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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우리가 알아야 할 제주의 아픔, 제주4·3평화공원

민간인 '빨갱이'로 몰아 대거 학살 '현대사 비극' 4·3사건 희생자 기리는 곳

2021.03.30(Tue) 19:46:40

[비즈한국] 유채꽃 만발하는 4월의 제주를 찾았다면, 아름다운 자연 말고도 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제주시 중산간을 가득 채운 골프장들 사이에 들어선 제주4·3평화공원이 그곳이다. 제주의 여느 곳처럼 쪽빛 하늘 아래 푸른 언덕이 펼쳐지는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이곳은 우리 현대사 최대의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사건’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40만 ㎡에 달하는 부지에는 4·3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탑과 위령제단, 평화기념관 등이 자리 잡았다. 

 

유채꽃 만발하는 4월의 제주를 찾았다면, 제주4·3평화공원도 꼭 보고 가시라. 제주4·3사건 희생자 1만 4121명의 이름을 새겨넣은 각명비. 사진=구완회 제공

 

#6년 넘게 이어진 민간인 학살 

 

시작은 평화기념관이 좋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공간에 제주4·3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전시실과 자료실이 모여 있다. 모두 6개의 전시 공간으로 이루어진 상설전시실의 입구는 동굴 터널로 꾸며놓았다. 제주4·3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제주도 곳곳의 동굴에 몸을 숨겼다. 제법 긴 동굴을 지나고 나면 비문 없는 하얀 비석이 누워 있다. 아직도 의문 투성이인 4·3사건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는 날, 누워 있는 비석이 세워지고 비문도 채워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어지는 전시 공간은 4.3사건의 배경과 원인, 시작에서 끝까지의 전개 과정을 꼼꼼히 보여준다. 흔히 제주4.3사건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 남로당원들이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경찰서 여러 곳을 습격하면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0년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의 시작은 그보다 한 해 앞선 1947년 3월 1일이라고 한다. 이날 3·1절 기념행사에 모인 제주도민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는데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후 6년이나 이어진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주4·​3평화공원 상설전시실 입구는 4·​3​사건 당시 사람들이 숨었던 동굴 터널로 꾸며놨다. 사진=구완회 제공


동굴을 지나고 나면 비문 없는 하얀 비석이 누워 있다. 여전히 의문 투성이인 4·3사건의 진실이 모두 밝혀지는 날, 누워 있는 비석이 세워지고 비문도 채워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경찰의 발포와 민간인 사망으로 격앙된 민심은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해방 이후 해외에 있던 동포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어려워진 제주도 경제 사정도 한몫했다. 여기에 정부의 여러 정책이 혼선을 빚으면서 민심은 더욱 나빠졌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고 성난 민심을 달래는 대신, 제주도를 철저히 진압함으로써 전국의 반정부 세력에게 본때를 보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육지에서 경찰뿐 아니라 서북청년단 등의 극우단체들이 들어와 무고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고문을 일삼았다. 

 

#비극을 막기 위해 비극을 기억하기

 

그리고 1년 여 뒤. 제주도의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던 남로당 세력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무장 봉기를 일으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군인과 경찰, 청년단 등으로 구성된 토벌대는 봉기와 무관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이런 학살은 한라산 입산 통제가 풀린 1954년 9월 21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 중 사망자와 실종자는 확인된 숫자만 1만 4121명. 정부 조사위원회는 총 희생자를 2만 5000~3만 명 사이로 추정한다. 

 

사건 이후 50여 년 만에 대통령이 공식 사과했고, 3년 뒤 제주4·3평화공원이 문을 열었다. 4·3​평화기념관에서는 제주4·3사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제주4·3사건 자체도 비극이었지만, 그 진상을 밝히는 일도 지난했다.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 상황에서 희생자들은 되레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숨죽여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진상 규명의 목소리는 높아졌으나 진상 조사는 더디기만 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시작된 것은 20여 년도 더 지난 2000년대에 들어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에야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졌다. 사건이 끝나고도 50여 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3년 뒤 제주4·3공원이 문을 열었다.​

 

평화전시관 앞의 너른 마당에는 위령탑과 위령제단, 각명비 등이 보인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확인된 희생자 1만 4121명의 이름을 새겨넣은 각명비다. 이름과 나이, 사망일자가 빼곡이 들어선 비석은 위령탑을 둥글게 에워쌌다. 그 중에는 이름을 짓기 전인 갓난아기도 있고, 초등학교를 다녔을 법한 아이들도 있고, 70을 훌쩍 넘긴 노인도 있다. 이들의 이름에 내가 알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을 포개어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70여 년 전 제주도의 비극을 모두가 잊지 않기를. 우리가 아이와 함께 제주4·3평화공원을 둘러봐야 하는 이유다. 

 

희생자들의 이름과 나이, 사망일자가 빼곡이 들어선 각명비가 위령탑 주변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제주4·3평화공원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30

△문의: 064-723-4344

△이용시간: 09:00~17:30, 매월 1,3주 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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