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2015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은행에 뭣 하러 돈을 넣어. 금리가 15%밖에 안 되는디’라는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에는 ‘일산’. ‘대치동’, ‘은마아파트’ 같이 이제는 재개발의 대명사가 된 단어도 등장한다.
은행 예·적금 금리가 0%대에 수렴하는 지금, ‘재테크가 필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해 동학개미운동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MZ세대는 새로운 투자 세력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이들의 투자 방식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빚투’(빚내서 투자) 같은 단어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런 용어의 이면에는 ‘불안감’이 깔렸다. 투잡을 뛰거나 부업을 통해 소득을 높이고 재테크 공부를 하며 이른 은퇴를 꿈꾸지만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세대를 명명하는 용어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만의 호흡을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재테크블로거 #부업 #N잡러 #파이어족
20대 후반 반비(예명)는 작년 1월부터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블로그 이름은 ‘반비의 경제적 자유’다. 1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블로그 포스팅 360개, 총 방문자 수 120만 명을 달성했으며 최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굳이 회사에 취직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있다. 블로그에서 매월 일정한 수입이 나오고, 그 외 부업에서도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애드포스트 수입, 증권사·은행 홍보 원고 등을 작성하고 받는 원고료를 받는다. 프리랜서 마켓인 크몽에서는 재능 서비스를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달 들쑥날쑥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첫 달에 매출 200만 원을 달성했을 정도로 시간 대비 소득이 높다. 일단은 취직을 해 안정적인 근로소득으로 생활비를 확보하고 부업으로 추가 소득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반비의 목표는 40대에 20억 원 순 자산과 내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다. 많은 걸 배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기 위한 돈이다. 구체적인 버킷리스트 50개도 있다. 가능한 한 빨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은퇴하고 싶다는 점에서 스스로 ‘파이어족’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재테크 독서모임과 투자 공부도 따로 하고 있다.
반비는 “과거에는 ‘부동산 투자자는 투기꾼’, ‘주식하면 패가망신’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우리 세대에게 재테크는 필수로 여겨진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월급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인터넷의 많은 정보와 모바일 앱으로 비교적 쉽게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엄청난 재능이 없어도 유튜브, 블로그, 강좌 개설 등 온라인으로 돈을 벌기 쉽다. 이 새로운 기회에 올라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끌, 욜로같은 수식어에는 거부감이 있다. 반비는 “‘요즘 애들은 별나, 특이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아 불편하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것일 뿐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용어가 나오겠지만 부정적인 이미지와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X소기업 #짠테크 #스마트스토어_부업 #소확행
30대 초반 직장인 현지는 인터뷰 동안 ‘X소기업(중소기업을 격하게 비하하는 말)’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취하면서 월급 200만 원으로 산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고도 말했다.
월세 43만 원과 관리비 7만 원에 전기세, 가스비, 교통비와 생활비를 제외하면 하나 있는 20만 원짜리 적금을 해지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 간신히 누른 뒤 그나마 절약이 가능한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계획을 짠다.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밥을 먹는다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을 피하는 식이다.
현지는 중고 거래와 앱테크(애플리케이션과 재테크의 합성어)에도 열심이다. 주변에서 짜다고 한마디씩 얹어도 자잘한 돈을 모으면 그다음 달이 편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다. 안 읽는 책은 알라딘 중고서점에, 안 쓰는 물건은 당근마켓과 번개장터, 중고나라에 판매한다. 구매도 주로 같은 경로로 한다. 앱테크는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만보기형 적립 앱 ‘캐시워크’와 광고형 적립 앱 ‘캐시슬라이드’는 주변 친구들도 많이 했지만,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고 지웠다. 친구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때마다 광고를 보는 게 불편하다고 했지만 조금씩 모아서 커피 쿠폰으로 교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친구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액세서리 판매 부업도 하고 있다. 동대문에서 비즈 등 재료를 떼어 와서 직접 제작해 올리고 있다. 3년 전 시작할 때 초기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비해 생각만큼 쉽게 주문이 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올라 작년에는 100만 원가량 판매된 달도 있었다.
현지의 단기 목표는 ‘전셋집으로의 이사’와 ‘종잣돈 1억 원 마련’이다. 작년부터 재테크 관련 공부도 시작했다. 서점에 가서 재테크 관련 책을 사는 것부터 시작했다. ‘여윳돈을 모아 주식투자 공부를 해라’, ‘1억 원을 마련하면 돈은 그다음부터 알아서 불어난다’ 등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조언들뿐이지만 틈이 날 때마다 읽고 또 읽는다.
현지는 “‘욜로’, ‘영끌’같이 MZ세대를 일컫는 용어들에 공감하지 못한다. ‘N포 세대’, ‘빚투’ 같은 용어는 차라리 익숙하다. 비혼을 결심한 건 아니지만 집을 사고 결혼을 한다는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는다. 회사에 빚을 내서 투자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티끌을 모아서 태산이 될 수 있다고 믿진 않는다. 재테크에 밝고 소확행을 추구한다는 이미지 뒤에는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전했다.
#배경 없이 현상만 남는 ‘용어의 함정’ 조심해야
지난해 7월 발표된 미래에셋 은퇴리포트 ‘밀레니얼 세대, 신 투자인류의 출현’은 이 같은 현상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소개한다. 이 보고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에 대해 ‘저금리 극복을 위해 금융 투자를 시작하며, 최우선 순위는 주택구입과 은퇴자산 축적’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지난해 확대된 젊은 세대의 개인주식투자 열풍이 한국에서는 ‘동학개미’, 일본은 ‘닌자개미’, 중국은 ‘청년부추’ 투자 등으로 회자되며 모바일, 온라인 기술 기반과 비대면 생활방식에 익숙하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전했다.
20~30대 재무 상담 경험이 많은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은 이들의 제테크가 갖는 특징에 대해 “운동화 리셀, 중고거래 등의 MZ세대의 재테크 방법으로 꼽히는 대부분은 갑자기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하던 현상이다. 방법과 형태가 변화되어 왔지만 특정 세대만의 특징으로 꼽기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최근 명품을 소비하거나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행보들은 주목할만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게 불가능한 세대다. 전반적으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움직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봤다.
한편에선 용어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경제 미디어 ‘어피티’ 대표인 박진영 씨는 작년 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N포세대나 욜로, 영끌과 빚투처럼 청년들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고 트렌드로 다루려는 시도에서 함정이 생긴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금융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 청년층의 낮은 금융 이해도, 신용카드 사용과 저금리 대출을 권하는 배경 없이 현상만 남는다는 설명이다.
서 원장은 “무엇을 위해 돈을 모으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목표가 불확실할 경우 어렵게 돈을 모아도 한 번에 사라질 수 있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부동산이나 투자에 대한 정책이 자주 바뀌고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호흡을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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