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3월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대한민국 우주전략보고회가 개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 연설을 했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발언이 있었다.
“2029년 지구에 접근하는 아포피스 소행성에 대해서도 타당성을 검토하여 탐사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그냥 두리뭉실하게 “우주 개발에 힘쓰겠다” “우리도 달에 가겠다” 같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 원수가 ‘아포피스’라는 꽤 특정한(specific), 그리고 전문적인 특정 천체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원래 아포피스(apophis)는 이집트 신화 속 태양의 신 ‘라’에 대적하는 무시무시한 악신의 이름이다. 매일 태양 신 라와 어둠의 신 아포피스가 서로가 서로를 쫓는 술래잡기를 하면서 낮과 밤이 찾아온다고 전해진다. 아포피스는 그 무시무시한 유래에 딱 걸맞은 천체의 별명이기도 하다. 바로 머지않아 지구에 충돌할지 모르는 가장 위협적인 소행성의 이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대한민국은 앞으로 아포피스가 지구 바로 곁을 스쳐지나가는 2029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행성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탐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한 청사진을 넘어 현재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 아포피스 탐사 프로젝트를 위한 다양한 준비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아포피스는 지구와 충돌하게 될까?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런 무시무시한 녀석에게 탐사선을 보낼 수 있을까?
현재 연구진은 2029년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 아포피스를 향해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의 소행성 탐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지구는 운이 좋을 것 같다
소행성 중에서 그 궤도가 지구 궤도와 겹치면서 운이 나쁘면 지구와 부딪힐 수 있는 소행성을 지구 근접 천체(Near Earth Objects, NEO)라고 한다. 특히 지구 궤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때 0.05AU, 즉 지구-달 사이 거리의 20배보다 더 가까이 접근하고, 22등급보다 더 밝고 지름이 큰 소행성들을 따로 빼내서 지구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지구 위협 천체로 분류한다. 크기가 작은 소행성 부스러기들은 지구에 접근해도 대부분 대기권에서 불 타 사라지기 때문에 충돌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크기가 대략 100여 m 이상, 22등급보다 밝다면 지구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런 잠재적인 위협 천체들은 약 2000개가 넘는다.
이렇게나 많은 소천체들이 지구를 노리고 있다니! 우리는 매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보니 지구를 위협하는 존재가 우주 바깥에 있다는 현실을 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보다 지구는 굉장히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운 좋게 위험한 순간을 매일 넘기며 연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99942 아포피스는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녀석이다. 2004년 처음 발견된 아포피스는 약 300m 크기의 소행성으로 63빌딩보다 더 큰 꽤 거대한 돌멩이다. 지구 위협 소천체들의 위험도는 지구와 충돌할 확률과 소행성의 운동 에너지 두 가지를 기준으로 1부터 10까지 매긴다. 이러한 방식을 토리노 스케일이라고 한다. 2004년 처음 발견된 당시 아포피스는 2029년 무려 2.7%의 확률로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고 추정되었다. 토리노 스케일이 4를 찍은 최초의 소행성이다. 그래서 아포피스는 곧 지구에 가장 현실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알려졌다. 이집트 신화 속 어둠을 몰고 오는 신 아포피스가 천체의 모습으로 새롭게 형상화된 것 같다. 정말로 아포피스가 지구와 충돌한다면 공룡을 멸종시킨 수준의 대멸종은 아니더라도 꽤 끔찍한 결말이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 NASA의 예측에 따르면 아포피스가 충돌할 경우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만 배를 넘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지구 전체가 요동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 이후의 추가 관측이 이어지면서 아포피스가 앞으로 어떤 궤도를 그릴지에 대한 추정치 역시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2004년 12월 지속적인 레이더 관측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던 2029년의 충돌 위험성은 배제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살짝 늦은 2036년과 2068년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지구인들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일단은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다. 가장 최근 2021년 3월 지속적인 추가 레이더 관측을 통해 더 방대한 데이터로 업데이트된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68년을 넘어 적어도 앞으로 100년 안에는 지구와 아포피스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수억 분의 1 수준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 예측한 2029년이 찾아오면 4월 13일 아포피스는 굉장히 가까이 지구에 접근할 예정이다. 지구에 무려 3만 2000km까지 접근한다. 지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지구정지궤도 인공위성보다 더 지구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인간이 날려보낸 인공위성보다 지구에 더 가까이 지나가는 소행성이라니! 쌍안경으로도 그 모습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지구에 바짝 붙어 지나간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최대 겉보기 등급이 3등급까지 밝아지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에선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다행히 지구에 그대로 충돌하지는 않겠지만, 운이 나쁘면 일부 인공위성들은 아포피스의 중력으로 인해 궤도가 살짝 틀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일단 지금까지 모니터링한 가장 최신의 결과에 따르면 일단 지구는 앞으로 100년 동안은 운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 또 언제 이 희망적인 예측이 뒤집힐지도 모를 일이다.
