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3병동 휴게실에 모여 뉴스를 보는 요양병원 환자들 사이에서 최윤희 씨(가명·64)가 막 백신 접종을 끝냈다. 의사들이 환자 상황을 매일 점검하지만, 접종에 들어가기 전에도 간단한 예진을 거쳤다. 휴게실 소파에서 접종받은 최 씨는 “별로 아프지 않았다”며 “접종받을 때도 그렇고 병실을 같이 쓰는 다른 환자들은 별말 없었다”고 했다. 이날 병원에선 환자 4명이 백신을 접종받았는데, 폭력성이 심한 환자는 침대에서 접종이 진행됐다.
지난 4일 오전 충청남도 논산 대정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보건소에서 백신이 공급된 건 일요일인 28일이었지만, 공휴일과 병원 휴일을 고려해 날짜가 정해졌다. 이 병원에선 환자 4명을 포함해 이틀 동안 88명이 접종했다. 만 65세 미만 입소자와 종사자(97명) 중 약 90%다. 접종 대상 환자 5명 중에서는 보호자 거부로 1명이 접종 명단에서 제외됐다. 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대상 인원 중 어릴 때부터 백신을 꺼렸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직원 등 8명이 빠졌다. 백신 이상반응 뉴스를 보고 안 맞겠다고 중간에 마음을 바꾼 사람도 두어 명 있었다.
대정병원은 메르스와 코로나 두 감염병을 모두 겪었지만, 이번 백신 접종 전 의료진의 긴장감은 남달랐다. ‘집단 면역’으로 코로나 사태를 끝내고 싶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접촉 면회가 중단되면서 보호자와 의료진의 의견 충돌도 과거보다 잦아졌다. 내일(9일)부터 접촉 면회의 길이 열리지만 임종이 임박한 환자나 중증환자로 제한된다. ‘백신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으로 백신이 병원에 공급된 이후 평일에는 약사가, 휴일에는 시설 담당자가 백신 냉장고의 온도를 점검해 약사가 다시 확인하는 식으로 관리에 만반을 기했다.
#만반 기한 접종 현장…특수주사기 이용하니 백신 남아
“백신 접종 시작합니다!” 오전 8시 30분 병원장이 먼저 병원 1층 구석에 있는 백신 접종 장소로 향했다. 환자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건소 지침 기준으로 전날 밤 근무 인력과 만 65세 미만 환자가 이날 오전 접종 명단에 올랐다. 접종 전 예진은 진료팀장이 맡았고, 안내 및 접종은 간호팀장과 QPS(Quality Improvement&Patient Safety·의료질향상과 환자 안전) 실장이 맡았다. 대학병원에서는 백신 접종 간호사를 수당을 주고 병원 내에서 별도로 구하기도 하지만, 이 병원에서는 평소처럼 간호 관리 인력이 담당했다.
백신 접종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선 간호사가 열을 재는 등 기본적인 몸 상태를 물었고, 의사는 최근에 감기 증상을 알았던 적이 있는지 등을 묻고는 “접종 후에 30분에서 며칠간 아플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접종 과정에서 간호사는 “바로 목욕을 하면 안 된다. 따끔할 수 있다”는 말을 하더니 아이스박스에서 백신을 꺼내 접종했다. 아이스박스와 연결된 온도계는 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상 2~8도에서 보관돼야 한다. 한 명 접종이 끝나면 간호사는 백신 뚜껑을 솜과 종이테이프로 고정한 뒤 백신을 다시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백신 접종 후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이지원 병원장은 “긴장이 돼서 그런가 아팠다”고 했다. 매점에서 봉사 중인 김귀옥 씨는 “아프다기보다 뿌듯함이 앞선다. 아직은 괜찮은데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상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앉아 있는 직원들은 주삿바늘의 굵기에 관해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접종을 마치면 15~30분간 이상반응 관찰 장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후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문서에 ‘이상반응이 없다’는 뜻으로 사인을 하고 돌아갔다.
의사들 사이에선 ‘발열’도 논란거리였다. “다른 요양병원에서는 직원 절반 이상이 열이 났다더라”, “젊은 사람도 38도까지 열이 올라갔다더라”와 같은 말들이 오갔다. 이 병원에서는 환자를 제외한 접종자들에게 타이리콜(아세트아미노펜)을 비상용으로 네 알씩 지급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백신 접종 후 이부프로펜·아스피린·아세트아미노펜 등 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접종 전 진통제 복용은 권고하지 않는다. 서정복 부원장은 “약을 먹어도 증상이 심해지면 직원의 경우 인근 급성기 병원 응급실을 방문해 치료받도록 한다. 환자의 경우 병원에서 지켜보며 약을 처방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병원에서는 1시간에 5~6명 정도 백신 접종이 가능하리라 내다봤지만, 예상보다 시간은 단축됐다. 12명 정도가 접종을 마치기에 충분했다. 오전 10시 40분까지 20명 내외가 접종을 마쳤다. 이날 예정된 접종 인원의 절반이다. 이날 피스톤과 바늘 사이의 공간을 최소화한 ‘특수주사기(최소 잔여형 주사기)’도 이야깃거리였다. 1병에 6.5ml가 든 아스트라제네카의 1회 접종량은 0.5ml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13명이 맞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10회 접종을 권고한다.
정부는 국내 업체가 개발한 특수주사기를 활용해 접종 권고 인원수에 대한 접종이 끝난 후 잔여량으로 접종할 수 있다는 지침을 지난 27일 의료 현장에 전달했다. 대정요양병원에서도 특수주사기를 이용했다. 병원에서 별도 요청은 없었지만 지자체에서 특수주사기를 공급했다. 이날 백신 접종을 담당한 간호팀장은 “13명까지는 애매하고 12명까지는 충분히 맞을 수 있겠다”고 했다. 이 병원에는 총 10바이알(병)이 입고됐는데 최종적으로 2바이알이 남았다. 남은 백신 물량은 백신 보관 기준에 따라 병원 내 자체 보관 뒤 4월 말로 예정된 2차 예방 접종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병원 측은 밝혔다.
#직원 50% 발열…피로감 커진 지방 요양병원 ‘집단 면역’ 기대
접종 이후 병원에서는 직원 50% 정도가 발열 반응을 보였다. 백신을 접종한 환자 네 명 가운데 이상반응을 보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응급실로 향한 이는 없었지만, 한 직원은 백신 접종 다음 날 병원에서 수액을 맞았다. 서정복 부원장은 “면역 반응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백신 효과가 좋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요양병원 직원들이 겪는 피로감을 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재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의무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코로나는 특히 지방 요양병원에 적잖은 타격을 안겼다. 대정병원은 논산시에 있지만, 공주시 등 인근에서 오는 외래 환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외래 진료가 중단되면서 수익이 줄었다. 간병인 등 인력 충원도 쉽지 않다. 간병인 대다수는 중국동포 출신인데 이들이 코로나 이후 중국으로 많이 돌아갔다. 보호자 부담인 간병비를 무작정 올릴 수도 없다.
서 부원장은 “요양병원에 근무하기 때문에 생기는 제한들로 직원들이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해외 학회와 다른 병원에 가지 못해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다. 병원에서 방, 층 단위 프로그램을 새로 기획했지만 환자들의 심정은 더 막막할 것”이라며 “하루빨리 코로나 상황이 종식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표했다.
논산=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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