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동아제약이 과거 사내 성희롱 문제로 징계를 받은 간부에게 여전히 생리대 ‘템포’ 마케팅 총괄 업무를 맡긴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동아제약은 최근 직원 채용 과정에서 면접관이 성차별적 질문을 던져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해당 피해자는 면접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동아제약의 남성 중심적 군대식 기업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남성으로 확인돼 이러한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익명의 제보자 A 씨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템포 브랜드가 속한 의약외품과 건강식품을 관리하는 동아제약 생활건강사업부 마케팅부장 B 씨는 연말 회식 자리에서 남성 부하직원을 성희롱한 것이 밝혀져 징계를 받았다. A 씨는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에서 언급하지 않았으나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고 들었다. 다만 성 관련 이슈라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자세한 내용은 공유가 안 된다고 (회사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포착됐다. 지난 2월 19일 한 작성자가 생활건강사업부 분위기에 대해 문의하자 한 동아제약 직원 C 씨는 “오지 마세요. 거기 부장이 성추행범이에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확인 결과 A 씨와 C 씨는 동일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B 부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두고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2019년 말 사건이 발생한 이후 B 부장은 바로 다음 해인 2020년 1분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아쏘시오그룹 웹진 사이트 ‘위드동아’에 따르면, 동아제약 생활건강사업부는 2020년 2월 13일 전략 회의를 열었다. 동아제약 유통영업부와 유통마케팅부가 생활건강사업부로 통합된 후 처음 열린 회의였는데 이 회의에 B 부장도 참석해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제보자 A 씨는 “사내 성 문제라는 큰 이슈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권력을 가진 팀장으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더구나 B 부장은 템포라는 여성용품 브랜드를 총괄 감독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회사생활과 승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동아제약의 기업문화 때문이다. 동아제약은 이직자들로 구성된 생활건강사업부, 화장품사업부를 제외하고 공채의 경우에는 80% 이상이 남자 직원으로 남성 비율이 월등히 많은 회사고, 여전히 ‘술잔 돌리기’를 하는 기업”이라고 밝혔다. A 씨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던 2020년 초 동아제약 한 회식 자리에서도 술잔 돌리기가 이뤄졌다. A 씨는 “당시 동아에스티 계열사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라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제약 측은 해당 사건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9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당시 회사에서 B 부장의 보직해임과 정직, 6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이후 같은 팀 직원들이 ‘일시적으로 실수를 한 부분이고 업무적으로는 배울 점이 많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그래서 보직해임이 아닌 정직 2개월과 6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다”며 “현재 생활건강사업부 부장직을 맡고 있는 것은 맞다. 실수가 재발할 시 사표를 수리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피해자 역시 개인의 인생 등을 감안해 더 이상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진술서를 작성했다. 또 부서를 바꿨던 피해자가 1년 뒤에 원래 했던 일을 하고 싶다고 알려와 현재는 해당 부서에서 (B 부장과 피해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성희롱 사건이라고 하면 보통 남자와 여자 간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건은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발생한 일이고, 보도가 될 경우 2차 가해 등이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동성 간 성추행·성희롱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 모두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군대 내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군대 내 성희롱적 언어문화의 문제는 사병간의 문제를 넘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등 여성 비하적 문화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피해자는 진술서를 통해 “가해자 징계나 보상 등을 바라지도 않고 형사고발이 아닌 제 선에서 끝내고 싶다”면서 “다만 저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권력에 의해 이런 경우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사건을 공식화했다”고 본인 의견을 밝혔다.
동아제약의 경직된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은 ‘지난해 신입사원 면접에서 성차별을 당했다’고 네고왕2 동영상에 댓글을 남겼던 지원자 D 씨의 입에서도 나왔다. D 씨는 8일 카카오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를 통해 “‘여자라서 군대를 가지 않았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냐’, ‘D 씨도 군대에 갈 생각이 있냐’는 등의 질문을 한 사람은 단순히 ‘면접자 중 한 명’이 아닌 ‘인사팀장’이었다. 인사팀장이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을 자행했다는 것은 성차별이 조직 전체의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며 “저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점조차 매뉴얼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시대를 역행하는 기업이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동아제약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동아제약 측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면접 성차별 논란에 대해 “군 미필자 대비 군필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인사 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D 씨는 브런치에 올린 글에서 “임금 차별을 정당화할 사내 인사제도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또 유일한 여성 면접자에게 군대에 갈 생각이 있냐고 물은 것이 어떻게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실제 구직자 의견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이 되냐”며 “여럿이 모인 곳에서 특정 집단만의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는 그러한 경험이 없는 자에 대한 배척 행위”라고 반박했다.
파문이 확전될 조짐이 일자 최호진 동아제약 사장이 유튜브 댓글을 통해 사과했으나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D 씨는 “(동아제약에서) 개인적으로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과했지만, 사과문에서 ‘성차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돼 있지 않았다. 동아제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성별 임금 차별 자료와 임직원 성비 관련해 기업 내 성차별이 있음을 인정하는지, 조직 내 성차별 문화와 관행을 어떻게 개선할 계획인지 등을 담아 사과문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일부 소비자들은 ‘여성용품은 팔고 싶지만 성차별은 한다는 거냐’며 생리대 템포 등 동아제약 제품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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