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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카세트테이프 발명가 루 오텐스, 세상을 떠나다

1962년 최초 공개, 뛰어난 휴대성과 내구성 인기…디지털 시대 자취 감췄지만 추억은 그대로

2021.03.11(Thu) 16:13:26

[비즈한국] 카세트테이프를 개발한 루 오텐스(Lou Ottens)가 지난 3월 6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세트테이프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써 온 매체지만 정작 이를 만든 사람과, 그 역사에 대해서는 썩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이 뉴스를 읽고서야 카세트테이프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디지털의 홍수에 급하게 퇴장했고, 그렇다고 아날로그의 감성도 LP에 밀려 그 자리를 잃어버리긴 했지만 카세트테이프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카세트테이프라고 말하는 이 미디어는 ‘콤팩트카세트’라고도 부른다. 철 입자에 자성을 심은 자기 기록 장치인데, 그 크기를 줄여서 오디오를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카세트 시스템이 처음 공개된 것은 1962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조금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대 초반부터 자기 기록 미디어를 필름 형태로 만들고 두 개의 롤에 말아 넣으려는 시도는 이어졌다. 자성을 이용해 소리를 담아내지만 요즘 우리가 LP라고 부르는 레코드의 둥근 형태를 대신하면서도 더 작고 단단한 매체를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발명한 네덜란드 공학자 루 오텐스가 지난 3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다큐먼터리 영상 캡처


하지만 초기에는 크기를 줄이기도 어려웠고, 음질도 좋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이 카세트테이프가 한창때의 유행과 접근성에 비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LP와 비교하면 음질은 못하고, 얇은 테이프를 감아 두는 기록 매체의 기본적인 형태 때문에 그 소리를 제대로 유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휴대성과 내구성, 그리고 음질을 적절히 지켜낸 현재 형태의 카세트테이프라는 규격을 만들어낸 회사가 바로 필립스고, 그 개발자가 루 오텐스다. 필립스는 이 미디어의 대중화를 위해 특별히 라이선스 비용을 받지 않았고, 이후 많은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음향 기기를 개발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큰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 이를 통해 필립스나 루 오텐스가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도 쉽지 않았을 듯하다.

 

카세트테이프를 언제 어디서나 재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워크맨'이 지금의 소니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최호섭 제공

 

이 카세트테이프의 인기는 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인기의 핵심은 누구나 아는 워크맨이었다. 카세트테이프의 크기보다 조금 큰 이 기기는 어디에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여전히 음질에 대한 부분은 LP에 미치지 못했지만, 대중들에게는 좋은 소리보다 어디에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게 더 큰 가치였다. 음악에 모빌리티가 생겨난 것이다.

 

부족한 음질에 대한 부분은 소리를 읽어내는 헤드 소재의 개선이나 테이프를 감는 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모터 기술의 발전으로 풀어냈고, 오토리버스와 곡 탐색 등으로 미디어의 한계도 극복해냈다. 여기에 반도체의 발전으로 소음 제거와 적절한 음장 효과가 더해지면서 카세트테이프는 미디어로서뿐 아니라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디지털 음원과 스트리밍으로 꿈만 같은 이야기지만 음반이 100만 장씩 팔리던 시대는 CD나 LP가 아니라 카세트테이프였고, 길보드 차트 등으로 다소 미화된 불법 복제 음반 시장과 더불어 음악의 소비 형태, 그리고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테이프의 강점은 역시 크기에 있다. 테이프의 역할 중 하나는 데이터 보관이다. 테이프는 싸지만 쉽게 구할 수 있고, 그에 비해 저장 용량이 큰 편이었다. 물론 이는 80~90년대의 이야기다. 지금 40대라면 한 번쯤 삼성전자의 SPC-1000 등의 컴퓨터에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게임을 돌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사진=영화 1987 중 한 장면

 

8비트 컴퓨터 시대를 돌아보면 하드디스크는 아예 꿈도 못 꿀 정도로 저장 장치가 비쌌고, 플로피 디스크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다. 게임은 주로 읽어내기만 하기 때문에 롬 형태의 카트리지로 팔렸는데, 이보다 더 저렴한 기록 방법이 바로 카세트테이프였다. 다만 카세트테이프는 지정된 위치의 데이터에 곧바로 접근할 수 없으므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재생 버튼을 누르면 테이프 속의 데이터를 읽어서 메모리에 올린 뒤에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용량에 따라서 로딩 시간이 길게는 20~30분씩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이 80~90년대의 컴퓨터 생활이었다.

