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에 걸린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은 공식적인 치료제가 없어 ‘진단받으면 사형선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최근 들어 유일한 치료법이라 여겨지는 신약 후보물질을 통해 만든 중국산 제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비싼 돈을 주고 어렵게 구한다고 해도 불법 자가 진료를 택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면서도 해당 제품 역시 무허가 의약품인지라,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중국산 무허가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신약’ 유통되는 이유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FIP, feline infectious peritonitis)은 습식형과 건식형으로 나뉜다. 습식형 FIP에 걸린 고양이는 복강과 흉강에 물이 차서 배 주위가 부풀어 오르고, 발열 반응과 호흡곤란을 보일 수 있다. 건식형은 전신적인 육아종성 염증으로 나타나고 다발성 신경증상이나 안구증상을 나타낸다. 병이 진행되면서 건식형이 습식형으로 발전할 수 있다. 뚜렷한 진단법은 없지만 주로 알부민 감소와 글로불린 증가, 림프구 감소 등으로 판단한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FIP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대부분 고양이는 장염을 앓는데 감염 후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복막염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백신도 있었는데, 항체가 형성된 고양이가 아프거나 죽는 사례가 나오면서 ‘이 질병은 항체가 있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그렇게 백신이 전면 중단됐다.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치료제도 개발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질병인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은 증상을 늦춰주는 대증요법 외에는 방법이 없어 ‘사형선고’라고도 불렸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고양이 집사들에게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7년 3C 유사 프로테아제인 ‘GC376’ 약물이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와 캔자스주립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것이다. 해당 논문에서 연구진은 20마리 고양이 중 7마리가 GC376으로 치료됐다고 밝혔다.
2019년에는 뉴 클레오 시드 유사체(항바이러스제)인 ‘GS441524’의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치료 효과에 대한 논문도 발표됐다. 논문에 따르면 31마리 중 26마리가 12주간의 치료를 완료했다. 26마리 중 18마리는 1차 치료 후에도 건강을 유지했고, 나머지 8마리는 3~84일 이내에 질병이 재발했다. 8마리 중 5마리는 2차 치료에서, 2마리는 3차 치료에서 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 최종적으로 25마리의 고양이가 GS441524로 장기 생존했다.
국내외 보호자들의 수요가 높아지자 중국에서 해당 화학물질을 이용해 ‘고양이 복막염 신약’이라고 불리는 주사액을 제조하는 업체가 나타났다. 물론 정식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제품은 아니다. 그러자 국내에서도 해당 제품을 대리 구매해 파는 사람들이 생겼고, 보호자들은 알리바바 등 사이트에서 직구하거나 국내 판매자를 통해 주사액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중고거래 앱에서는 한 병에 20만 원 정도에 거래되기도 한다. 국내 보호자들은 집에서 자가 주사하거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히는 식으로 치료를 해왔다. 한 보호자는 “국내 유통업자가 주사를 놔주는 사람을 연결해줘서 그분이 처음에 주사 놓는 법을 알려줬다”고 말했다.
비용은 만만치 않다. GS441524의 경우 기본적으로 12주간 매일 접종이 필요하고 체중이 증가하면 투여량도 함께 늘려야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 요구 함량은 1kg당 5mL다. 고양이 보호자 A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치료를 해 올해 1월부터는 관찰기에 들어갔다. 국내 판매업자를 통해 약을 구했는데, 당시 한 병에 9만 원 정도를 줬다. 이 약은 감량을 하면 안 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처음부터 고용량을 주입한 나머지 약이 더 많이 필요했다. 총 60병 정도를 써서 500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나마 저렴하게 한 편”이라고 밝혔다.
#약 직구해 불법 자가 진료 택하는 사연
반려동물을 살리겠다는 마음에서 보호자들은 비용 부담을 감수해왔지만 보호자들에게는 최근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중국산 제품을 대리 구매해 판매하던 국내 유통업자들이 자취를 감춘 것. 다른 보호자 B 씨는 “국내 판매자 중 한 명이 약사법 위반 등으로 신고를 당해서 다른 판매업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고 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구매대행판매자가 동물용 의약품을 유통하면 약사법 위반이지만, 자가소비 목적으로 무허가 혹은 허가 동물용 의약품을 직구했다면 약사법 위반사항이 없다. 그러나 B 씨는 “보호자들이 직접 직구를 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엔 중국산 제품이 많아져서 주사액 한 병당 10만 원도 안 한다. 그러나 직구를 하는 방법을 모르는 보호자들도 많고 직구를 한다고 해도 제품이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당장 1분 1초가 급한 질병”이라고 토로했다.
병원에서 중국산 약을 구해주는 경우도 있다. 검역본부에 따르면 의약품 허가 이전이더라도 긴급히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 등은 검역본부에 신고하면 수입업 신고 및 품목허가 없이 수입할 수 있다. 다만 신고 없이 수의사가 직구 등의 방법을 활용하면 동물용 의약품 등 취급규칙 위반에 해당한다. 비즈한국이 무작위로 연락한 동물병원 11곳 중 4곳은 보호자가 약을 구해오거나 병원이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고양이 복막염 치료를 진행하고 5곳은 치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머지 2곳은 코로나19로 약을 구하기 어려운 등의 이유로 치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보호자들 사이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A 씨는 “병원에서는 ‘몰래 만든 약’이라고 하면서 한 병에 40~50만 원을 요구했다. 어떤 사람은 병원 치료비만 300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B 씨는 “어차피 병원도 똑같은 중국산 약물을 구해 치료하는 거다. 접종을 위해 매일 병원을 데려가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정식 신약이 개발된 상황이면 비싸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했겠지만, 직구 등 방법을 택해 자가치료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보호자가 직접 반려동물에 자가진료하면 수의사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대안이 없으니 중국산 무허가 약을 쓰고 있지만, 보호자들 입장에선 찝찝함도 남는다.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약품관리과에 따르면 GC376과 GS441524 물질로 허가받은 의약품은 없다. 동물약품관리과 관계자는 “정상적인 제조 및 수입 절차 등을 거치지 않은 약으로 추후 문제가 발생해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보호자들은 저렴하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을 하루빨리 사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국내 한 동물용 의약품 벤처기업은 펠리콥(GS441524)을 이용한 동물용 의약품 임상시험 신청서를 검역본부에 제출한 상태다. 오홍근 휴벳 대표(수의사)는 “임상시험 대상 동물(고양이)에 3주 이상의 주사처치에 대한 완치율 등을 평가하고 독성 시험도 진행해야 한다. 21년 상반기 안에 임상시험 승인이 나고 내년 상반기 중 시판 허가를 받는 게 목표”라며 “임상시험용 시약은 소량 생산이고 모든 과정 국내 합성이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 순도 98% 이상을 유지하며 대량 공정 시스템 확립으로 가격도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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