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제약 산업은 기초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카피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즈한국’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제약 산업이 지닌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는 그야말로 ‘전염병의 시대’였다. 장티푸스 같은 급성전염병이나 결핵, 기생충 감염 등이 창궐했다. 그래서 제약 산업도 항균제와 항생제 중심이었다. ‘근·현대사 이후 한국인의 최다 선호 일반의약품의 추이에 대한 연대별 분석 및 종합적 의의에 대한 평가’ 논문에 따르면 당시 약 판매 1위가 항생제 ‘구아니찡정’이었다. 회충 구제제인 산토니정도 생산량이 높았다고 한다.
정부 관심도 항생제에 있었다. 1950년대 후반 ‘항생제 국산화 계획’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중반만 해도 외국에서 완제의약품을 수입했다. 약다운 약을 생산할 만한 인적·물적 인프라를 갖춘 곳은 국립방역연구소와 국립화학연구소 정도였다고 한다. 국내 제약기업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한 정부는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대외 원조를 받은 국내 제약사가 수입의약품만큼 약을 생산해내면 해당 품목 약 수입을 금지하는 방식이었다.
#‘피로 회복’ 관심 높아지며 자양강장제 등장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1958년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항생제가 생산됐다. 이후에도 항생제 생산시설에 과잉 투자가 지속됐다. 1960년대에도 항생제가 가장 많이 생산된 약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상위 10대 생산 품목’에 자양강장제가 다수 포진돼있었다는 점이다. 앞서의 논문에서 이윤정 단국대 약대 교수팀은 “자양강장제와 비타민제가 폭발적으로 팔렸다. 특히 비타민은 한국인들에게 영양부족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일종의 보신제로 여겨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점차 피로회복제 등 보신제에 대한 제약업계의 관심도 커지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동아제약 ‘박카스’, 1963년에는 일동제약 활성비타민 영양제인 ‘아로나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카스는 주당들을 지켜주고 풍년이 들도록 도와주는 술과 추수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로나민은 몽골어로 18세를 의미하는데, ‘아로나민을 복용해 18세의 젊음을 되찾자’는 뜻이 담겼다.
이들의 광고 경쟁도 치열했다. 동아제약은 전문지를 통한 의·약사 대상 광고를 벗어나 TV와 신문, 잡지 등 모든 매체에 ‘활력을 마시자’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광고 규제가 느슨해 1분 30초간 ‘음주 전후 피로 회복’을 주제로 한 광고를 송출했는데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고 한다. 발매 초부터 월 35만 병의 판매 실적을 올렸고 1963년에는 56만 병의 판매량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아로나민은 권투 세계 챔피언 김기수 씨를 모델로 등장시켜 ‘전신에 스며드는 아로나민 효과’라는 문구를 강조했다.
#비타500 등 경쟁 제품 추격 만만찮아
1960년대 박카스와 아로나민은 모두 ‘히트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어떨까. 우선 일반의약품을 주로 다루는 동아제약의 매출 절반을 박카스가 견인하고 있다. 동아제약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 IR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동아제약 매출에서 박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53.6%다. 박카스 내수 매출은 2010년 1000억 원대에서 현재 2000억 원대까지 올랐다. 현재 동아제약 총매출은 4000억 원대다.
업계에서 자양강장제 시장은 5000억 원대로 추산하는데 이 중 박카스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그러나 박카스 역시 코로나19의 타격을 아주 비켜가지는 못했다. 박카스 매출은 2018년 2234억 원, 2019년 2331억 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2225억 원을 기록하며 2019년 대비 4.5% 줄어들었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박카스D’의 지난해 매출은 2019년보다 86억 원,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박카스F’는 20억 원 감소했다. 박카스는 2011년 의약외품으로 전환돼 약국 외 장소에서도 판매한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박카스D 비중이 2018년 59.7%, 2019년 57.8%, 2020년 56.7%로 감소 추세다. 다만 박카스 영업사원들의 노력으로 매출 감소폭을 최소화했다”며 “전체 매출도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 및 대면 만남 등이 줄어든 탓이다. 코로나라는 근본적인 원인 해결이 필요한 상황은 맞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해결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소비층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배스킨라빈스, 예스24 등과 협업해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로나민도 연간 약 700억 원대 매출을 내며 종합비타민제 시장을 이끈다. 아로나민류 매출은 2017년 741억 원, 2018년 780억 원, 2019년 669억 원이었다. 특히 아로나민 골드 등 아로나민 시리즈 매출로만 보면 2017년 678억 원, 2018년 663억 원을 기록하다 2019년 592억 원으로 주저앉았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시장 재고와 유통채널 다변화 등을 감안해 회사 차원에서 출고를 조정해 매출액이 감소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는 2019년 대비 10% 이상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긴 역사만큼이나 동아제약과 일동제약은 피로회복제와 종합비타민제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종근당 ‘자황’, 제일약품 ‘진녹천’, 일양약품 ‘원비디’ 등 등 자양강장제 경쟁제품들이 계속 나온 데다 2019년 2710억 원의 매출을 올린 광동제약 비타민 음료 ‘비타500’을 비롯해 기능성 음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아제약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일동제약도 마찬가지다. 대웅제약 ‘임팩타민류’와 유한양행 ‘삐콤씨’, 종근당 ‘벤포벨’이 쫓아오고 있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자양강장제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약국 영업 서비스 개선과 브랜드 친숙도 강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향후 사용자 건강 상태와 라이프 스타일, 사용 목적 등에 따라 아로나민 브랜드 세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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