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게 된 날을 잊을 수 없다. 현지 씨(가명)는 25살 취업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있는 4.5평 고시원이었다. 책상과 침대, 작은 옷장이 전부였지만 나름대로 변주를 위해 애썼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책상과 마주 보는 벽에 붙이고 작은 선인장도 샀다. 레트로풍의 꽃무늬 침대보와 이불을 사고 침대맡의 조명도 주문했다. 벽지나 장판을 교체하거나 크고 비싼 가구를 둘 순 없었지만 옵션 사항인 가구의 배치를 바꾸거나 소품, 조명으로 공간을 꾸며 기분을 내는 데에는 큰돈이 들지 않았다.
올해 초, 입사 2년을 맞아 9평짜리 오피스텔로 옮긴 날은 더욱 잊을 수 없다. 현지 씨는 커튼을 설치하고 이케아에서 테이블과 침대, 선반을 샀다. 한 달쯤 뒤에는 스탠드 조명과 디퓨저, 인공 화분, 파티클, 카펫을 추가로 샀다.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일부를 SNS에 올리긴 충분했다. 나의 취향이 외부에 보일 수 있는 일정 수준에 올랐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홈 인테리어에 본인의 취향이 반영됐는지를 묻자 현지 씨는 “결국 내 만족이다. 먹다 흘린 음식물의 흔적과 잡동사니 위에 쌓이는 먼지, 빨래 건조대에 널린 속옷과 평소 창고에 넣어두는 카펫 등 일상의 모습 대신 외부의 시선을 위해 세팅된 장면을 전시하는 데서 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있다. 범람하는 연출샷 홍수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 같다”고 전했다.
#성장하는 홈 인테리어 시장, 그 선두에 선 MZ세대
홈 인테리어 시장의 성장이 가파르다. 여러 요인이 맞물렸다. 1인 가구의 증가와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족 증가, 관련 스타트업의 성장과 SNS를 통한 소비문화 등이 함께 이 시장을 끌었다. 그 선두에는 1인 가구의 주축인 MZ세대가 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는 지난해 미래에셋벤처투자로부터 70억 원을 유치하면서 기업가치를 6455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 진입을 눈앞에 둔 오늘의집의 성장 비결은 ‘콘텐츠’다. 오늘의집 사이트 전면에 있는 ‘온라인 집들이’를 통해 타인의 크고 작은 집 사진을 구경하고 마우스 커서를 대면 나오는 제품 구매 링크를 통해 같거나 유사한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식이다.
집을 뜻하는 ‘홈’과 놀이를 뜻하는 ‘루덴스’를 더한 ‘홈루덴스족’(주거공간 안에서 휴식을 즐기는 이들)의 증가와 함께 관련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하는 추세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5월 MZ세대 남녀 900명을 대상으로 리빙 제품 구매 행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리빙 제품에 관심을 갖고 구매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응답한 MZ세대는 82.3%에 달했다. 주거공간에 관심이 있고 주기적으로, 혹은 가끔 꾸미고 관리하는 비율도 94%나 됐다.
업계 관계자는 “홈 인테리어 플랫폼 대다수가 오늘의집이 거친 길을 따라간다.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하고, 거기서 유입되는 소비자가 구매로 연결될 방법을 고민한다. 시장은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성장하고 정확한 트렌드 키워드가 존재한다. 이케아, 마켓비로 대표되는 중저가 가구 브랜드, 공간 분리용 파티션과 천, 소형 가전 등 주로 가성비 좋은 제품들이 스테디셀러”라고 말했다.
#자아실현용 홈 인테리어와 ‘국민취향’이라는 단어의 모순
구독자가 4만 명인 유튜버이자 항공사 승무원 수현 씨(가명)의 홈 인테리어는 좀 더 본격적이다. 2억 3000만 원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한 재작년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브이로그 채널을 오픈한 뒤 찍은 세 번째 영상이 ‘룸 투어’였다. 수현 씨는 영상을 찍기 위해 큰 거울과 벽에 거는 그림, 커피머신, 하얀색 침구를 구매했다. 브이로그에 등장하는 집의 일부를 위해 주기적으로 꽃을 사고 전시회에서 구매한 엽서를 곳곳에 붙였다.
수현 씨는 홈 인테리어를 “누군가의 딸,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아닌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위한 일”이라고 정의했다. 수현 씨는 “집을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거나 영상으로 만들 때, 집에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할 때 인테리어가 곧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열심히 꾸민다. 사실 집을 고를 때 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수도권에서 넓은 공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나마 위치가 좋으면 해가 잘 안 들고, 신축이면 냉장고, 세탁기 같은 옵션이 미포함된 조건이었다. 그 아쉬움을 인테리어로 풀었다”고 덧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집 꾸미기에 열중할수록 그 취향과 풍경은 비슷해진다. 건국대학교 디자인학과 채혜진 연구자의 2019년 논문 ‘1인 가구 주거 공간의 디자인 문화: 어플리케이션 <오늘의집>의 ‘집들이’ 게시물 중심으로’는 이런 트렌드 저변의 심리를 좀 더 깊이 해석한다.
채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1인 가구는 내 집이 아닌 전월세의 주거 형태에 거주하는 비율이 높기에, 불안정한 주거 상황 속에서 잦은 이사나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중저가 브랜드를 구입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전문적인 공사 대신 가구와 그 배치, 커튼 설치, 소품의 진열, 조명 설치 등의 방식을 통해 공간을 꾸몄다. 대체로 소셜미디어 창구를 통해 실내 공간의 외적 양태가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모방되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국민취향’이라는 표현을 붙인 다양한 사물이 등장하고 유통되는 모습과도 이어진다. 모두 다 같은 것을 추구하며 개인의 취향을 강조하는 모순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1인 주거 공간 소비의 특징은 타인의 시선을 욕망하며, 내 삶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을 제거하고 외면적으로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연출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집들이는 삶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맥락이 끊어진 독특한 이미지를 생산한다. 공간은 ‘연출’되고 다시 사진을 통해 기록된 후 공유되는 것이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도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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