#왜 이렇게 자꾸 예측이 바뀔까
그렇다면 대체 왜 이렇게 예측이 계속 바뀌는 걸까? 지구를 수호하는 천문학자들의 예측을 안심하고 믿어도 되는 걸까?
아포피스를 비롯한 많은 작은 소행성들은 둥근 공 모양이 아니라 길고 찌그러진 불규칙한 모양을 갖고 있다. 우주를 떠도는 거대 감자, 고구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소행성들은 불규칙한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을 한다. 그래서 태양빛을 반사하는 면의 면적이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자전하는 소행성을 관측하면 주기적으로 그 밝기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는 양상을 띈다. 그리고 그 주기로 자전 주기를 추정할 수 있다.
최근 관측된 아포피스의 밝기 변화를 보면, 아포피스 자체의 자전 주기는 약 260시간으로 아주 길다. 하지만 자전축 자체가 뒤틀리면서 소행성 전체가 뒤흔들리는 세차 운동의 주기는 약 27시간으로 굉장히 짧은 편이다. 아포피스는 꽤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면서 뒤흔들리는 텀블링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소행성이 빙글빙글 돌면서 뒤흔들리고 있다면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릴지 예측하기 더 어려워진다. 소행성은 태양의 중력에 붙잡혀 궤도를 돌지만 중력뿐 아니라 태양 빛의 영향도 받는다. 태양 빛을 흡수한 소행성은 그 흡수한 에너지를 다시 복사의 형태로 방출한다. 이때 소행성이 열 에너지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소행성은 그 반대 방향으로 일종의 추진력을 얻게 된다. 이러한 효과를 야르콥스키 효과(Yarkovsky effect)라고 한다.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소행성의 낮쪽 부분과 태양을 등지고 있는 소행성의 밤쪽 부분은 표면 온도가 달라지고 결국 우주 공간 바깥으로 복사하는 열 에너지의 양이 달라진다. 이러한 비대칭은 소행성의 궤적에 꾸준히 영향을 줄 수 있다.
2014년 67P 혜성을 방문한 로제타 탐사선은 실제로 태양 빛을 받으면서 야르콥스키 효과를 겪고 있는 혜성 표면의 다이나믹한 변화들을 포착했다. 태양 빛을 받은 혜성 표면의 얼음이 녹으면서 수시로 강한 제트를 내뿜었다. 또 열과 복사 에너지에 의해 혜성의 절벽 일부가 붕괴하거나 암석의 위치가 이동하는 등 크고 작은 표면의 지형 변화가 포착되었다! 아무도 없는 혜성에서 대체 누가 돌멩이를 옮겼을까? 그 범인은 바로 태양 빛에 의한 열 복사일 것이다. 불과 1~2년 사이에 촬영한 혜성 67P 표면의 같은 영역을 비교하면 뚜렷한 지형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혜성에서도 꾸준히 지도를 업데이트해주어야 한다.
