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민사소송 대부분은 돈을 청구하는 소송이다(청구의 소). 민사소송에는 확인의 소와 형성의 소 등이 있으나, 이러한 소송 역시 돈을 받아내기 위한 수단이다. 위자료란 정신적 고통을 금전적으로 위자(위로)하기 위해 지급되는 돈이다. 즉 정신적 고통조차도 상당한 돈이면 위로가 되는 것이니 돈으로 해결 못 할 분쟁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이처럼 돈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쟁 해결 시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돈의 액수이기 때문이다. 만약 손해액이 100만 원 이하라면 설령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법률적인 구제수단을 선택하지 않는다. 법률비용이 손해배상액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청구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 사건은 소액사건으로서 △판결서에 이유 기재 없이 판결을 선고할 수 있고 △당사자의 가족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으며 △대법원 상고가 제한되는 등 소송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여러 특칙이 적용된다.
3000만 원이 큰돈인지 아닌지는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다만 적어도 법은 3000만 원 이하는 소액에 불과하므로 엄밀한 심리보다는 간이한 처리가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실무상 법원은 지식재산권 침해, 불공정거래행위 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손해액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물론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민법상 손해액은 ‘차액설’에 따른다. ‘차액’이란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재산 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 상태의 차이를 말한다. 이러한 법리는 신유형의 손해배상 청구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저작권 침해가 없었더라면 존재했을 저작물의 가치와 그 침해가 행해졌을 경우의 가치를 비교하는 것은 난해한 작업이기 때문이다(이에 관한 특칙은 후술).
더구나 우리나라 민법상 실제 손해액 그 이상을 배상받을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돼 수십, 수백 배의 배상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수십만 달러를 배상받기도 한다. 논리적으로 실제로 입은 손해만을 배상하는 우리나라 법제가 우월한 듯하다. 어쩐지 징벌적 손해배상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소송을 양산하는 비합리적인 제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차액설 또는 실손해 배상의 원칙에 따르면, 피해자가 아무리 입증을 잘해도 본전치기에 불과해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요구하는 보상 수준을 절대 충족시킬 수 없다. 더구나 실무상 10~20% 정도의 과실상계는 쉽게 인정되므로 손해액이 대폭 감액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과실상계란 손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에게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에 기여한 과실이 있으면 이를 고려해 손해액을 감액하는 제도를 말한다.
대체로 불법행위의 피해자는 어느 정도 부주의와 과실이 있다. 만약 저작물(예를 들어 영화)의 저작권자가 24시간, 365일 인터넷 게시판 등을 모니터링해 불법 업로드를 단속했다면 저작권 침해사례는 분명 감소했을 것이다. 그러한 저작권자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과실상계를 이유로 손해액의 10~20% 감액은 감수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에 기초하여 저작권 침해 사례에서 침해자가 대응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침해자는 저작권 침해의 성립요건, 즉 저작물 해당성·저작권의 존재 여부·저작물과 침해행위 간 유사성 및 의거성 등을 일일이 다툰다.
실무상 법원은 저작권 침해의 요건 충족을 매우 엄격한 기준에서 심사한다. 예를 들어 저작권 침해의 요건으로 침해됐다고 주장되는 저작물과 침해물이 서로 비슷해야 한다는 ‘실질적 유사성’이 있는데 입증이 만만치 않다.
‘외톨이야’, ‘파랑새’는 무심코 들어보면 비슷한 노래인 것 같다. 그러나 법원은 △파랑새는 한 마디에 두 개의 화성이 진행되나 외톨이야는 대부분 한 마디가 하나의 화성으로 이뤄져 화음의 구성이 다른 사실 △파랑새는 16비트의 기본리듬이지만 외톨이야는 24비트를 기본리듬으로 삼고 있는 사실 등을 이유로 실질적 유사성을 부정하고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렇든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해 같은 것을 같다고 입증하는 작업은 매우 난해하다.
2. 피해자의 권리 주장이 다소 지나치다고 보일 여지가 있는 경우, 반소를 제기하거나 형사고소를 통해 피해자를 공격한다. 예를 들어 제3자가 볼 수 있는 인터넷상에서 피해자가 저작권 침해를 언급하는 경우 피해자를 명예훼손죄와 업무방해죄 등으로 고소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강한 어조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피해자를 협박죄와 강요죄 등으로 고소할 수 있다.
3. 손해의 발생·범위·인과관계 등도 모두 다툰다. 예를 들어 “백번 양보해 저작물이 침해됐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자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저작물의 유통으로 인해 저작물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저작권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듣고 있어 보면 어쩐지 그럴 듯해 보인다.
4. 과실상계도 주장한다. 때에 따라 가까스로 계산된 손해액의 절반이 감액되기도 한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면 저작물 침해를 입증하는 데 기진맥진하여 손해액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거나, 2~3년간 1심 재판이 진행됐는데 손해배상액은 수천만 원에 불과한 사태가 발생한다. 그나마 승소한 경우는 다행이다. 만에 하나 저작권자가 단 1건이라도 패소하는 경우, 그 패소는 부정적인 선례가 돼 해당 저작물을 통한 권리행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패소는 업계에 금방 소문이 난다).
인터넷에서 변호사들의 광고를 보면 아파트 하자 사건·자동차 격락손해 사건·이혼사건·성범죄 사건 등은 많다. 그러나 저작권·상표권·영업비밀 침해사건 등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이유로는 변리사의 사건 수행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지식재산권 사건은 들이는 품에 비해 인정되는 손해액이 적고 이 때문에 변호사 보수로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수십 년 전부터 제기됐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작권법 등은 손해액 산정에 관한 특례를 규정하고 있는데 분량 관계상 그 내용은 다음 칼럼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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