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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한 영향력? 김준기 전 DB 회장 복귀에 김남호 회장 지위 흔들리나

2월 2심서 성폭행 유죄 받고도 3월 임원에 선임…경제개혁연대 "최소한의 준법 감수성도 결여, 회사에 도움 안 돼"

2021.04.01(Thu) 19:43:05

[비즈한국] 가사도우미 성폭행 및 비서 성추행 혐의로 DB그룹 회장직을 내려놓은 김준기 전 회장이 3년 6개월 만에 계열사 미등기임원으로 복귀했다. DB그룹은 경영 복귀가 아닌 조언과 자문 역할을 위해 선임됐다고 설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성폭행 및 성추행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일 뿐만 아니라 자숙의 시간조차도 없이 복귀했기 때문이다. 

 

#김준기 회장의 성폭력과 회장 사임

 

김준기 전 회장은 2017년 9월 여비서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김준기 전 회장은 당시 “개인의 문제로 인해 회사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동부그룹의 회장직과 계열회사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김준기 전 회장은 성추행 논란이 커지기 전인 2017년 7월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출국해있었다. 3번의 경찰 소환 통보에도 김준기 전 회장은 “치료 때문에 곤란하다”며 귀국을 미뤄왔다. 

 

김준기 전 DB 회장(왼쪽)과 그의 장남 김남호 DB 회장. 사진=비즈한국 DB


김준기 전 회장이 소유한 경기도 남양주 별장에서 2016년부터 약 1년간 일하던 가사도우미 A 씨가 ​2018년 1월 ​김준기 전 회장을 고소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고소 내용은 김준기 전 회장이 가사도우미 A 씨를 8차례 성추행하고 5차례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치료를 이유로 소환에 거부하던 김준기 전 회장은 여권이 무효가 되고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오르자 2019년 10월이 되어서야 자진 귀국했고, 공항에서 체포됐다.

 

2020년 4월 17일 1심 재판부는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취업제한 등을 명령했다. 지난 2월 18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유지됐다. 2심 재판부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지시에 따르는 가사도우미와 비서를 강제로 추행하고 간음한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더군다나 범행 이후 미국에 장기간 체류하며 수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등 범행 후 정황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준기 전 회장은 이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준기 전 DB그룹(옛 동부그룹) 회장이 올해 2월 1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준기 회장의 1심 직후인 2020년 7월 장남 김남호 씨가 DB그룹 회장으로 선임됐다. 대학 졸업 후 동부제철에 입사해 DB손해보험 부사장을 거쳐 DB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남호 회장은 경영수업을 일찌감치 받아왔고, 김준기 전 회장이 성폭력 문제로 물러나며 회장 취임 준비에 힘썼다. 김남호 회장은 DB손해보험 지분 9.01%, DB아이앤씨 지분 16.83%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 DB금융투자, DB캐피탈 등을, DB아이앤씨는 DB하이텍과 DB메탈 등을 지배하고 있다.

 

올해로 회장 취임 2년차인 김남호 회장은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회장직에 오른 이후 DB그룹 비금융 지주사인 DB아이앤씨(IT‧무역) 이사회 의장직까지 맡았다. DB아이앤씨는 IT, 무역을 주요 사업으로 삼고 있다. DB그룹은 그룹 매출의 90%가 DB손해보험, DB금융투자 등 금융계열사에서 나오고 있어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IT사업 등에 집중하고 있다. 김남호 회장은 취임 첫 달에 DB아이앤씨 데이터센터를 가장 먼저 방문해 임직원을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남호 회장이 DB아이앤씨의 의장을 맡으며 김준기 전 회장도 DB아이앤씨 미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김준기 전 회장의 성폭력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의 선임인지라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DB그룹 관계자는 “본격적인 경영 복귀보다는 창업자로서 50년간 그룹을 이끌어온 사업 경험과 경륜을 바탕으로 회사 경영에 대한 자문과 조언 역할을 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준기 전 회장은 DB아이앤씨 지분 11.2%를 갖고 있다.

 

#그룹 지배력 여전한 김준기 전 회장

 

김준기 전 회장의 경영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경제개혁연대가 즉각 반발에 나섰다. 29일 논평을 통해 “김준기 전 회장의 복귀는 최소한의 준법 감수성이 결여된 부도덕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법원의 집행유예 결정에 따라 석방됐지만 유죄가 선고됐고, 형사재판도 진행중이다.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회사에 득보다 실이 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소재 DB그룹 사옥. 사진=비즈한국 DB


이어 “경영 관여 목적이 없다면, 급여와 임원으로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편법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 아닌가. DB아이앤씨 이사회는 총수 일가가 아닌 회사를 위해 존재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주주와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이는 김준기 전 회장에 대한 해임을 의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등기임원은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회사가 임의로 직급을 부여한 것이지만 등기이사와 마찬가지로 회사와 위임관계를 갖는 지위를 획득한다. 그룹차원에서도 김준기 전 회장의 복귀는 큰 리스크인데, 여러 질타를 감내하며 임원으로 선임한 셈이다. 이는 김준기 전 회장의 그룹 지배력과 영향력이 건재한 것을 증명한 셈이다. 재계에서는 “김준기 전 회장이 자문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아들인 김남호 회장과 다른 이사들이 김준기 전 회장의 뜻을 거스르긴 힘들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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