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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약 스토리] 전문 제약기업의 탄생, 100년 맞는 유한양행·삼성제약

민족기업·합성의약품·신약 등 저마다 차별화 전략…"향후 ESG 기업, 신약 개발 능력 주목받을 것"

2021.02.04(Thu) 15:50:09

[비즈한국]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제약 산업은 기초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카피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즈한국’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제약 산업이 지닌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

 

1897년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이 설립돼 우리나라 최초 신약인 활명수가 세상에 등장하며 근대 제약 산업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일제에 통치권을 잃은 경술국치 상황에서도 1903년 제생당약국, 1913년 조선매약 주식회사와 천일약품 등 조선인이 세운 매약기업이 속속 등장했다. 매약은 전통 한의학 처방을 토대로 서양 약품을 배합한 것인데, 당시 매약의 수익률은 500%에 달해 유망한 업종으로 손꼽혔다고 한다.

 

“조선 약업자들의 기민함도 일본 약업자들 못지않았다.” ‘식민지 조선의 식물 연구’ 논문에서 1910년대 약업 상황은 이렇게 표현됐다. 일본 약업자들과의 경쟁이 심해졌지만 조선 한약업자들도 매약업에 뛰어들며 구축해놓은 국제 무역망을 토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제정한 약품영업취체규칙을 통해 매약과 매약업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다. 일제는 직접 병원과 상점 등에 찾아와 약품을 검사했고, 경찰과 헌병 부대도 조선 약업자를 불러 모아 주의를 주었다.

 

​일제는 직접 병원과 상점 등에 찾아와 약품을 검사했고, 경찰과 헌병 부대도 조선 약업자를 불러 모아 주의를 주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의사들이 내과 회진하는 모습. 사진=한국의사100년기념재단 홈페이지


그러나 당시 조선총독부의 약업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제약 산업이 성장할 기회가 조성됐다고 한다. ‘한말~일제 초 근대적 약업 환경과 한약업자의 대응’ 논문에서 양정필 교수는 “총독부는 약업 관련 법령을 제정했지만 당시 조선 약업계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약업 정책 자체가 서구 약학의 급속한 도입을 추진하지 않아 전통적 기반이 강한 한약업과 매약업자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치료제 시대 연 유한양행·금강제약·삼성제약

 

이는 길고 긴 일제강점기 시대 국내 제약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한 배경이 됐다. 총독부가 민간인의 홍삼 제조와 수출을 엄격히 관리하자 조선 약업자들은 백삼을 개발해내는 등 연구개발에 힘썼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 초기 1926년 유한양행과 1929년 금강제약과 삼성제약 등이 탄생하게 된다. 이 세 기업은 모두 자본금 10만 원 이상으로 설립된 제약사다. 기존에는 한약과 환 등에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약이 주를 이뤘다면, 이들 제약사가 등장하면서 수입의약품과 합성의약품 등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유한양행은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잃어버린 주권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세운 기업이다. 미국에서 살아온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숙주나물 사업을 벌이다 사업 확장을 위해 1922년 대학 동창 월레스 스미스와 식품회사 ‘라초이’를 설립한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1925년 라초이 관련 업무로 잠시 우리나라에 귀국했다가 “민족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1926년 영구 귀국한 유일한 박사가 식품 회사에서 받은 몫인 25만 달러로 의약품을 구입해 미국 기업들의 약품을 수입 및 공급하기 시작한 게 유한양행의 탄생 배경이다.

 

1926년 영구 귀국한 유일한 박사가 식품 회사에서 받은 몫인 25만 달러로 의약품을 구입해 미국 기업들의 약품을 수입 및 공급하기 시작한 게 유한양행의 탄생 배경이다. 사진=유한양행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유한양행은 1936년 6월 주식회사로 회사 형태를 바꿀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1937년부터는 해외로 제품을 수출했다. 유한양행의 전략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약을 공급하고 자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피부병·결핵 등 당시 한국인에게 만연한 질병 치료제를 미국에서 들여와 공급한 데 이어 1934년에는 독일의 도마크 박사가 발명한 항생제 신약인 ‘프론토질’을 도입했다. 앞서 1933년에는 자체 개발의약품인 ‘안티프라민’도 내놨다. 민간요법에 많이 의지하던 당시 우리 국민에게 안티프라민은 필수상비약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유한양행은 아보트사 등 미국 제약기업은 물론 프랑스·영국·독일 제약회사와도 거래 관계를 구축하며 기업을 키워나갔다.

