 경우가 55%로 가장 많았다.
‘가족 간병’도 상당하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환자나 가족이 간병업체를 통해 구한 경우가 34%로 가장 많았지만, 가족이 직접 간병한 경우도 29%다. 김인규 활동가는 “2015년부터 5년간 최소 25회 간병인을 고용해 4000만 원가량을 썼다. 비용 부담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간병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환자들이 입원 시 내는 의료비에는 입원료가 들어 있다. 입원료에는 의학관리료·간호관리료·병원관리료가 포함된다. 회진부터 질병치료와 진료보조행위 등 환자 돌봄 비용을 이미 지불하고 있는 것. 13일 만난 박시영 활동가는 “현실은 여기에 더해 환자와 보호자가 간병인 고용비까지 추가로 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높은 비용만큼 간병 서비스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대소변줄 교체·각종 투약행위·상처부위 소독 등 간병인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병원들의 묵인하에 행해지고 있기 때문. 간병인 소개 업체나 파견업체가 의료행위를 교육하고, 현장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간병인에게 “왜 체크 안 했냐”고 되레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고발장에도 빅5 병원의 간병인 의료행위에 관한 내용이 보호자들의 목소리로 고스란히 담겼다.
“간병인들이 석션, 도뇨관, 위루관 소독 이런 거 다 했죠.”
“의사들도 다 알고 있었나요?”
“그렇죠. 왜냐하면 진료 보다가도 석션해야 하면 제가 석션하죠.”
“간호사나 의사가 (석션 등을) 해달라고 (간병인들에게) 요구했던 건가요?”
“간병인한테 가져다주죠. 간병인들이 간병교육 받을 때 석션 교육을 받는대요. 저희 아버지는 음식을 못 드셔서 엘튜브(코에서 위까지 튜브를 삽입)를 끼고 계셨어요. 엘튜브로 투약을 하는데 간병인이 (약을) 더 잘게 안 갈아서 튜브가 한 번 막힌 적이 있어요. 그걸 발견하고 간호사가 간병인을 막 혼내더라고요. 투약은 의료 행위이고, 이건 간호사가 하라고 강력하게 오빠가 요구를 하니 간호사가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황당한 거죠.”
모두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제5항은 무자격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하거나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위반 시 4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관련 의료기관은 개설허가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해당 처벌 규정은 지난 3월 개정 의료법에 의해 시행됐으나, 그 이전에 행해진 의료행위는 의료법 제27조 제1항 무면허 의료행위, 형법 제31조와 32조 교사·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게 임자운 변호사 말이다.
간병인의 불법 의료행위로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병원과 간병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13일 만난 유희경 활동가는 “알츠하이머를 앓았던 아버지 돌봄을 위해 간병인을 고용한 적이 있다. 간병인이 기도로 선식을 주입하다 기도가 막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며 제대로 대처를 안 하더라”며 “낙상 사고가 일어나도 병원 책임이 아니라는 각서를 쓰게끔 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빛 좋은 개살구’ 전락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간병 실태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빛 좋은 개살구’ 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제도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고 간호 인력이 입원환자를 직접 돌봐 간병비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로 2013년 도입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일부 비용을 지원한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국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도입률은 2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증 환자들은 병원들의 거부로 제도에서 소외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주성 활동가는 “간병 문제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새로운 제도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걱정 없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나금 환자권익연구소장(고 권대희 씨 어머니)은 “병원과 의료진이 비의료인인 간병인과 가족들에게 의료행위를 떠넘기면서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거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며 5개 대형병원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이유를 말했다.
한편 간병시민연대는 간병비 부담 개선 등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한 시민단체다.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를 비롯해 4~5명의 활동가와 회원 180여 명으로 꾸려졌다. 3년간의 프로젝트 단체로 결성됐다. 이번 고발이 단체의 첫 번째 발걸음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전면 확대하고 간병비를 건강보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이들의 목표다. 간병인의 법적 자격을 만들어 간호사와 간병인 등의 역할을 분리하는 방법도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간병시민연대는 향후 2, 3차 고발과 캠페인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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