 

놀랍게도 이 기록장치로서의 테이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당장 기업들이 데이터를 장기 보관할 때 하드디스크가 아니라 아직도 자기 테이프를 이용한다. 물론 우리가 음악을 듣던 카세트테이프는 아니고 훨씬 큰 크기의 테이프인데, 하드디스크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용량을 아주 저렴하게 보관할 수 있다. 또한 자성에 대한 관리만 잘 되면 물리적인 충격에도 훨씬 강하다.

 

마찬가지로 음악 시장에서도 이 카세트테이프는 변화를 추구했다. 대표적인 것이 DAT와 DCC다. DAT는 소니가 만든 디지털 방식의 녹음기로 ‘디지털 오디오 테이프(Digital Audio Tape)’의 약자다. 테이프의 형태, 그리고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데이터를 디지털로 기록하기 때문에 녹음이 자유롭고, 고음질을 낼 수 있었다. 작은 테이프 하나로 16비트, 혹은 24비트 비압축 소리를 2시간 이상 기록했다. 물론 소니의 독자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값이 비쌌고 대중화보다는 전문가들의 녹음 장치로 더 많이 쓰이긴 했지만, 순차적인 데이터 기록에서 막대한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테이프의 강점을 볼 수 있는 매체다.

 

DCC는 카세트테이프를 만든 필립스가 디지털 방식의 테이프로 고안한 것으로 Digital Compact Cassette를 줄인 말이다. DAT와 마찬가지로 디지털로 음악을 담아내는 미디어였다. 하지만 가격이 싸지 않았고, 이미 디지털 음악은 CD가 중심에 자리를 잡으면서 발을 붙이지 못했다. DAT는 본 적이 있어도 DCC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대중 미디어로서의 카세트테이프는 이제 거의 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규격의 테이프가 나온다고 해도 날로 값이 내려가는 플래시 메모리를 이겨내기 쉽지 않고, 이전처럼 음반 형태의 음악 소비도 더는 이뤄지지 않는다. 아날로그와 레트로의 상징도 LP나 필름, 옛날 게임팩에 대한 그리움은 있지만 카세트테이프는 왠지 소외되는 느낌이다.

 

소니 워크맨 40주년 전시회에 선보인 수 많은 카세트 플레이어. 사진=최호섭 제공

 

다만 최근의 세계적인 레트로 열풍에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기는 하다. 미국에서는 최근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기묘한 이야기’의 OST가 카세트테이프로 나오기도 했고, 테이프를 전문으로 하는 중고 음반 판매점의 인기도 늘어나고 있다. 2016년에는 시장 규모가 74%나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소니를 비롯한 메이저 음향 기기 제조사들은 더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생산하지 않고 있고, 당연하지만 이벤트성 외에 정규 음반도 더는 카세트테이프로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2019년 도쿄에서 우연히 소니 워크맨 40주년 전시회를 마주했는데, 전시장을 한가득 채운 수많은 워크맨, 그리고 그 기기 하나하나마다 쓰여 있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의 레트로 열풍의 주인공들은 분명 90년대의 음악, 게임 등 콘텐츠가 중심이지만 그 화려함의 뒤에는 기술적으로 콘텐츠를 담아주었던 미디어들이 있고, 그 역시 다시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것 같다. 그 기억을 살려줄 쓸 만한 워크맨 한 대쯤 나오면 어떨까 싶다.

최호섭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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