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국에서 김치를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르며, 기원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온라인에서는 김치공정 논란이 시끄럽다. 이런 논란이 가장 불편한 곳은 단연 유통업계다. 중국에서 생산해 현지 판매 중인 제품들로 불똥이 튀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단 중국 정부가 김치라는 표기 자체를 불허해 어쩔 수 없이 ‘한국식 파오차이’라고 표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나라의 절임류 채소 식품에 대해 ‘파오차이’로 표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뒤늦게 공청회를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것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기업 한 곳이 얘기해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목소리와 함께 “김치 논쟁이 커질수록 기업들만 여론과 매출 가운데 끼어 아무것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는 호소가 나온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김치공정
중국의 김치공정 논란이 시작된 것은 지난 3일.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자신의 SNS에 위생장갑을 낀 채 담금 김치 한 포기를 들고 있는 사진이 논란이 됐다. 그는 김치의 기원 등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는 직접 만든 김치를 먹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게재하며 김치와 김치찌개를 ‘중국 음식’이라고 소개한 것과 맞물려, 중국이 김치를 자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김치공정’을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중국의 김치공정 의혹에 비판 어린 목소리가 거센 가운데, 유통업계로 불똥이 튀었다. 중국에서 김치를 ‘한국식 파오차이’라고 표기해 판매한다는 사실들이 드러난 것. CJ는 실제 중국에서 생산해 현지 판매 중인 비비고 만두 포장지에 한국식 파오차이라고 적은 사실이 알려지며 ‘중국 김치공정에 동참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각종 블로그 등에서 쉽게 ‘친중기업’이라는 비판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한국 음식인 김치 표기를 포기했다”는 것.
그러나 다른 기업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상그룹이 운영하는 브랜드 청정원, 종가집은 모두 중국에서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표기해 판매 중이고, 풀무원 역시 중국 현지 법인을 통해 판매 중인 김치 제품명에 ‘자른 파오차이(切件泡菜)’라고 표기했다.
기업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하소연이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중국이 아예 김치라는 상표등록과 표기를 허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파오차이라고 표기하고 판매하던 것인데 논란이 커지면서 ‘판매를 하지 않을 수도,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돼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중국은 자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제도를 기준으로 해외 제품의 판매명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국 김치뿐 아니라, 독일 등 해외 여러 국가들의 절임류 채소 관련 식품에 대해서는 ‘파오차이’로 표기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논란에 정부는 “병행 표기 가능” 대응 아쉬움
업계가 아쉬운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중국의 김치공정과 함께 파오차이 표기 논란이 커지자 이달 중 김치 표기 관련 기업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대응일 뿐, 궁극적인 해결까지는 요원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공청회 등을 통해 기업들 목소리는 듣겠지만, 중국 정부와 대응할 문제여서 농식품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리에게만 예외로 ‘김치’ 표기를 허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일괄적으로 적용되던 중국의 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파오차이와 함께 ‘KIMCHI(김치)’라는 병행표기가 가능한 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안을 권하는 상황이다.
‘울며 겨자 먹기’ 차원에서 중국 정부의 강제 규정을 따르던 업계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어떻게든 수익을 내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국 기준대로 판매했는데, 정부의 태도가 너무 미온적이라서 아쉽다”며 “한류의 한 축인 음식 관련 해외 유통 지원 방안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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