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감이 화제다. 올해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BAFTA)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Every award is meaningful, but this one especially recognised by British people, known as very snobbish people, and they approved me as a good actor so I’m very, very privileged.”
“모든 상은 의미가 있지만, 이 상은 특별히 매우 OOOO 하는 영국인들로부터 받은 상이라서 더욱 그렇다. 그들이 나를 매우 좋은 배우라고 인정해 준 것이며 그래서 나는 매우 매우 영광스럽다.”
관객석에서 폭소와 박수가 쏟아졌고 사회자도 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면서 우리 언론도 보도를 쏟아냈다. 여기서 OOOO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은 ‘snobbish’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속물적인, 고상한 체하는, 우월감에 젖어 있는’이라는 의미다. 최초 보도에서는 대부분 언론이 이를 ‘속물적인’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우리 말의 뉘앙스를 볼 때 재치 있다는 느낌이 덜 들었는지 이후 ‘고상한 체하는’으로 번역한 보도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은 왜 윤여정의 ‘snobbish’라는 표현에 폭소한 걸까. 유머는 보통 사회적 맥락이나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100% 공감하며 웃기 어렵다. 영국에서 8년간 거주하며 영상콘텐츠 번역 감수 일을 하고 있는 김현오 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김 씨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원래 말을 직설적으로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보통 돌려 말하거나 사카즘(sarcasm)이라고 해서 은근히 빈정대는 형태로 농담을 건네며, 직접적인 표현을 피한다. 그런데 윤여정은 그런 영국인들에게 ‘돌직구’를 던진 것 자체가 가장 큰 웃음 포인트라는 것.
그렇다면 ‘snobbish’라는 표현은 영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김 씨는 영국이 전통적인 계층 사회이다 보니 우월의식이 있는 상류층이나 혹은 잘난 척하는 사람에게 주로 사용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단어를 그런 사람에게 직접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속물을 의미하는 ‘snob’은 1820년대 영국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아직 왕실과 귀족 등 이른바 상류층이 존재하며 계급 문화가 강한 영국은 미국 등 다른 나라로부터 ‘snobbish’하다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게다가 윤여정의 영어 실력은 영국인들이 듣기에 절대 완벽하지 않다. 이를 두고 영국 BBC는 ‘Broken English’라고 표현했다. 해석하면 ‘콩글리시’ 혹은 ‘엉터리 영어’다. 우리로 따지면 맥락상 시의적절한 단어를 쓰지는 못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는 수준의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 같은 느낌이다.
즉, 영국인 입장에서는 아시아의 나이 든 배우가 다소 어눌한 영어로 돌직구를 날린 것. 미국식 스탠딩 개그가 정확히 이런 스타일이다. 우리로 따지면 ‘욕쟁이 할머니’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유럽 등 서구 문명은 아시아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snobbish’라는 단어에는 이러한 인식에 대한 인정의 의미도 한편으로는 깔려 있는 것. 윤여정은 시상식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snobbish’라는 표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10년 동안 캠브리지 대학에서 펠로우십을 하며 영국인들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but not in a bad way’라고 덧붙였다. 즉, 영국인이 ‘snobbish’한 면을 나쁜 쪽으로 본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데 이어 BTS의 빌보드 차트 1위, 그리고 배우 윤여정의 연기상 수상 소식까지 연일 낭보가 이어진다. 그동안 서구 사회는 유럽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강한 일본을 통해, 주로 지나치게 겸손한 아시아인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로컬’ 발언 등, 한국인 특유의 자존감 강한 입담은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묘한 통쾌함을 선사하며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를 깨고 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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