문제는 아포피스가 깔끔하게 둥근 공 모양의 천체가 아니라 크게 찌그러진 복잡한 형태의 돌멩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아포피스는 꽤 빠른 속도로 뒤흔들리며 매 순간 태양 빛을 받는 영역의 면적이 변하고 있다. 결국 아포피스가 매순간 받게 되는 야르콥스키 효과의 방향과 정도를 추정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게다가 지구와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구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 자체도 아포피스의 궤도 변화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치 목성 중력의 도움을 받아 탐사선들이 궤도를 트는 플라이바이를 하는 것처럼 지구의 중력에 의해서 아포피스가 속도를 얻거나 잃을 수 있다. 지구 곁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는 건 당장은 지구와 부딪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순간이지만, 지구 곁을 지나가면서 궤도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앞으로의 궤도 추적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불안한 순간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2013년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한 아포피스의 형태를 보면 단순히 길쭉한 감자 모양일 뿐 아니라, 혜성 67P처럼 두 개의 덩어리가 맞붙어있는 이중 로브(Double lobe) 형태인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정말로 두 개의 작은 덩어리가 맞붙어 있는 형태의 소행성이라면 아포피스의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 난감해진다. 지구 근처를 지나갈 때 지구의 강한 중력에 의해서 아포피스 표면에서 크고 작은 붕괴와 산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일부 지형이 무너지면서 소행성 형태가 크게 변화할 수 있다. 그러면 또 다시 태양 빛을 받는 소행성 표면 면적 자체가 크게 변하기 때문에 이후의 야르콥스키 효과의 영향을 예측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이중 로브 형태라면 가까운 미래 정말 아포피스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확인되어 지구를 지켜야할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영화 ‘아마겟돈’이나 ‘딥임팩트’처럼 직접 소행성에 폭탄을 투하하거나 큰 충격을 가해 소행성의 궤도를 트는 방식을 시도할 경우, 이중 로브 형태의 소행성이 두 동강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쪼개진 각 로브의 행방은 더욱 추적이 어려워지고 예상치 못한 끔찍한 결말이 날 수도 있다. 지구를 구하려고 시도한 프로젝트가 오히려 지구를 대재앙의 길로 인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복잡한 요소들 때문에 아포피스를 비롯한 지구 근접 위협 소행성들의 예상 궤도는 새로운 최신 관측 결과가 반영될 때마다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장 확실하게 아포피스의 예상 궤적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2029년 지구 곁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지속적인 레이더 관측, 그리고 가능하다면 탐사선을 직접 날려보내서 아포피스의 구성 성분과 지형 지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대담한 탐사에 대한민국이 야심 찬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멀리 날아갈 기술이 없다면, 알아서 지구에 다가오는 천체로 가겠다!
마침 2029년 지구 곁을 아주 가까이 지나가는 아포피스를 아주 멋진 우주 탐사의 무대로 활용해볼 수 있다. 최근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은 아포피스로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주 개발의 후발주자 국가로서 냉정하게 말해서 아쉽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아직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목성 너머의 혜성이나 태양계 끝자락 명왕성 너머까지 탐사선을 정교하게 보낼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한 상황이다. 그간 놀라운 발전을 통해 지구 주변 저궤도에 많은 발사체와 인공위성을 쏘아올렸지만, 갑자기 중간 과정 없이 심우주 탐사를 목표로 넘어가는 건 비현실적인 목표다.
그런 점에서 아포피스는 우리나라와 같은 우주 개발 후발주자 입장에서 굉장히 고맙고 흥미로운 천체다. 굳이 우리가 지구 궤도 바깥 심우주 멀리까지 날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천체가 지구 코앞까지 날아와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달보다 더 가까운, 지구정지궤도 인공위성 수준으로 지구에 가까이 접근한다! 이 정도 거리면 현재의 대한민국 우주 기술로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거리다!
