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610년 여름 갈릴레오는 토성을 관측했다. 그는 토성 양옆의 작은 점 두 개를 발견했다. 앞서 목성 곁에서도 위성 네 개가 맴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갈릴레오는 이번에도 토성 곁을 도는 위성 두 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 여름에 다시 토성을 관측했을 때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번엔 작은 점 두 개가 아니라 주전자 손잡이처럼 휘어진 곡선이 토성 양옆에 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른 행성에서 본 적 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모습이었다. 갈릴레오는 토성 양옆에 ‘귀’가 달려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토성은 관측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떤 때는 토성 양옆에 작은 점 두 개가 보였고, 어떤 때는 주전자 손잡이 같은 게 양쪽에 붙어 있었다. 또 어떤 때에는 양옆에 있는 작은 점이나 주전자 손잡이가 모두 사라지고 깔끔한 원반만 보일 때도 있었다.
이렇게 토성이 계속 변신을 한 이유는 고리를 가진 토성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토성은 공전 궤도면에 대해서 약 27도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지구에서 봤을 때 토성의 고리가 크게 기울어져 있으면 양옆에 귀나 손잡이가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에서 봤을 때 토성 고리가 기울지 않았을 때에는 얇은 토성 고리가 사라진 듯 토성의 둥근 몸체만 보인다.
커다란 밀짚모자를 살짝 기울여 쓴 채 고개를 돌리면서 멋을 뽐내는 것처럼, 토성은 살짝 기울어진 자전축을 유지하면서 고리의 멋진 모습을 다양한 방향으로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런데 자신의 미모에 흠뻑 빠진 토성의 ‘자뻑’이 너무 지나친 탓일까? 최근 천문학자들의 새로운 관측에 따르면 토성의 자전축은 서서히 더 기울어지고 있다. 어쩌면 토성은 결국 천왕성처럼 자전축이 거의 수직으로 드러눕게 될지도 모른다.
토성도 결국 천왕성처럼 완전히 드러눕게 될지도 모른다! 과연 태양계 행성들이 보여주는 단체 ‘눕방’은 어떤 모습일까?
#태양계 행성들의 ‘삐딱하게’
별 곁을 맴도는 행성들은 대부분 중심 별과 비슷한 방향으로 돌고 있다. 모두 원래 하나의 거대한 가스 구름이 수축하면서 만들어진 형제들이기 때문에 초기 분자 구름의 각운동량을 공유한다. 갓 만들어진 초창기의 태양계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약 40억~50억 년 전 초기에는 태양계 행성들의 궤도가 훨씬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에 행성 간 중력 힘겨루기가 빈번했다. 또 크고 작은 충돌로 인해 그 여파로 행성들의 자전축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우리 지구 역시 약 45억 년 전 달을 만들어준 거대한 충돌로 인해서 자전축이 약 23도 기울어졌다. 지구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채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덕분에 시기에 따라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에 비치는 태양 에너지가 달라진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계절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45억 년 전 벌어졌던 거대한 충돌은 지구에게 크고 밝은 보름달뿐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부한 사계절도 선물해준 셈이다.
금성과 천왕성의 경우에는 다른 행성에 비해서 훨씬 과격한 충돌을 겪은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금성은 다른 행성들에 비해 자전축이 거의 180도 가까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어져 있다. 그래서 다른 행성들과 달리 금성만 정반대 방향으로 자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왕성은 거의 90도에 가깝게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다. 말 그대로 자전축이 거의 드러누워 있다. 그래서 천왕성이 공전과 자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 바닥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처럼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천왕성에 지구 정도 크기의 커다란 암석 행성체 두 개가 위아래로 연달아 충돌한 결과 천왕성이 이처럼 드러누운 채 태양계를 굴러다니고 있다고 추정한다.
천왕성에 벌어진 거대한 충돌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이 충돌의 여파로 천왕성은 내부에 품고 있던 다량의 질량을 잃어버리면서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온도가 낮은 행성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토성 역시 이런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의 기울기로 자전축이 기울어졌을 것이라 생각했다. 약 40억 년 전 토성에 훨씬 가까웠던 천왕성과 해왕성이 강한 중력으로 토성과 서서히 궤도 공명을 이루었고 천왕성과 해왕성은 훨씬 바깥 태양계 외곽으로 멀리 벗어났다. 그 과정을 통해 초창기 때부터 이미 토성의 자전축은 약 26~27도 정도 기울어졌고 그 이후 큰 변화 없이 지금까지 그 모습을 쭉 유지해왔을 것이라 생각했다.
#타이탄이 너무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13년간 토성 곁을 외롭게 지킨 카시니 탐사선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2006년 2월에서 2016년 8월까지 10년 동안 카시니 탐사선은 토성의 가장 큰 위성 타이탄에 아주 가까이 접근하는 초근접 비행을 총 열 번 했다. 탐사선은 토성과 타이탄 사이를 지나가며 동시에 토성과 타이탄의 중력을 측정했다. 이를 통해 카시니 탐사선은 타이탄이 정확하게 토성 곁에서 어떻게 궤도를 그리고 있는지를 잴 수 있었다.
