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출근을 코앞에 둔 주말 끝, 일요일 밤. 나 혼자 키득거리며 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유독 개그맨 커플 중 ‘이혼 1호’는 결코 탄생하지 않는 이유를 탐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의도로 기획됐다는 프로그램, JTBC ‘1호가 될순없어’다.
개그맨 커플들의 현실감 넘치는 결혼 생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이 프로그램에는 ‘이혼 1호’만 나오지 않았을 뿐, 여타 평범한 부부들과 다를 바 없는 티격태격 리얼 부부스토리가 꿀잼이다. 다양한 커플들의 스토리가 각기 흥미진진하지만, 최근 필자의 눈에 가장 흥미롭게 들어왔던 부부는 개그맨 부부 4호 박준형·김지혜&7호 김원효·심진화 커플이었다. 박준형·김지혜 부부는 진짜 마음과는 다른 말로 서로를 상처 주는 것으로 현실 커플을 대표하고, 김원효·심진화 부부는 저게 현실 커플에게서 가능한 대화인가 싶은 말을 하는 비현실적인 ‘달콩커플’을 대표해서다.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두 부부의 에피소드는 수제 맥주 기계의 맥주맛을 보러오라고 김지혜가 심진화를 집으로 초대한 날 벌어진다. 김지혜는 이날 남편 박준형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분노한다. 이유는 본인의 인스타 감성 피드에 피드와 상관없는 내용으로 “남편 박준형에게 식기세척기를 왜 안 사주냐”는 내용의 댓글만 200개가 넘게 달려서다. 댓글의 원인을 살펴보니 남편 박준형의 인스타그램 ‘갈툰’ 때문. 주변인들과 주고받은 톡 메시지 중 개그감 넘치는 내용들로만 편집된 내용을 공개하는 ‘갈툰’에는 마침 박준형이 절친 옥동자와 함께 ‘식기세척기가 있고, 없는 리얼 주부생활’에 대해 논하는데, 그 내용의 흐름 안에서 김지혜가 마치 식기세척기를 일부러 사주지 않는 사람처럼 묘사되어서다.
분노한 김지혜는 박준형을 불러 "나를 왜 나쁜 악처로 만들어? 주작을 하고 말이야"라며 원망을 쏟아낸다. 한참 앞선 에피소드에서 설거지가 힘들면 식기세척기를 사주겠다는 김지혜에게 박준형은 식기세척기가 필요 없다고 말했던 상황이기에, 김지혜의 말투는 더욱 격하게 독을 품는다. 그런데 여기에 이어지는 박준형의 대답이 가관이다. "내 팬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야" 라며 분위기에 맞지 않는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개그는 개그일 뿐. 그게 화낼 일이야?"라며 김지혜의 원망에 공감지수 제로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한참 극한으로 이어질 때, 이들 부부의 집에 김원효·심진화 부부가 도착한다. 불편한 분위기를 바로 감지한 김원효와 심진화는 부부를 따로 떼어놓는다. 자, 여기서부터 집중하시라. 이제부터 부부관계 알콩달콩 꿀부부의 평화로운 관계 비법이 펼쳐진다.
오고가는 대화가 격해진 박준형을 따로 방으로 불러내 김원효는 “형님이 설거지를 다하고도 괜히 욕을 먹는 건 투덜거리는 말투 때문 같다”며 늘 투닥거리며 싸우는 커플의 다툼 발화점을 분석한다. 여기에 더해 본인은 설거지 거리를 아내가 늦게 가져오면, 짜증나지만 투덜거리며 말하는 대신, 개그맨들이 프로그램 내에서 웃기기 위해 하는 개그화법으로 반전식 꺾기를 한다고 첨언한다.
개그맨들의 반전꺾기식 화법이라니 대체 뭐냐고? 매우 화가 난 듯한 큰 목소리로 김원효는 다음과 같이 그만의 응대식 화법을 구사한다. “이 여자가 진짜 미쳤어? 지금 뭐하는 짓이야! 요조숙녀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결혼할 때 이야기 했잖아 내가 너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한다고!” 첨에는 굉장히 화난 것 같은 말투에 상대는 화들짝 놀라지만, 알고 보면 내용은 나를 챙겨주는 말에 마음이 녹는 게 포인트다. 여기에 하나 더. 이 반전식 꺾기 대화법이 참으로 유익한 지점은 화가 나거나 짜증 난 사람도 얻어갈 수 있는 이득이 있다는 것. ‘욱’하게 짜증 나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큰 소리를 확 내지르는 순간, 내 스트레스 또한 순간적으로 확실하게 해소된다는 점이다. 이미 짜증 나는 일은 벌어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싸움보다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풀고 상대방에게도 감정적인 데미지가 없는, 이런 대화법이 일타쌍피 아닌가.
그러니 개그맨 4호 부부같은 남편, 혹은 아내들이여~! 개그맨 7호 부부의 대화법을 배워볼 지여다. 성질나고 더러워도 어쩌겠는가. 속에서 천불처럼 뿜어져 나오는 말을 내뱉으면 그 찰나의 순간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그 뒤에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지옥을 맛볼지니. 그럴 바에야 개그맨들의 반전식 꺾기 화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라. 사자후처럼 큰 소리로 내지르는 기운 발산에 순간 스트레스 풀이는 기본, 말의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의 기운에 당신도, 상대도 평안할 지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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