물론 단순히 목표 궤도 위에 인공위성을 안착시키는 것에 비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 곁을 지나가는 소행성 곁에 탐사선을 무사히 보내는 건 훨씬 까다로운 일이다. 그러나 당장 갑자기 대한민국의 탐사선을 화성으로 보내겠다, 우리도 명왕성에 가겠다와 같은 무리한 목표에 비해선 훨씬 타당하고 실현 가능한 흥미로운 계획이다.
이미 소행성 탐사는 태양계 우주 탐사와 자원 개발의 측면에서 중요한 분야로 떠올랐다. 일본 JAXA의 하야부사2 탐사선은 앞서 2018년에 지구 근접 소행성 류구에 접근해 성공적으로 소행성 샘플을 채집했다. 그리고 2년 뒤 2020년 9월 샘플을 실은 캡슐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와 호주 사막에 착륙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은 앞선 혜성 탐사에서 찾는 데 실패했던 지구의 물의 진짜 기원에 관한 실마리를 바로 그 류구 소행성 샘플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20년 10월 NASA의 OSIRIS-REx 탐사선은 소행성 베누의 표면을 터치다운 했다. 그 과정에서 탐사선과의 충돌 여파로 튀어나온 샘플을 채집했고 2023년 그 샘플을 실은 캡슐이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처럼 최근 소행성 탐사의 새로운 막이 시작되었다. 태양계 초기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한소행성은 태양계의 형성과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단서를 제공할 뿐 아니라, 지구에서는 드문 희귀한 광물과 금속을 품고 있어 다양한 자원의 보고로 기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많은 기업에서 아예 소행성을 지구 근처 궤도로 옮겨와서 지속적인 채굴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수준의 연구를 계획하기도 한다. 그만큼 소행성 탐사는 21세기 새로운 우주 탐사의 주인공으로 각광받고 있다.
게다가 다른 소행성도 아니고, 수년 전부터 가까운 미래 지구를 파괴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생각해온 아포피스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탐사인가! 가까운 미래 정말 아포피스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확인되었을 때 지구가 가장 안전하게 살아남으려면 어떤 방식으로 지구를 지켜야 할지, 소행성에 미사일을 쏴야 할지, 탐사선들을 보내서 중력을 활용해 소행성 궤도를 틀어야 할지, 세부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아포피스의 정확한 특징을 파악하고 그 지도를 그려야 한다. 결국 2029년 정말 현재의 계획대로 대한민국의 아포피스 탐사가 성공한다면, 가까운 미래 가장 현실적인 위협에서 인류 전체의 존속을 위해 진행된 가장 매력적인 프로젝트, 지구 방어 예행 연습 프로젝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아마도 계획이 잘 진행되어 2029년 대한민국의 아포피스 탐사선이 우주로 날아오른다면, 아마 국내의 많은 언론에선 “드디어 우리도 우주에 간다”는 식의 말만 내세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던 우주 개발의 영역에 “이제야 드디어 우리도 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일반 시민들에게 소위 ‘국뽕’이라 불리는 감성을 자극하며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의 당위성과 막대한 예산 투입에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전략이라는 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미국의 사회과학자 도로시 넬킨은 ‘셀링 사이언스’를 통해 과학을 단순히 국가 간의 속도 경쟁, 올림픽 스포츠처럼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 역시 그 염려에 공감한다. 과학 탐구의 과정을 단순히 체제 경쟁, 국뽕으로 대하고 열광하는 건 이미 반 세기 전 아폴로 달 탐사 경쟁 시대에 경험한 철 지난 전근대적 마인드 아닐까?
미국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시작으로 총 여섯 번에 걸쳐 자국의 우주인을 달 표면에 착륙시켰다. 사실 얼핏 보면 달 탐사는 우주 공학과 달 지질학 등을 연구하는 지극히 과학적인 목적의 우주 탐사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 미국 정부와 시민들이 아폴로 탐사를 대했던 방식을 보면 오히려 과학보단 정치를 내세운 선전용 행사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러한 탐사의 왜곡된 목적성은 아폴로 미션 자체가 선전을 위해 조작된 허구일 것이라는 음모론이 유행하는 안타까운 배경을 제공했다.)