측정 결과 놀랍게도 타이탄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점차 토성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타이탄의 궤도는 1년에 약 11cm씩 넓어지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해마다 빼빼로 과자 하나 정도 길이로 계속 타이탄의 궤도가 넓어지고 있다. 타이탄뿐 아니라 토성 곁을 맴도는 레아, 디오네, 테티스, 미마스 등 다른 위성들도 토성 곁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 약 40억 년 전 타이탄을 비롯한 이 위성들은 지금보다 절반 수준으로 토성에 더 바짝 붙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긴 시간 동안 꾸준히 토성에서 멀어진 결과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위성들이 토성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건 토성이 역학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란 것을 이야기한다. 토성은 오래전 천왕성이 태양계 외곽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그때부터 이미 27도로 기울어진 채 지금까지 그 각도를 유지해온 것이 아니었다. 40억 년 전 태양계 외곽으로 이주한 천왕성이 토성에게 가한 영향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토성은 겨우 3도 미만의 작은 각도로 살짝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40억 년간 토성의 위성들이 토성에서 빠르게 멀어지면서 토성은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고 있는 팽이가 서서히 넓어진다고 생각해보자. 회전 반경이 너무 길어진 팽이는 점차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할 것이다. 토성도 점차 위성이 멀어지면서 쓰러지는 팽이처럼 서서히 중심을 잃고 자전축이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이 격렬한 세차 운동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결국 토성의 자전축은 현재의 27도 수준까지 기울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토성의 위성들은 지금도 꾸준히 토성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만큼 토성의 자전축도 꾸준히 더 기울어지는 중이다. 천문학자들은 앞으로 수십억 년이 더 지나면 토성의 자전축이 지금의 두 배 수준인 약 60도 가까이 크게 기울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미래가 된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모습의 토성 고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의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토성 고리 자체가 수억 년 안에 소멸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십억 년이 흐르고 나면 토성의 고리가 아예 사라져 지구에서 봤을 때 토성의 자전축이 60도 가까이 크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트레이드마크인 거대한 밀짚모자를 벗은 채 거의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토성이라니…. 어쨌든 태양계의 미래는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일 것 같다.
토성의 고리는 앞으로 수억 년 안에 서서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멋진 고리를 뽐내던 토성의 짧은 ‘리즈 시절’은 머지않아 끝나게 될 것이다.
#토성도 목성도 모두 드러눕고 있다
목성에서도 토성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목성 곁을 맴도는 가장 큰 위성 넷,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이 갈릴레이 위성들도 목성 곁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그래서 목성의 자전축도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격렬한 세차 운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이러한 위성들의 탈주가 꾸준히 진행된다면, 현재 겨우 3도 기울어진 목성의 자전축도 50억 년 뒤 약 30도 수준으로 훨씬 크게 기울게 된다.
지금도 목성과 토성은 더 바깥에 있는 천왕성의 중력 영향을 꾸준히 받고 있다. 하지만 목성과 토성 곁에 위성들이 바짝 붙어서 빠르게 맴돌고 있을 때에는 위성들의 강한 회전 덕분에 천왕성의 간섭을 잘 견딘다. 아주 빠르게 쌩쌩 돌고 있는 팽이를 살짝 건드려도 잘 쓰러지지 않고 계속 회전축을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서서히 위성들이 멀리 벗어나면서 회전 모멘텀이 느슨해지면 행성의 자전도 느려지고 자전축이 계속 안정적으로 서 있기 어려워진다. 서서히 느려진 팽이는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듯이 말이다. 결국 위성들이 아주 멀리 벗어난 목성과 토성은 천왕성의 중력에 의한 섭동을 더 강하게 받으면서 자전축이 크게 기울고 거의 드러눕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큰 충돌로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먼저 눕기의 맛을 본 천왕성이 결국 목성과 토성도 모두 함께 드러눕도록 계속 꼬드기고 있는 셈이다.
우리 지구 역시 지구와 달 사이의 꾸준한 조석 마찰로 인해서 지구의 자전은 느려지고 달은 조금씩 지구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이러한 달-지구의 이별이 계속 진행된다면 지구도 자전축 경사를 유지하지 못한 채 점차 더 기울게 될 것이다. 그렇게 수십억 년 뒤 위성을 거느리고 있던 대부분의 행성들은 모두 위성을 멀리 떠나보내고 크게 기울어져서 태양 주변을 누운 채 맴돌게 될지 모른다.
수십억 년 뒤 먼 미래 모든 행성이 ‘눕방’을 찍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시기의 태양계가 되지 않을까? 아마 그날이 온다면 100억 년 가까이 바쁘게 태양 주변을 맴돌며 그간 고생했던 태양계 행성들이 비대하게 부풀어 오른 태양의 최후를 바라보며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
http://www.cnrs.fr/en/saturns-tilt-caused-its-moon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01284-x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0-1120-5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20/08/aa38432-20/aa38432-20.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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