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Y 캐슬’이 방영되며 모두가 ‘쓰앵님!’을 부르짖을 때, 열광하면서도 못내 불편했다. 심지어 자식의 명문대 입성을 위해 엄청난 탐욕을 부리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묵인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개과천선을 거쳐 평안하게 사는 모습으로 끝나는 마지막 회에서는 더더욱. 드라마 작중 인물들이 드라마틱한 개과천선을 하는 것과 달리 현실은 변하지 않아서 더욱 씁쓸했을 수 있다. 우리는 드라마 전에도 정유라 사건을 겪었고, 이후에도 조민, 숙명여고 쌍둥이 등의 초대형 스캔들을 보아왔으니까. ‘미국판 SKY 캐슬’이라 불리며 화제가 됐던 입시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 부정 입학 스캔들’(이하 ‘부정 입학 스캔들’)도 이런 불편한 현실을 다룬다.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Operation Vasity Blues)’라는 타이틀은 대학 운동선수들을 지칭하는 ‘바시티’를 지칭해 연방 검찰이 붙인 작전명. 뇌물을 주고 자녀를 부정 입학시킨 학부모 33명을 포함한 50여 명을 기소한 2019년의 대규모 입시 비리 사건으로, 부유한 CEO와 부동산 개발자, 변호사, TV스타 등이 대거 포함되어 미국은 물론 한국 언론까지 떠들썩했다. 입시 비리를 주도한 윌리엄 릭 싱어(이하 릭 싱어)는 일정 금액을 학부모로부터 받고 그 자녀들을 주요 명문대 체육 특기생으로 둔갑시킨다. 요트는커녕 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아이가 요트 선수가 되고, 화장이 특기인 유명 인플루언서를 조정 선수로 만드는 식이다.
미국 대학은 여러 형태의 입학이 있는데, 그중 비인기 종목의 체육 특기생 입학 관련해서는 입학사정관 또한 전적으로 대학 코치에 일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 물론 대학에 돈을 내는 ‘뒷문(back door)’ 입학인 기여입학제는 합법이지만 금액 단위가 훨씬 큰 데다 100% 입학 보장이 아니란다. 릭 싱어가 만든 이른바 ‘옆문(side door)’은 고작(!) 수십만 달러 정도로 원하는 대학의 입학을 보장하니 양심을 접은 부유한 부모에겐 엄청나게 매혹적인 거래일 수밖에.
‘부정 입학 스캔들’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대학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얼굴을 지나 초대형 입시 비리의 전면에 서 있는 농구 코치 출신 컨설턴트 릭 싱어가 학부모들과 전화로 명문대 입학을 거래하는 모습을 비춘다(물론 재연 배우의 연기다). 연방 검찰의 도청에 의해 구성된 실제 대화들은 자못 충격적. 3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약 3억 3800만 원~5억 6400만 원가량)의 돈을 내면 조지타운대, 보스턴 칼리지, 조지아 공대, 남가주대, UCLA, 버클리 등에 들어갈 수 있다. 모두 미국에서 톱20에서 톱50로 쳐주는 명문이다. 하버드에 뒷문 입학하려면 4500만 달러를 내야 하지만 릭 싱어를 통하면 120만 달러로 옆문 입학할 수 있다니 솔깃하지 아니한가. 아마 ‘SKY 캐슬’의 곽미향(염정아)이었으면 당장 1번으로 예약했을 것이다.
릭 싱어의 기상천외한 방법은 대학 비인기 종목 코치들을 매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녀가 학습 장애를 가진 것처럼 위장하여 시험 시간을 더 부여받고, 시험 감독관을 매수해 원하는 장소에서 대리 시험을 치르게 하여 ACT나 SAT 등의 점수를 높인다. 그나마 정답을 달달 외우는 노력이라도 한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은 이에 비하면 애교처럼 보일 정도(하하하). 재미난 건 이런 거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부모들이 심지어 자녀들에게 죄책감마저 제거시키려 든다는 것. 아들이나 딸은 단순히 컨설턴트의 지혜와 인맥을 활용했다고 알아야 할 뿐, 대리 시험 같은 비리가 끼어 있음을 철저히 모르게 진행해야 한다고 부모들은 신신당부한다. 명문대를 가는 꽃길에 그 어떤 어두움을 드리우지 않겠다는 철저히 비뚤어진 부성과 모성이다.
무서운 건 이 뻔뻔스럽고도 대담한 범죄 행각이 드러난 경로다. 릭 싱어는 물론 릭 싱어에게 의뢰한 학부모들, 그들의 자녀들, 릭 싱어에게 매수된 코치들에게서 이 행각이 발각된 게 아니다.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증권 관련 범죄로 체포된 사람이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이 입시 비리의 꼬투리를 제보했고, 그것이 몸통인 릭 싱어로 향하게 된 것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이 거대한 카르텔은 제법 견고했지만, 꼬투리를 잡힌 릭 싱어의 태세 전환도 그만큼 재빠르다.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뢰인들을 기소하는 데 협조하기 시작한다.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새삼, 세상에 완전한 범죄는 없고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간단한 사실을 정작, 자식을 꽃길만 걷게 하고픈 비뚤어진 욕심으로 가득한 부자들이 애써 외면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이런 부정 입학 스캔들이 일어난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릭 싱어는 그 수요를 파고든 범죄자이고, 궁극적인 문제는 아이비리그, 톱10, 톱50 등 대학들의 줄을 세우고 그 줄에 어떻게든 올라타라고 손짓하는 대학 산업의 병폐에 있다. 그 손짓에 부단히 흔들리는 사람들의 탐욕에도 문제가 있고. 다큐 속 비리 인물 중 하나였던 인기 인플루언서 올리비아 제이드 같은 인물이 꼭 명문대에 가야 했을까? 대학의 명성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21세기식 성공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건 그들에게 대학이 학문과 지식의 장이 아니라 에르메스 백 같이 자신을 빛낼 명품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씁쓸한 일이다.
더 씁쓸한 일은 이 거대한 범죄에서 정작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은 이는 적다는 거다. 부유한 의뢰인들은 화려한 변호인들을 써서 몇 개월의 징역이나 적은 벌금형에 그쳤다. 망신은 당했을지언정 그들은 여전히 예전과 같이 살아간다. 릭 싱어는 연루된 이들의 기소를 돕는 조건으로 아직 형량을 받지 않고 자유의 몸인 상태다. 대학들 또한 매수된 코치 등에서 꼬리를 자르고 해당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선에서 선을 그었다. 과연 몇 년 뒤 또 다른 형태의 릭 싱어가 나타나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
‘부정 입학 스캔들’은 실존 사건을 재연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상세히 들여다보며 흥미를 돋운다. 깊이 있는 해석이나 대안을 제시하진 않지만 적어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는 충분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세상 어디나 썩긴 마찬가지구만’ 하는 체념지수가 높아지는 건 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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