그런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면이 있는데, 실제 아폴로 11호부터 (중간에 실패한 13호 빼고) 17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탐사에서 달에 간 우주인에는 과학자가 없다. 당시 칼 세이건이 지적했듯이 전부 미국의 정치 선전용 마네킹이 될 수 있는 백인 남성에 군인 출신이었다. 그나마 순수한 과학자가 우주인으로 합류했던 건 가장 마지막의 아폴로 17호 미션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제야 과학자가 달에 가서 과학적 연구를 시작하는건가 싶었던 무렵, 곧바로 아폴로 미션은 17호에서 종료되었다. 이미 소련과의 우주 냉전 갈등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비싼 예산을 들여서 달에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가 달에 대해 더 알아내야할, 달의 기원과 지구와 태양계의 형성의 비밀에 관해 풀어내야할 과학적 과제는 차고 넘쳤지만 미국 정부는 그런 과학적 호기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애초부터 과학이 아니라 정치에 주된 목적을 둔 탐사쇼였기 때문에 그렇게 아폴로 미션은 필요성을 잃게 되었다.
애초부터 달 탐사가 정치적인 목적을 배제한 순수한 우주 연구를 위한 공학적·과학적 목적만 있었다면 처음부터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들을 달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쉬지 않고 계속 새로운 샘플을 갈망하는 과학자들의 특성상 어쩌면 지금까지도 아폴로 미션이 이어지면서 벌써 아폴로 100호 탐사선이 달로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아폴로 미션은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시작된 미션이 아니었다. 아폴로 탐사선을 우주로 보낼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추진력의 근원은 “상대 국가(소련)보다 먼저 달에 가야만 한다”는 정치적 당위성과 조급함이었다.
물론 그런 정치적 슬로건 덕분에 인류는 50년도 더 전에 벌써 달에 다녀올 수 있었다. 소련보다 빨리 가야 한다는 프로파간다가 아니었다면, 사람을 달에 보내는 쓸데없어 보이는 ‘돈 낭비’에 과연 미국 시민들이 응원할 수 있었을까? “국뽕” “상대 국가와의 체제 경쟁” 등 정치적이고 대립적인 배경 없이 순수한 우주를 향한 꿈과 호기심만으로는 우주로 갈 수 없는 존재인 건 아닐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아포피스 탐사선이 성공했을 때, 우리 역시 철 지난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아포피스 탐사를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탐사선 몸체에 태극기가 그려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국뽕을 빼더라도, 항상 지구를 위협하는 소행성의 샘플을 채취한온다는 과학적인 사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대한민국의 소행성 탐사는 북한이 못한 걸 먼저 했다고 해서 더 대단해지는 것도 아니고, 일본과 미국이 성공한 걸 뒤늦게 시도했다고 해서 별 볼일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포피스라는 의미 있는 천체를 탐사했고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훌륭하고 뿌듯한 일이다. 그 발견을 통해 가까운 미래 인류의 존속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그렇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만일 국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아포피스 탐사를 바라보게 된다면, 이제야 우주 탐사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하나에만 매몰되어 추가 탐사의 필요성, 추가 우주 개발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시민들의 동의를 얻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과학이 아닌 정치를 목적으로 두고 달에 갔던 아폴로 미션이 쭉 이어지지 못하고 금방 맥이 끊겨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과학적인 목적에 함께 주목한다면 뒤이어 더 많은 탐사선들을 우주로 올릴 충분한 공감대와 지지를 얻을 수 있으리라.
아포피스를 향해 한국의 탐사선이 떠나는 2029년에는 우주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 그 자체로 평가하고 즐기는 성숙한 시대가 되어 있기를 꿈꿔본다.
*참고
https://www.psi.edu/news/jordancomettorque
https://www.europlanet-society.org/comets-collapsing-cliffs-and-bouncing-boulders/
https://www.planetary.org/articles/will-apophis-hit-earth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55/6332/139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7-009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0641-8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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