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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80년대 런던의 그 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잇츠 어 신'

그 시절 동성애와 에이즈에 관한 차별과 편견…무거운 소재를 10대 관점에서 발랄하게 해석

2021.04.12(Mon) 16:41:31

[비즈한국] 아주 예전에 친구와 언쟁이 붙은 적이 있다.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나는 이미 동성애인 사람을 남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으니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친구는 어떻게든 교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90년대였고, 아직 머리가 덜 여문 나이였기에 둘 모두 아는 척만 했지 제대로 된 지식은 없었다). 언쟁이 점점 심해지다가 급기야 친구는 나를 ‘쿨병’ 걸린 듯 바라보며 “만약 네 동생들 중 동성애자가 나와도 받아들일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때 그 친구에게 지기 싫어서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뭐”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가족이 커밍아웃 한다면 당시의 내가 태연하게 반응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2021년 1월 영국에서 방영된 ‘잇츠 어 신’은 국내에서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단독 공개되었다.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왓챠 익스클루시브에 단독 공개된 영국 드라마 ‘잇츠 어 신(It’s a Sin)’을 보면서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잇츠 어 신’은 에이즈라는 질병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던 198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동성애자 젊은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며 런던에 온 리치(올리 알렉산더), 재단사가 되기 위해 런던에 온 수줍은 소년 콜린(캘럼 스콧 하웰스), 그리고 동성애자인 자신을 고향 나이지리아로 보내려는 가족을 떠나 런던에 온 로스코(오마리 더글러스). 리치는 대학에서 연극과에 재학 중이던 질(리디아 웨스트)과 애시(너대니얼 커티스)를 만나 친구가 되고, 여기에 로스코와 콜린이 합류하며 이들은 ‘분홍 궁전’이라 명명한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

게이 소년 4명과 이들과 두루 친한 소녀 질. 가족에게 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했거나 부정당했던 게이 소년들은 런던에서 그야말로 신명 나고 질펀하게 젊음을 만끽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런던살이가 신명날 수 있었던 건 가족도 모르는, 가족도 외면하던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리고 젊음. 배우가 되고 싶은 리치, 재단사가 되고 싶은 콜린, 클럽을 운영하며 부자가 되고 싶은 로스코 등 이들이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이라는 점을 ‘잇츠 어 신’은 잘 보여준다.

주인공 리치를 연기한 올리 알렉산더는 실제 커밍아웃한 배우로, 진정성 어린 연기를 선보였다.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재미있고 즐겁던 이들의 삶에 어두움을 드리우는 건 에이즈. 에이즈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에 처음 보고된 것이 1981년 6월 5일이었고, 동성애자 남성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기에 초창기에는 ‘게이 감기’ ‘게이 암’으로 불렸다. 한 번 걸리면 무조건 죽는 불치병으로 알려졌기에 죄악시되었고 동성애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은 물론이다. 지금은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에 감염되어도 무조건 에이즈로 발전하지 않고, 약물로 조절하여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음을 안다. 또한 동성애자 남성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저 시대에는 저런 오해와 편견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처음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어 퍼졌을 때, 서구권 사람들이 동양인이 원인인양 오해하고 핍박하던 것을 생각해보라(안타깝게도 지금도 그런 차별의 시선을 가진 사람이 많다).

행동하고 연대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 질.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멤버 중 가장 얌전하던 콜린이 에이즈에 걸린 게 밝혀지면서 ‘잇츠 어 신’은 본격적으로 에이즈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조명한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외면하며, 누군가는 손을 잡고 연대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가장 먼저 접하고 그 편견을 걷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리치나 콜린, 로스코, 애시 같은 게이 소년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던 소녀 질이라는 점. 질은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연대해야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멤버 중 가장 먼저 에이즈로 떠난 콜린의 엄마의 대사도 의미심장하다. “이성애자 남자애들이 이 정도로 죽었으면 세상이 멈췄을 거야.”

‘잇츠 어 신’은 차별금지법 입법을 두고 말이 많은 이 시대에 시청해봤으면 하는 드라마다. 물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일 거다. 적극 찬성하는 사람, 적극 반대하는 사람, 소극적으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 뭐가 뭔지 잘 모르면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 나와 관계없으니 일절 상관없다는 사람 등등. 아직 살 날이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20여 년 전 친구와 언쟁하던 때보다는 나이도 먹고 경험도 쌓은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나와 관계없으니 상관없다’는 건 게으르다는 걸 안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겪을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일은 나에게 절대 생길 리 없어’ 하는 일들도 인생에선 종종 생긴다. 그리고 옛날에 옳다고 여겼던 일이 지금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잘 모른다고, 나랑 상관없다고 그냥 외면하는 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소재에 전혀 관심이 없다 해도 시청할 것을 추천하고 있는 것.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와 동양인 차별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시대여서인지, ‘잇츠 어 신’​이 그리는 1980년대 런던의 성소수자들의 연대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진=드라마 화면 캡처


5부작으로 구성된 ‘잇츠 어 신’은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발랄하면서도 마냥 가볍지 않게 다루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재미와 감동은 물론 생각할 여지까지 준다. 작년 왓챠 익스클루시브에 공개되며 엄청난 호평을 받았던 ‘이어즈 앤 이어즈’의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했고, 실제 동성애자인 배우 올리 알렉산더가 리치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올리 알렉산더가 맡은 리치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그런 건 잊겠죠. 정말 재밌었다는 걸요”라고 할 때, 그 심정을 잘 알 수 없으면서도 울컥하게 되는데, 그만의 진정성 어린 연기 때문일 거다. 

이 드라마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지만 보지도 않고 동성애자들이 나온다고 덮어놓고 비판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아, 80년대 런던을 다룬 덕에 그 시절 분위기를 담은 노래들이 여럿 흘러나오니 그 시절에 향수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가울 듯.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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