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내외 경제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해 잠재성장률 하락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주열 한은 총재나 홍남기 부총리는 한은 보고서와 달리 잠재성장률 급락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최근 경제 분석 기관들은 코로나19의 충격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향후 잠재성장률 3대 요소인 노동투입과 자본투입, 총요소생산성(노동·자본을 제외한 기술·경영혁신·노사관계 등) 하락으로 잠재성장률이 더 하락할 우려마저 나온다. 9개월 전에 흐름을 제대로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고도 정부와 한은이 대응에 소홀했던 셈이다.
한은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코로나19 이후 경제구조 변화와 우리 경제에의 영향’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코로나19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를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주체들의 행태에도 변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가계는 생계와 안전에 위협을 겪으면서 위험회피성향이 높아지고, 기업은 예기치 못한 생산 차질을 겪으면서 복원력·유연성에 큰 가치를 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탈세계화 추세도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보고서는 ‘이와 같은 변화는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산업·노동 구조 변화와 글로벌 교역 둔화로 생산요소 투입이 부진해지면서 잠재성장률에 하방압력이 증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당시 2019~2020년 잠재성장률을 2.5%로 추정해왔다는 점에서 자칫 2%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총재와 홍 부총리는 잠재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총재는 1%대 하락 가능성 지적에 “잠재성장률을 2%대 중반으로 추정했지만 그 이후 실제 성장이 낮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때보다도 잠재성장률이 더 낮아졌을 것”이라면서도 “1%대로 틀림없이 갔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 역시 “정부도 이번에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잠재성장률의 일정 부분이 훼손됐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잠재성장률이 1%대라고 하는 건 지나친 주장이 아닌가 싶다”며 “자본투입과 노동투입,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은은 올해 초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5%보다 다소 떨어진 2% 초반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경제 분석 기관들은 9개월 전 한은 보고서에서 우려한 대로 코로나19 악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했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국회 연구기관인 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2020~2024년 잠재성장률은 연평균 2.0%로 추정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투자가 위축되면서 잠재성장률의 3대 요소인 노동과 자본, 총요소생산성이 큰 폭으로 하락한 탓이다.
2020~2024년 자본의 잠재성장률 기여도는 이전 5년(2015~2019년·1.5%포인트)에 비해 0.4%포인트 떨어진 1.1%포인트로 추정됐다. 총요소생산성 기여도 역시 같은 기간 1.1%포인트에서 0.9%포인트로 하락했다. 이는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자본 투입과 기술 혁신이 둔화된 때문이다. 2020~2024년 노동 기여도는 생산인구 감소에 취업난까지 겹치면서 0.0%포인트로 잠재성장률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기관인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19 충격으로 잠재성장률이 1%대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0~2024년 잠재성장률은 코로나19 발생 전 2.2%였으나 코로나19 여파로 1.9%로 감소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노동 기여도가 코로나19 발생 전 0.5%포인트였으나 코로나19 발생 후 0.3%포인트로 떨어졌고, 총요소생산성도 0.6%포인트에서 0.3%포인트로 하락한 것으로 추정했다. 홍 부총리가 국정감사에 약속한 자본, 노동, 총요소생산성 확대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한은 보고서 지적대로 코로나19 이후 국내는 물론 국제적 경제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어 향후 잠재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화된 탓에 소비나 투자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수요 부진과 고용난 가중을 초래해 잠재성장률을 추가로 떨어뜨리게 된다.
또 미국과 중국 등에서 강화되는 보호무역주의가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줘 잠재성장률 추가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코로나19가 야기한 저출산이 고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점도 잠재성장률에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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