 

동화약품이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는 부채표 상표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인식되는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면, 유한양행도 ‘민족을 위한 기업’임을 강조했다. ‘의사는 당신의 친구’라는 제목으로 유한양행이 실은 최초의 계몽 광고가 유명한 사례다. 의약품 과장 광고가 비일비재하던 1920년대 제품의 효능만 간단히 적어 의약품 오·남용을 막자는 취지로 광고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유한양행은 의약품뿐 아니라 위생용품과 농기구 등을 수입해 공급하고, 교육과 공익사업도 펼쳐 ‘공유가치경영(CSV)’ 기업의 시초로도 평가받는다.

 

1928년 동아일보에 실린 유한양행 최초 광고. 사진=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유한양행과 비슷한 시기 금강제약과 삼성제약도 설립됐다. 각 제약사의 전략도 저마다 달랐다. 일본의 약방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던 전용순은 1929년 경성약화학연구소(금강제약)를 세웠고 1938년 매독(성병) 치료제 살바르산을 합성하는 데 성공해 국내 최초 합성 신약을 내놓게 된다. 유한양행이 매약 시대를 치료제 시대로 바꿔놓았다면, 금강제약은 약다운 약을 만든 제약사로 평가받는다. 삼성제약은 1929년 조선약학교 출신 김종건이 신약제제 30여 종을 허가받으며 제약업계에 발을 들였다.

 

#명성 이어가는 유한양행, 상황 역전된 금강제약과 삼성제약

 

창립 100년을 바라보는 이들 기업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유한양행은 매년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외형이 성장했다. 2020년 매출 기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란 분석이 나오지만, 유한양행은 이미 지난해 3분기 기준 1조 1584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약품사업부문의 비중이 70%로 가장 높은데 특히 처방의약품 비중이 60%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과 독일 등 해외 제약사와 거래 관계를 구축한 것처럼, 지금도 유한양행은 다수 다국적 제약사와 라이선스아웃(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유한양행이 만든 기술을 해외에 팔았다는 말인데, 유한양행은 2018년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와 미국 얀센 바이오테크에 각각 퇴행성디스크질환치료제와 표적 항암 치료제 기술을 판 데 이어 2019년에는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염 치료제 기술을 이전했다. 현재 유한양행이 맺은 라이선스 계약은 5개이고 총 계약금액은 35억 3865만 달러(약 3조 9509억 원)에 달한다. 지난 1월엔 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31호 국산 신약으로 조건부 허가됐다. 

 

삼성제약 연구소. 사진=삼성제약 홈페이지


금강제약과 삼성제약 사이엔 반전이 있다. 과거 일제의 기업 정비령으로 진통제 판매가 금강제약에 통합되며, 삼성제약은 울며 겨자먹기로 신제품을 생산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기회를 뺏긴 셈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건 금강제약이 먼저다. 금강제약은 1947년 포도당 주사액 ‘후르덱신’ 사망 사건이 결정타가 됐다. 서울 중구의 한 병원 환자와 경찰서 취객이 금강제약이 생산하던 후르덱신을 맞고 사망하거나 부작용에 시달린 것이다. 당시 주사제가 문제임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논란이 커지며 이듬해인 1948년 금강제약은 폐업에 이르렀다.

 

삼성제약은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지만 역사에 비해 외형이 크지 않다. 2010년부터 연 매출 400억 원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제약이 건강기능식품과 호텔 사업 등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과거 신약으로 승부를 보려 했던 삼성제약이 임상 중인 신약은 췌장암 치료제 리아백스주 하나다. 그마저도 삼성제약이 이 약에 대한 임상결과 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허가가 취소되는 상황을 맞았다. 삼성제약은 지난해 28일 공시를 통해 임상시험 최종 결과보고서가 완료돼 추후 논문을 통해 세부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약사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리라는 의견이 나온다. 임시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과거와 현재 명성이 자자한, 혹은 국민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제약기업 특징은 같은 듯 다르다. 우선 앞으로는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약사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리라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 의약품 자체가 없어 고통 받은 국민의 모습과, 현재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국민의 모습이 닮았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상황에서 효과적인 치료제나 백신을 빠르게 개발해내는 제약사가 점점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 년 전 ‘민족 기업’이 주목받은 것처럼 앞으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펼치는 기업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현재 ESG라는 비재무적가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기업경영의 투명성, 사회공헌, 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 역할이 강조될 듯하다”고 했다. 제약기업에 신약 개발 능력은 시대에 상관없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관계자는 “희소 질환 등 기존 치료제가 아직 부족한 영역에서 신약 개발을 진행해 성과를 내는 기업, 그리고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빅파마와 나란히 경쟁하는 기업이 주목받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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