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방역 당국의 선택은 ‘임상 근거 중심 접종’이었다.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임신부를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한 데 이어 15일에는 만 65세 이상 연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보류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임상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접종을 두고 해외 각국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터라 우리나라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두고 전 세계 방역 당국의 관심이 집중됐다.
#예외적으로 가능하다지만 사실상 접종 불가능…산부인과학회에선 다른 의견
15일 나온 ‘코로나19 예방접종 2~3월 시행계획’을 보면 임신부 접종에 대한 이변은 없었다. 임신부는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대상에서 임신부가 배제돼서다. 오는 26일부터 요양병원·시설, 정신병원, 정신요양·재활시설 등 65세 미만 입소자와 종사자 약 27만 명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데, 임신부는 이 집단에 해당하더라도 백신을 접종받을 수 없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우선순위더라도 접종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27만 명도 임신부가 포함된 수치는 아니”라고 말했다.
정부와 학계 입장은 다소 궤를 달리하게 됐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비즈한국에 “학회 입장으로는 임신부가 병원 고위험 부서에서 근무하거나 고위험 기저 질환자 등 접종 우선순위에 있다면 접종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판단한다”며 “지금까지 개발된 코로나19 백신은 생균백신이 아니므로, 이미 임산부가 접종받고 있는 독감 등 기존의 다른 질병에 대한 백신의 예에서 보듯 태아에 대한 위험이 임신이라고 해서 더 큰 위험을 주지 않으리라 본다. 오히려 코로나에 확진됐을 때 임신부와 태아에 대한 위험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답했다.
죽은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사백신’인 독감 백신처럼 코로나 백신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국내에 가장 먼저 도입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항원(바이러스)을 이용한다. 침팬지에게만 감염되는 아데노바이러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표면 항원 유전자를 넣어 배양 생산한 후 사람 세포 안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1분기에 50만 명분, 2분기에 300만 명분 들어올 예정인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바이러스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코로나19 항원 유전자 성분을 체내에 미리 만들어 면역력을 생성한다. 16일 2000만 명분에 대한 계약 체결이 확정된 노바백스 백신은 재조합 기술로 변형시킨 항원 단백질을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해외에서도 임신부 접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면서 일각에서는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임신부를 코로나19 취약 그룹으로 묶으면서 임신부 접종을 권고했다. 코로나 백신을 임신부에게 접종할 때의 안전성 정보는 제한적이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임신부의 조산 위험이 크다고 본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당초 임신부 접종을 금지했다가 위험성이 높은 임신부는 의사와 상의 하에 접종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임산부가 백신 대상자에 포함됐지만 영국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해외에서는 수유 중에도 백신 접종을 권고한다. 백신이 개발될 때 임신부에 관해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 임신부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질환의 중증 정도 등을 의사와 충분히 상담해 접종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임상 근거에 좀 더 무게를 실은 태도를 고수했다.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 대상에 임신부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지난 10일 식약처 최종점검위원회는 “백신의 사용으로 인한 유익성이 위험성을 상회한 경우 접종이 가능하나 임신 기간 중 백신 접종은 권장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예외를 뒀긴 하지만 태아 안전성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은 접종을 권장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신부 접종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아직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식약처에 따르면 현장에서 임신부 접종이 옳다는 의견이 나오면 질병청 예방접종관리위원회가 접종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백신 접종에 대한 유익성이 위험성을 어떤 경우 능가하는 것인지를 무 자르듯 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례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포함해 절차가 마련지지 않았다. 질병청 관계자는 “아직 부서에서 검토 단계에 있다. 접종대상에서 제외가 된다는 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다. 식약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 현장에 재량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안 맞았으면 하는 입장이다. 관련 절차는 질병청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만 65세 노인 접종도 보류…의료계 전문가들 입장은 엇갈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안전한 접종’이라는 정부 입장은 ‘아스트라제네카 고령층 접종 논란’에서도 변함없었다. 15일 정부는 요양병원·시설 등 입소자 및 종사자 중 만 65세 이상 노인 접종은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접종 최우선 순위였던 요양병원, 노인요양시설, 정신요양·재활시설 전체 입소자와 종사자 64만 8855명 중 42%가량인 27만 2131명에 대해서만 접종이 우선 시행된다.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스웨덴 등은 65세 미만 접종을 권고하고 영국·인도·멕시코 등은 모든 성인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허용했는데, 우리나라는 전자를 따랐다.
질병청의 이 같은 판단은 아스트라제네카 임상 참여자 8895명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7.4%(660명)에 불과해 유효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은경 질병청장은 15일 브리핑에서 “방역 당국 입장에서도 안타깝지만 효과에 대한 좀 더 확실한 근거 기반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미국 임상시험 중간결과 및 최종결과와 이미 접종한 나라에서의 효과 평가 등을 모두 고려할 계획”이라며 3월 말쯤이 추가 임상 정보를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발표를 두고 의료계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소 엇갈린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65세 이상 고령층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과학적 근거는 이미 충분하다고 봤다. 정재훈 교수는 “백신 면역 효과가 특정한 나이를 기점으로 떨어지는 사례는 보지 못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임상 자료를 보면 65세 이상에 대해 항체 형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범주에 있다. 만약 65세 이상에서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려면 20세보다는 30세가, 30세보다는 40세 그룹의 효과가 낮아지는 등 계단식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 상황이 크게 심각하지 않으니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질병청과 식약처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질병청 발표는 지난 10일 식약처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허가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도 접종을 허용하되 의료진이 대상자의 상태에 따라 판단하라고 결정한 내용과 상반된다. 식약처는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안전성과 면역반응 측면에서 문제가 없지만 통계적 검증을 위해 추가적 자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18세 이상으로 허가하되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기재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임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청소년도 국내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만 18세 이상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6∼17세 3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을 진행한다고 13일 발표했지만 아직 접종 전이라 임상 결과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 각각 16세와 18세 이상에 대해 백신 허가를 받은 화이자와 모더나도 아동용 백신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대한소아청소년학회는 “소아·청소년은 성인보다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낮고 중증으로 진행할 연령이 아니다. 백신 접종을 위해서는 소아청소년 연령에서의 백신 임상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며 정부와 같은 입장을 표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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