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평소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SF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 있다. 특히 외계인들이 인간 앞에 처음 등장할 때 “오리온자리 종족이다” “전갈자리 별에서 왔다”라는 식으로 지구인이 이름 붙인 별자리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사실 이건 굉장히 어색하다. 오리온자리가 오리온 모양으로 보이고, 전갈자리가 전갈 모양으로 보이는 건 지구의 하늘뿐이기 때문이다. 정작 그 별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들은 지구의 하늘에서 자신들의 고향이 무슨 모양으로 보이는지 알 길이 없다.
흔히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실제로도 다 비슷한 거리에 떨어져 물리적으로도 서로 가까이 모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은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지구의 하늘에서 봤을 때만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각각 멀리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 밤하늘에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오리온자리로 예를 들어보자. 지구의 밤하늘에서는 오리온의 모든 별들이 비슷한 거리에서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거리를 보면, 오른쪽 겨드랑이의 주황빛 별 베텔게우스는 지구에서 약 640광년, 반대쪽 왼쪽 겨드랑이 별 벨라트릭스는 훨씬 가까운 250광년 떨어져 있다. 오리온의 허리띠 아래 아름다운 오리온 대성운은 그보다 훨씬 먼 1300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처럼 오리온자리의 별들은 서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만약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 오리온자리를 이루는 별들을 빙 돌아서 옆에서 바라본다면, 지구의 밤하늘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지구인들을 만날 때 자신의 고향을 지구의 별자리 방식으로 소개하는 외계인은 정말 배려심이 깊은 친절한 외계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런 방향에서 오리온자리 별들을 옆 방향에서 바라봤다면 오리온자리가 아니라 ‘유모차 자리’ ‘쇼핑 카트 자리’ 뭐 이런 다른 모양의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가까이 모여 있는 것처럼 안 보이는 이 별들을 이어서 별자리를 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구 바깥 외계인들은 지구인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별을 이어서 전혀 다른 별자리 지도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SF 영화 속 우주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이 지구에서 그린 별자리 지도를 가지고 길을 찾는 것도 굉장히 어색한 옥에 티라고 볼 수 있다. 지구에서 그린 별자리 지도는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쓸모가 없다. 지구 밤하늘의 별자리 지도는 중세 시대 항해사들에게나 유용할 뿐, 은하수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에겐 전혀 쓸모 없다. 별들은 우주 공간에 입체적으로 놓여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느 방향에서 보는지에 따라 밤하늘의 모습이 전혀 달라진다.
밤하늘의 모습은 보는 위치뿐 아니라, 언제 바라보는지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없던 별이 새롭게 탄생하거나 수명이 다한 별들이 우주에서 사라지면서 밤하늘의 지도는 계속 변화한다. 또 우주의 모든 별들은 각자 고유한 속도로 움직이면서 긴 세월에 거쳐 조금씩 위치가 바뀌고 있다. 원래 있던 건물이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생기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주어야 하듯, 밤하늘의 지도 역시 그 세월의 변화를 반영해주어야 한다.
2018년 천문학자들은 기존의 88개 별자리에 새로운 별자리 21개를 추가했다. 어떤 별자리들이 새롭게 만들어졌을까?
이처럼 우리는 우주 어느 곳에서 우주를 보는지, 또 어느 시점에 우주를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떤 문화적 바탕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별들을 연결하고 나름의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우리도 직접 남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은 빈 구석에 나만의 별자리를 직접 만들어 추가할 수는 없을까? 저 넓은 밤하늘 어딘가 한구석에 내가 만든 별자리 하나쯤 올려봐도 괜찮지 않을까?
현재 천문학자들은 여러 문화권에서 중구난방으로 만들어놓은 별자리들을 통합해서 88개로 이루어진 단 하나의 별자리 지도를 정해놓았다. 혼란을 막기 위해서 또 다른 별자리를 추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별자리를 추가하려는 시도들이 없지는 않았다. 2016년 세상을 떠난 영국 가수 데이비드 보위를 추모하면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 그의 별자리를 추가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보위는 ‘스타맨’, ‘스페이스 오디티’, ‘지기 스타더스트’ 등 우주를 노래한 작품으로도 사랑받았다. 팬들은 1973년 발매된 보위의 앨범 ‘알라딘 새인’의 앨범 커버를 참고해서 번개 모양의 데이비드 보위 별자리를 만들었다. 봄철 처녀자리의 밝은 별 스피카(Spica)를 포함해서 기존의 다른 별자리에 있는 별들을 새롭게 연결해서 거대한 번개 모양이 그려진다. 물론 국제천문연맹은 다른 별자리를 더 추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나만의 새로운 별자리를 만들어서 하늘에 새겨놓을 수 있는 묘수가 하나 있다. 이미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으로 본 밤하늘에는 천문학자들이 딱 박아놓은 88개의 별자리로 다 채워져 있으니, 가시광이 아닌 다른 파장으로 본 밤하늘을 노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2018년 천문학자들은 NASA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 망원경의 10주년을 기념해 재밌는 작업을 진행했다. 페르미 우주 망원경을 통해서 감마선으로 바라본 우주는 눈으로 바라본 우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페르미 망원경은 2015년 하늘 전역에서 포착한 밝은 감마선 광원 3000개의 지도를 완성했다. 천문학자들은 이 밝은 감마선 광원들을 이어서 완전히 새로운 감마선 버전의 별자리 21개를 만들었다.
21세기 천문학자들이 감마선으로 본 밤하늘 별자리에는 재밌는 것들이 많다. 어린왕자자리, 새턴V로켓자리, 스타십 엔터프라이즈자리, 아인슈타인자리, 묠니르자리, 에펠탑자리, 고질라자리, 슈뢰딩거의 고양이자리…. 현대에 걸맞은, 그리고 천문학자 특유의 덕후 감성이 물씬 묻어나오는 재치있는 별자리들이 많다. 어거지로 별들을 이어 희한한 그림을 상상한다는 점은 옛날 목동들이나 21세기 천문학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별자리 지도가 정해지지 않은, 다른 다양한 파장으로 바라본 밤하늘을 노려보는 건 어떨까? 만약 사람과 달리 적외선, 엑스선, 중력파 등 전혀 다른 파장 대역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외계 생명체들이 있다면 아마 그들은 이처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별자리 지도를 그리며 그들만의 이야기, 신화를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이처럼 하늘 위에 어떤 별자리를 그리게 될지는, 우주 어디에서 주변을 바라보는지, 또 어느 시점에 하늘을 바라보는지, 그리고 심지어 어떤 파장의 빛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존재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중세 시대 점성술사들은 별자리를 하늘에 벽화처럼 새겨진 고정된 그림으로 생각했지만, 우주의 별들은 보는 위치와 시점, 어떤 파장의 빛으로 보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별자리 지도는 그 지도를 그린 존재가 우주의 언제 어디에 사는 존재인지 특정하는 인식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별자리는 우주 전체에서 지구라는 행성 단 한 곳에서만, 우주의 나이가 138억 살인 지금 시점에만, 그리고 가시광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존재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언젠가 지구가 모두 사라진 먼 미래가 되었을 때 외계인 고고학자들이 지구의 별자리 지도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외계인 고고학자들은 먼 옛날 지구란 행성은 우주 어디에 놓여있었고, 지구인들은 어느 시점에 우주에 나타나, 어떤 파장의 빛으로 우주를 바라보며 그 찬란한 세월을 보냈을지를 추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Pleiades_in_folklore_and_literature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1arXiv210109170N/abstract
https://fermi.gsfc.nasa.gov/science/constellation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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