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로나19는 전 지구적 재앙이지만,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바꿔 성공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박정건 대표가 창업한 STS바이오(에스티에스바이오)도 과연 그런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까. “코로나가 기회를 준 셈이다. 타이밍이 잘 맞았고 앞으로도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박 대표를 지난 10일 인천 송도 스타트업파크에서 만났다.
#코로나19를 기회로 바꾼 두 번의 순간
세포 치료제 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던 박정건 대표는 2019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CSTD(폐쇄형 약물 전달 장치)의 특허권을 양수하겠냐는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CSTD는 약물을 조제하거나 투여할 때 공기 누출을 막고 주삿바늘을 통해 약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약과 달리 실제 현장에서 요구가 강하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 박 대표는 굳은 결심을 하고 도전했다.
그러나 특허권을 가져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대형 제약사도 특허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박 대표가 경쟁하기에는 가진 자본금이 한참 모자랐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올인’한 터라 자칫하면 백수가 될 뻔한 아찔한 상황. 그런데 기막힌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K-진단키트’가 주목받던 지난해 3월 아프리카 가봉 정부로부터 한국산 진단키트를 수출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것. 진단 분야 업무 경험이 있던 박 대표는 일주일 만에 진단키트 업체 두 곳의 제품 7만여 개를 가봉 정부에 판매하는 중개무역을 성사시켜 제법 돈을 만지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4월에 비로소 특허권을 취득했다.
코로나19로 좋은 기회를 얻은 박 대표가 현재 관심을 두고 개발 중인 제품도 코로나와 관련이 있다. ‘LDV(Low-Dead Volume·최소 잔여형) 바이얼 어댑터’라고 하는 장치다. 바늘 분리가 가능한 일반 주사기나 특수 주사기에서 바늘을 분리하고 장치에 꽂아 코로나19 백신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1회 접종분씩 빼낸 후 분리했던 주사를 다시 장착하면 접종할 준비가 끝난다. 현재 백신은 한 병에 다인용 분이 들어 있어 현장에서 주사기로 각각 추출해 접종하는데, 이 장치를 이용하면 절차가 좀 더 간편해진다. 주삿바늘이 백신에 닿을 일도 없다.
“지금은 괜찮다 하더라도 몇 개월간 백신 접종이 이어지면 일련의 과정에서 의료진이 굉장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요. 주삿바늘에 찔릴 위험도 배제하지 못하고요. 또 백신은 고무패킹이 부착돼 있는데 이를 몇 번이고 주삿바늘로 찌르는 과정에서 혹시나 고무가 들어가면 오염될 가능성도 있죠. 백신 접종 과정에서 의료진 및 환자에게 튀는 상황도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전하면서 효율적인 백신 접종’에 기여하고 싶다는 게 박 대표 생각이다.
특수주사기를 이용해도 의료진이 백신을 추출하는 숙련도에 따라 백신 바이알(병) 잔량이 달라질 수 있다. 이 편차를 최소화하는 게 STS바이오가 개발 중인 장치의 또 다른 목표이기도 하다. 추후 STS바이오는 실제 현장에 쓰이는 백신과 주사기를 구해 실험한 후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품 양산에는 두 달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박 대표는 “코로나로 덕을 본 만큼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올해 CSTD 급여화 추진…병원 내 안전 수준 더욱 높일 것
LDV 바이얼 어댑터는 기존 STS바이오의 핵심 제품인 CSTD에서 착안해 개발됐다. 지난해 4월 단일모드에 대한 특허를 인수한 이후 다중모드에 대한 특허도 취득했다. 두세 개 약물을 한 번에 빼낼 수 있는 제품이다. 박정건 대표는 “미국에서는 항암제를 유해약물로 지정했다. 의료기관에서 위험한 약물을 사용하면 불임, 유산, 백혈병 등 발병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항암제 약물을 빼내는 게 단순 작업이기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늘 환자와 의료진이 약물 노출 위험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STS바이오는 올해 제품의 급여화를 추진하고 본격적인 판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비급여로 등재된 CSTD 제품이 지난해 7월 필터에 한해서만 급여 전환된 상황. 박 대표는 아예 ‘CSTD’ 분류 신설을 통해 급여권 진입을 시도할 계획이다. 아직 국내에서 CSTD에 대한 인식이 미미해 비슷한 국내 제품은 없는 상황. 박정건 대표는 “시중에 있는 외국산 제품은 산정 불가 제품으로 건강보험 청구가 안 돼 병원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외국산 제품 대비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춰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현장에서도 수요가 상당하다고 한다. 일부 국내 대형병원에서는 로봇을 도입해 약물 조제를 맡기기도 한다. 그러나 로봇을 도입하는 데는 1대당 10억 원 이상이 들고, 유지비용도 한 달에 수천만 원 이상이다. STS바이오가 현장에서도 고위험 약물 감염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데서 앞으로 수요가 꾸준히 있을 거라 보는 이유다.
이날 인터뷰 말미, 코로나19가 또 한번 언급됐다. 류동진 STS바이오 부사장은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병원 내 안전한 환경이 주목받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병원 내 모든 사람의 안전이 중요시될 것으로 본다. 아직 10명 정도가 꾸려가는 작은 기업이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서는 선두 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정건 대표는 “이미 일본과 영국에서는 CSTD 급여가 적용됐고, 미국은 위험한 약물을 다룰 때 CSTD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인식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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