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모든 스타트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의미하는 ‘J커브’를 꿈꾼다. 하지만 그들의 시작은 늘 두렵고 서툴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하다. 셀 수 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기회를 잡은 스타트업만이 J커브의 영광을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 과연 그 위대한 과정에는 어떤 ‘업’과 ‘다운’이 있었을까.
전기차 이용자들은 불편함 속에 살고 있다. 차량의 배터리를 확인한 후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에서 최적의 충전소를 찾는 것이 그들의 일과다. 충전소에 도착해도 난감할 때가 많다. 업데이트가 늦어 충전기가 이미 사용 중이거나 고장 난 경우도 종종 있다.
전기차 충전소 정보 제공 및 충전 결제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소프트베리’는 전기차 이용자들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스타트업이다. 이용자들은 ‘이브이 인프라(EV Infra)’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전국의 모든 충전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충전기 상태는 1분 단위로 업데이트된다. 전체 충전기의 52%는 이브이 인프라를 통해 결제도 가능하다.
소프트베리는 집단지성을 활용한다. 이용자들이 제보한 충전소 정보를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환경부에선 제공하지 않는 전국의 시범용 무료 충전기도 고객 제보로 반영된다. 모든 이용자는 충전기마다 의견도 남길 수 있다. 현재 이브이 인프라 회원 수는 17만 명으로 전기차 이용자의 92%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START: 생활 속 불편함에서 출발한 창업
박용희 소프트베리 대표는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이다. 전기차를 처음 접한 건 2015년. 아내가 전기차 구매를 권하면서다. 광주에서 구매한 차량을 직접 가지고 오면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충전 계획을 잘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히터를 틀어도 배터리가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예상보다 주행 가능 거리가 빠르게 줄었다. 환경부의 충전소 현황 지도를 보니 근처엔 충전소가 없었다. 일일이 검색한 끝에 근처에서 민영 충전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구글 지도에 환경부에 없는 전기차 충전기를 표시하며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전기차 동호회 회원들이 그에게 지도 공유를 요청했다. “전기차 충전소를 찾는 데 불편함을 겪는 이용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앱을 만들어야겠다 결심했다. 수익보다는 집단지성으로 불편함을 해소하자는 마음이 더 컸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2016년 2월에 앱 개발을 시작해 5월에 이브이 인프라를 탄생시켰다.”
#UP: 소프트베리의 구세주는 한전?
월급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한국전력공사(KEPCO)가 에너지 스타트업 지원 사업 공고를 낸 것. 선정된 기업에 연간 1억 원, 최장 2년 2억 원 한도로 투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박용희 대표는 초반에 지원을 주저했다.
“소프트베리가 에너지 스타트업에 걸맞은 기업인가 싶었어요. 우리가 에너지를 직접 컨트롤하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왜 내가 이걸 고민하고 있지?’ 싶더라고요. 결정은 한전이 할 텐데요.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결과는 합격. 이와 함께 박 대표는 한전에 추가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충전 사업자 간 서비스를 통합하는 로밍 사업을 제안한 것. 그동안 충전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전기차 이용자들은 충전기 사용을 위해 여러 장의 회원 카드를 들고 다녀야 했다. 박 대표는 한전을 통해 이 같은 불편함을 해소하길 원했다.
박 대표는 1년 3개월 동안 한전에 로밍을 제안했다. 그 사이 이브이 인프라는 집단지성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로 성장을 거듭했다. 충전 사업자들과 전기차 이용자들 간 문제들도 소통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회원 수도 꾸준히 늘었다.
결국 한전은 소프트베리에 로밍 사업을 허가했다. 이로 인해 소프트베리는 전기차 급속 충전기 기준으로 단숨에 시장의 45%를 점유했다. 국내 절반의 충전기를 확보하니 다른 충전 사업자들과도 협약이 이어졌다. 소프트베리는 현재 GS칼텍스, 에스트래픽과도 함께 일하고 있다. 점유율은 52%까지 끌어올렸다.
#DOWN: 수익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기업을 위기에 빠뜨리다
빠르게 사업이 성장했지만 박용희 대표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수익 모델이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사업 운영비가 점점 늘었다. 결국 박 대표는 한전으로부터 받은 1억 원으로 수익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전기차 배터리 소모량과 목적지에 따라 최적의 충전소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싶었어요. OBD(운행기록 자기 진단 장치)를 통해 얻은 이용자들의 전기차 정보를 이브이 인프라와 접목하면 고객에게 ‘차량 배터리 레벨이 40% 이하이니 5km 앞에 있는 충전소에서 차량을 충전하라’라는 음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이 서비스는 통신과 연계돼 이용자들이 매달 사용료를 내야 해 수요가 뒤따르지 않았다. 그는 “유료 서비스라는 점이 고객에게 부담이었던 것 같다. 2년 동안 무료였는데도 말이다.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고, 투자금도 모두 날렸다. 개인적으로 많이 위축됐던 시기”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다시 ‘고객’에 집중, 그리고 투자 유치
박용희 대표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전기차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내가 충전 사업까지 할 줄 몰랐던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떤 사업을 해나갈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집단지성이 기반인 사업은 언젠가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적자였지만 대출까지 받아 사업을 이어갔다. 이브이 인프라의 강점인 ‘고객’에 더 집중했다.”
결국 소프트베리는 2019년 GS칼텍스와 N15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2019년 말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도 선정됐다. 이용자별 충전량·충전 패턴·충전기 이용 빈도 등을 분석해 충전 사업자에 최적의 전기차 충전 가격과 충전소 운영 시스템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과제는 오는 10월 발표될 예정이다. 투자 성공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직원도 스무 명 가까이 늘었다.
소프트베리는 1월 28일 SK렌터카와 현대자동차 제로원으로부터 프리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박 대표는 “고객의 충전 이용 패턴에 이브이 인프라를 녹여내는 것이 목표다. 국내 1위 친환경 자동차 통합 플랫폼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소프트베리와 나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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