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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게임 이용자는 왜 스스로를 '개돼지'라고 할까

경쟁심 부추기고 사행성 조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대체할 혁신이 필요하다

2021.04.02(Fri) 15:55:36

[비즈한국] 2021년 대한민국 게임업계는 그 어느 해보다 뒤숭숭하다. 1월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 트럭 사건’을 시작으로, 2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 문양 업데이트 롤백 사건’, 3월에는 ‘메이플스토리 보보보 강화 확률 조작 논란’이 잇달아 터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사들에 대한 이용자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 와중에 일어난 게임사들의 이례적인 개발자 연봉 인상 경쟁은 게임 이용자들에게 ‘사기쳐서 번 돈으로 잔치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사 3N(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사에서 벌어진 이들 사건은 각기 다른 이유로 벌어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다. 바로 게임사와 이용자 간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도 아니다. 그간 크고 작은 충돌과 마찰이 빚어졌고, 그것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비단 게임 이용자 뿐만 아니라 오늘날 소비자들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뭔가 옳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방영 중인 드라마 제작도 중단시킬 만큼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순식간에 여론이 형성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법도 안다. 가령 게임 이용자들에게 모든 게시물에 ‘●▅▇█▇▆▆▅▄▇’와 같은 이모티콘을 달며 ‘눕는’ 온라인 시위를 하거나,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게임사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담은 시위 트럭을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 ‘확률형 아이템 규제’와 같은 게임사에게 부담스러운 입법을 청원하며 압박에 나서기도 한다.

 

네트워크 기반 게임은 그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도 중요하지만, 이용자들과 함께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과정도 콘텐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진=로스트아크 영상 캡처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하면 좋을까. 당장 각종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게임 이용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면 될까. 그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실제로 게임사들은 게임 이용자들을 소중히 여긴다. 적어도 대놓고 무시하지 않는다. 게임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소수의 인기 게임만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수년간 적잖은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주목받은 게임인데, 게임 이용자를 그렇게 무시하고 당장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게임사는 단언컨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게임 이용자들은 분노한다. 게임사가 이용자를 ‘개돼지’로 대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사들이 무료로 주는 소량의 유료재화나 게임 아이템을 ‘사료’라고 부르는 건 이러한 자조적 의미가 담겼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부분 게임 이용자들의 요구 사항이 유료 아이템의 가격을 낮춰달라거나, 혹은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높여달라는 단편적인 게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소통’을 바란다. 그 어떤 게임 관련 커뮤니티를 둘러봐도 소통을 해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다.

 

일부 이용자들은 게임에 수십만 원 혹은 수백만 원을 쓴다. 더 나아가 ‘리니지M’과 같은 게임에서는 억 단위의 돈을 지불하는 것도 스스럼이 없다. 비싼 취미의 대명사인 골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사실 그렇게 돈을 쓰는 게임 이용자들도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돈을 쓰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게임 내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디지털 데이터에 돈을 지불하는 경험이 충분히 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부분유료화’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2001년 넥슨의 ‘퀴즈퀴즈’를 시작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부분유료화 비즈니스 모델은 게임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여기에 ‘확률’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전통적인 패키지나 정액제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익이 극대화됐다. 이후 20년 동안 게임사들의 확률형 아이템은 점점 노골화됐고, 이제 이용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임계점에 이르렀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작정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통념상 상식적이지 않을 때, 우리 사회는 결코 그것을 좌시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제재를 가하게 된다. 90년대까지 미국과 일본 중심의 게임 산업에서, 2000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인프라의 급속한 보급을 배경으로 온라인게임 산업이 태동했다. 이후 우리 게임 산업은 기성 세대의 낙후된 인식 속에 끊임없이 ‘마약’ 취급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게임사 편에 서준 건 다름 아닌 게임 이용자들이었다. 그런 이용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건 게임사들에게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게임 이용자들이 원하는 건 ‘게임사 문 닫아라’가 아닌 ‘소통’이다. 그게 단순히 지금까지 쓴 돈이 아까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은 애정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물론 당장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아무리 진심을 다해 ‘사과’하고 ‘사료’를 많이 뿌린다 해도 그때 뿐이다. 장기적으로 게임 이용자들이 납득할 만한 ‘부분유료화’를 뛰어넘는 혁신이 필요하다. 이용자 간 경쟁심을 비정상적으로 부추기거나, 신뢰할 수 없는 확률로 사행성을 조장해서 수익을 내는 방식은 이제 게임사 스스로 그만둘 때가 됐다. 게임 이용자들이 ‘욕하면서 돈쓰기’가 아닌 자발적으로 ‘돈쭐’을 내주고 싶은 그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사람들은 왜 게임을 할까.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게임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간접 체험을 제공한다. 가령 인류 최초의 예술로 불리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그것을 보는 원시인들에게 사냥의 고됨과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게임이 ‘제 10의 예술(le dixième art)’로 거론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비교적 최근에 예술로 인정받은 영화, 미디어아트, 만화보다 훨씬 더 생생한 간접체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게임을 통해 16세기 대항해시대 신대륙을 찾아 헤매는 항해사가 될 수도 있고, 후한 말 삼국 시대 중국을 통일하는 군주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상상 속에만 있는 판타지 세계에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간접체험 속에서 사람들은 희로애락의 감정과 함께 감동을 받는다.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게임 이용자들은 충분히 ‘돈쭐’을 내줄 준비가 돼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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