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경기도 부천시의 한 한의원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30회 이상 꾸며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는 해당 진료기록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비보험 계약을 해지당했다고 주장한다. 한동안 보험 재가입이 어려워진 피해 환자는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한다. 이처럼 병원에서 요양급여를 부당·거짓 청구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환자가 요양급여내역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불법행위를 알 수 없다는 허점을 노리는 것. 그러나 적발이 어려운 현행 시스템 탓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다.
#“왕뜸 받았는데 한의원이 ‘허리 치료’ 40회로 급여 청구” 주장
2020년 8월 부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허리 등 입원 검진과 치료를 받은 A 씨는 2017년부터 가입돼 있던 실비보험을 9월 청구했다. 이것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보험사에서 위촉한 손해사정인의 조사 후 A 씨는 중대고지의무 위반으로 같은 해 12월 실비보험 계약이 강제 해지됐다. 보험 가입 시 부천시 소재 한의원에서 40회 이상 허리 치료를 받은 내역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A 씨는 건강보험공단 요양급여 내역과 보험사를 통해 받은 진료기록부를 살펴봤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B 한의원에서 ‘좌골신경통을 동반한 요통, 요천부’ 진단명으로 40회 치료받았다고 기재돼 있었던 것. A 씨는 2016년 1월 왕뜸과 아로마 패키지를 20회가량에 10만 원, 4월에 지방세포를 분해하는 카복시 시술 패키지를 15회 15만 원에 결제한 적은 있지만 허리 치료는 받지 않았으며, 왕뜸을 받은 횟수도 많아 봐야 7회 미만이라고 했다.
건보공단 요양급여내역상 병원이 청구한 날짜에 해당하는 카드 기록도 1월과 4월 두 번뿐이었다. 또 3월 4일 오후 3시 50분경에는 다른 C 의원에서 결제한 내역이 있는데 한의원 진료기록부에는 오후 4시 15분에 허리 치료를 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A 씨는 “당시 C 의원에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결제 후 목뼈 통증 주사를 맞았다”고 말했다.
A 씨는 “당시 B 한의원이 쑥 냄새로 자욱할 정도로 인기 있어서 패키지를 끊었는데 바빠서 5번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적어도 30회 이상은 병원에 가지 않았다. 패키지 치료를 받은 거라 쳐도 병명과 전혀 상관없는 치료 기록이 있던 셈”이라고 말했다. 또 “상식적으로 허리가 아픈데 누가 뜸과 아로마 치료를 40번씩 받겠냐. 왕뜸은 배에 올려 치료한다. 질병코드도 안 나오는 원기회복 목적으로 패키지를 끊은 거라 따로 보험사에는 알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B 한의원 원장은 보험사 조사가 있던 지난해 11월 A 씨에게 “고관절이 아파서 한의원을 찾았는데 (내가) 허리로 병명을 실수했다고 하면 어떠냐. 말을 맞췄으면 좋았을 듯싶다. 악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비급여 부분이라 싸게 해드리려다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린다”며 보험금으로 돌려받지 못한 비용은 대신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A 씨가 “손과 발이 차서 뜸 치료를 받았다. 허리 치료를 40회 받았다고 기재된 진료기록을 원상태로 바꿔 실비보험을 원상복구 해달라”고 요청하자 “허리가 아파서 내원한 것 맞지 않냐. 7일 이상 한의원 내원 시 고지를 해야 하는데 안 했기 때문에 위반이 된 것”이라며 진료 기록은 수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A 씨는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A 씨는 “조사를 했던 손해사정사가 오히려 억울하겠다며 한의원 치료기록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카드내역과 진료기록을 개인적으로 대조해보면서 우울증과 불면증까지 생겼다. 왜 일반인이 모두 입증해야 하냐”며 “병원에 가면 실비보험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찢어진다. 추후 몇 년간 다른 실비보험 가입도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다. 막막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기조차 힘들다는 점이다. A 씨는 건강보험공단 부천북부지사에 이런 내용을 포함한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17일 건보공단은 ‘2016년 1월부터 3월까지 B 한의원에서 3개월간 진료기록을 받아 확인해보니 별문제 없다. 한의원에서는 그 기간 환자가 모두 현금 결제를 했다고 한다’는 답을 내놨다고 한다. A 씨가 “진료 기록 자체가 잘못됐는데 이것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 특히 1월엔 카드로 결제한 내역도 있다”고 말하니, 공단 관계자가 뒤늦게 카드 결제 내역을 요구했다고 한다.
B 한의원 원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16일 짧게 답했다. 16일과 17일 “어떤 사실이 다른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번 문자와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17일 방문한 한의원에서 직원은 “원장님을 만날 수는 없다. 자신 있으면 기사를 쓰라. 기사를 쓰면 기자를 상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나중의 일이니 마음대로 하라”고만 말했다. 한편 B 한의원 원장은 다른 요양급여 청구 관련 건으로 이번 주 초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를 담당한 관할 경찰서 경찰은 “건강보험료 청구 액수를 약간 달리 기재한 것 때문에 고발됐다. 경찰 수사 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거짓 청구일 경우 1년 업무정지 및 요양급여 환수처분
A 씨와 한의원 간 진상 규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진료행위가 없었는데 관련 서류를 위·변조해 진료행위가 있었던 것처럼 가장해 요양급여를 청구하면 ‘거짓청구’에 해당한다.
이동찬 더프렌즈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전형적인 요양급여 허위청구 건이다. 패키지로 치료를 받았다 치더라도 패키지는 ‘진료 예약’에 불과하다. 실제 진료행위에 대해서만 해당 병명으로 청구해야 한다”며 “의료법 제66조 1항 7조, 국민건강보험법 제98조 1항 1호 등에 따라 1년 업무정지, 그리고 요양급여 환수처분과 3~5배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형법상 사기죄로도 다퉈볼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방문했다는 건 병원이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험 계약해지가 해당 한의원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보험업감독규정 표준사업방법서상 ‘최근 5년 이내 입원, 수술, 7일 이내 치료’ 등을 보험사는 질문하게 돼 있고, 이러한 내용을 소비자가 알리지 않으면 상법 제651조 및 제655조에 따라 보험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관계자는 “보험사에서는 병원 기록을 믿을 수밖에 없다. 의료법 위반과 관계없이 병원에 한두 번 간 것을 알리지 않은 점도 고지 의무 위반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부분도 따져봐야 할 듯하다”고 했다.
한편 피해 환자가 본인의 진료기록과 건강보험 청구 내역이 다른 점을 알아도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A 씨는 “보건소는 상위 부서 지시가 있어야 조사할 수 있다 하고, 건보공단에 처음 신고했을 때 처리 기간에 3~5년이 걸린다는 이야기 이후 별다른 피드백이 몇 달간 오지 않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민원 접수조차 진행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부천보건소 관계자는 “건보공단과 심평원에서 공문이 내려와야 보건소가 행정 처분 및 고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소송으로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수밖에 없지만,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찮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우리나라는 의료행위별로 비용이 청구되는 시스템이라 병원에서는 내원한 환자들에 대한 허위기록으로 정부에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청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건보공단이 병원의 부당행위신고를 받고는 있지만 거의 제보에 의존하고 있다”며 “병의원의 이런 부당청구행위가 건강보험재정 누수의 큰 요인 중 하나고, 결과적으로 건강보험가입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부당청구행위 적발체계를 강화하고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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