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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차입경영으로 빛바랜 유통혁명, 뉴코아그룹

1990년대 말 백화점 부지 30여 개 마련…부채 의존 경영으로 IMF 때 법정관리

2021.01.28(Thu) 18:27:03

[비즈한국] ‘더 많이 더 싸게’.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할인마트들의 판매 전략이다. ‘박리다매’로 익숙한 이 전략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들보다 10년 넘게 앞서 ​박리다매를 ​외친 기업이 있었다. ‘뉴코아’는 1980년 시장에 진출해 5개월 만에 일 매출 1000만 원을 넘어서며 유통시장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엿봤다. 1993년 모기업에서 분가해 나온 뉴코아그룹은 3년 만에 재계 29위에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이제는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는 잠원동 뉴코아 아울렛 강남점. 사진=박정훈 기자


#일 잘하던 직원, 회장님 사위로 들어가다

 

김의철 뉴코아그룹 창업주는 ​1942년생으로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해 한신보일러에 몸담았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김의철은 1969년 한신공영으로 자리를 옮기며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한신공영은 건설업을 영위하며 대규모 아파트 분양, 중동건설 붐을 타고 크게 성장한 기업이다.

 

김의철은 건설과 부동산을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고 한다. 회사 경비절감, 공개입찰 승리 등 굵직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며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 눈에 띄었고, 입사 2년 만에 과장 자리에 올랐다. 김형종 창업주의 사위로 들어가면서 그는 한신공영에서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한다.

 

김의철의 안목이 드러난 것은 반포 일대의 땅을 매입해 아파트를 분양하면서다. 1970년 당시 강남이 개발되지 않은 때라 대부분의 직원이 염려하며 토지 매입을 반대했다. 하지만 김의철은 토지 매입을 밀어붙였고, 사들인 토지에 ‘신반포아파트’를 건설했다. 신반포아파트는 1차부터 11차까지 만들어진 대규모 단지로, 한신공영은 이 분양으로 큰 수익을 거둔다. 

 

한신공영은 종합건설업체로 발돋움했고,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던 김의철은 아파트 내 상가를 활용하는 방안을 떠올린다. 1978년 12월 반포에서 30평 공간에 뉴코아슈퍼마켓을 설립해 유통업의 가능성을 엿봤고, 강남 개발이 한창 진행됨에 따라 백화점, 마켓 등 여러 유통업체들의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해 유통업에 진출했다.

 

1980년 12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에 9000평 규모의 뉴코아쇼핑센터를 설립했고, 1층에 슈퍼마켓을 마련해 김의철 본인이 직접 운영했다. 이 슈퍼마켓은 개점 5개월 만에 일 매출 1000만 원을 넘는 등 큰 수익을 남겼다.

 

한편 부동산과 건설업에 안목을 보인 그가 유통업에 관심 가진 이유 중 하나는 김형종 ​한신공영 ​창업주가 장남 김태형에게 경영권을 승계했기 때문이다. 유통업에서도 두각을 보인 김의철은 1981년 4월 (주)뉴코아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1983년 김형종 창업주가 사망하고 전무이던 김태형이 한신공영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한신공영과 뉴코아는 독립경영 궤도에 오른다. 

 

#뉴코아는 성장하는데…시스템 부재와 차입 경영에 의존

 

한신공영과 뉴코아의 독립경영은 백화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코아그룹은 ‘뉴코아’를 백화점에 붙여 사용하며 반포점 등 5개의 백화점을 운영했다. 한신공영은 별도로 유통사업부를 두고 ‘한신코아’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해 백화점을 운영했다. 

 

뉴코아그룹은 ‘킴스클럽’과 더불어 1990년 소비 생활 변화에 맞춰 백화점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셔틀버스까지 운영하며 고객을 끌어들여 크게 성장한다. 1993년 한신공영에서 완전히 분가한 뉴코아그룹은 박리다매를 토대로 1994년부터 3년간 17개의 점포를 여는 등 급격히 성장했고, 뉴코아는 메이저 백화점으로 위상을 떨친다. 

 

1996년 뉴코아그룹은 18개 계열사를 두고 재계 27위에 올랐다. 하지만 김의철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의철 회장은 양적 성장을 목표로 유통업에서 가장 중요한 입지를 선점해 점차 점포를 늘려나갈 준비를 했다. 이렇게 마련한 부지가 30개가 넘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 차입에 의존해 마련했다.

 

여기에 공사를 진행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에 차입 규모는 점차 불어났다. 뉴코아그룹의 자본금은 2117억 원, 매출액은 2조 2788억 원이었다. 하지만 부채총액이 2조 5912억 원, 부채비율이 1223%에 달했다. 심지어 국내외 대기업의 유통시장 진출로 대형마트, 백화점 시장의 파이는 줄어들고 있었다. 

 

뉴코아그룹은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난 알짜배기 계열사도 없었기에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김의철 회장은 현금 확보를 위해 40일간 초장기 바겐세일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미 막대한 손해가 뉴코아그룹을 옥죄고 있었다.

 

2000년 8월 21일 사기, 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김의철 전 뉴코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결국 외환위기까지 겹치며 회사를 지탱하기 어려워진 ​김의철 회장은 1997년 11월 부도를 신청했다. 재계 27위 뉴코아그룹은 부도신청 때까지 전산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주먹구구식으로 경영한 셈이다. 2003년 뉴코아는 이랜드에 인수됐고, 2004년 6월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김의철 전 회장은 357억 원을 대출 받아 빼돌리고 1억 5000만 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002년 징역 2년과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03년 허위 제무제표 작성을 통해 1490억 원을 대출 받고, 1374억 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김의철 전 회장은 이후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지금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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