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데이터와 브랜딩은 참 안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이다. 데이터는 디지털 그 자체로 다가오는데 반해, 브랜딩은 좀 더 아날로그적인 색채가 강해서다. 혹은 이과와 문과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묘한 공통점도 있다. 둘 다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해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가 만나게 된 건 온 세상이 한번 뒤집히고 난 이후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고, 그건 기업과 소비자 사이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브랜딩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지금, 기업은 어디에서 어떻게 소비자를 만나 자기다움을 각인시킬 수 있을까.
데이터 브랜딩 - 대전환 시대, 데이터는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김태원 지음, 유엑스 리뷰
349쪽, 1만 8000원
지난 10년 간 기업 활동에서 ‘빅데이터’는 최고의 화두 중 하나였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도 데이터 수집은 끊임없이 이뤄졌지만, 무작정 수집된 비정형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하고 통합해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 낼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사례가 극히 드물었다. 어쩔줄 몰라 우왕좌왕 하는 사이 데이터는 점점 눈덩이처럼 쌓여만 갔다.
‘데이터 브랜딩’의 저자 김태원 이노션 월드와이드 데이터 커맨드 센터 국장은 아직도 우리가 낡은 접근 방식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수집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데이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
데이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데이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데이터 안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에 대한 분석의 목적이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분석의 관점이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분석할지에 대한 체계적인 프레임이 필요합니다. -71쪽
저자는 데이터 속에 파묻혀 답을 찾아내려고 하지 말고, 그 데이터 위에 올라서서 더 먼 곳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그러기 위에서는 먼저 데이터에 대한 환상부터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데이터에 기반한다고 해서 그 결론이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깊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분석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데이터 드리븐’ 즉 데이터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강조하지만, 이제는 ‘데이터 드라이빙’ 즉 데이터를 주도하는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데이터는 결코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털어놓지 않는다.
데이터 사용자의 역량은 여기에서 갈린다. 도무지 어떤 의미인가를 알수 없었던 데이터들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것은 실제 비즈니스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데이터텔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데이터 스토리텔링의 정수는 데이터들의 점들을 잇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연관 관계가 없었던 데이터가 새롭게 다른 데이터와 연결되어 의미 부여되는 것. 그것이 데이터 스토리텔링의 시작입니다. -144쪽
데이터에 대한 환상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나니, 이제 서서히 브랜딩과의 접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데이터가 브랜딩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걸까. 저자는 대전환 시대에 전통적인 브랜딩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제 브랜드를 관리하고 규정하는 ‘정체성(Brand Identity)’에서 상황에 맞게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동태성(Brand Context)’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발칙하게 주장한다.
일관성이 브랜드를 통제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경직되고 단조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관성만을 강조하면, 역동성과 다양성을 잃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유가 사라집니다. 반면, 위대한 브랜드는 일관성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처럼 진실과 진심에 집중하고 ‘진정성’을 목표로 둡니다. -294쪽
동태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이나 제품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 즉, 맥락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리고 디지털과 코로나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한 지금 상황에서 컨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유일한 방법이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와 브랜딩은 여기에서 결국 만나게 된다. 빙고.
지난 수십 년 간 정립되어 온 브랜드 방법론에 새로운 시도를 촉구하는 ‘데이터 브랜딩’은 혼란스러운 작금의 상황에서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그저 고집만 부리기엔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봉성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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