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코로나19 이후 재편될 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으로 자회사인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로 구성된 통합 LCC 등장이 예고됐기 때문. 전문가들은 이르면 연내 통합 LCC가 출범하고 이후 시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내다본다. 나머지 LCC들의 인수합병이나 도산 위기 가능성도 흘러나오면서 ‘신생 항공사 죽이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점유율 기준에 따라 합병 승인 가능성 충분
LCC 시장 재편설의 발단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다. 이들 두 대형항공사(FSC)는 인수절차 마지막 단계인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과정을 밟고 있다. 공정위는 두 항공사가 결합할 시 독과점 심화와 경쟁제한성 여부를 살펴본다. 독과점이 심화되더라도 인수대상 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인수합병이 통과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을 입증하면 예외 사유에 해당할 수도 있다. 회생불가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기보다는 다른 기업이 인수해 생산능력을 높이는 방안이 옳다고 공정위가 판단하는 경우다.
관건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항공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시장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FSC와 LCC의 대체 가능성을 인정해 관련 시장을 넓게 보면 점유율이 줄어 기업결합을 불승인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시장이 획정되면 독과점 정도를 따져본다. 대한항공은 “두 기업의 인천공항 여객 슬롯(개별 항공사에 할당한 이·착륙 일자와 시간) 점유율이 38.5%”라고 밝혔지만, 이는 개별 노선 점유율이 아니어서 독과점 논란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항공업 인수합병에서 시장을 정할 때는 노선별 점유율이 기준이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 일본으로 가려는 승객이 편의성을 확보하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기업결합심사에서 공정위가 ‘경쟁제한 우려가 있으나 회생 불가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다만 아시아나항공이 회생 불가기업에 속할 가능성은 작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영업환경의 추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이 회생 불가기업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회생 불가능성은 기업결합으로 인한 경쟁 제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예외요건이라는 점에서 이 요건으로 승인하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초대형 항공 빅딜이 성사돼 그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로 된 통합 LCC가 출현할 거라는 예상이 적잖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연내 출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정위가 상반기 기업결합 심사를 발표하고 실사 등 과정이 순조롭게 돌아가면 올해 통합 LCC가 나오리라 본다. 일각에서는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반드시 극복되기 때문에 기종과 운수권(노선을 운항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유지하는 ‘버티기 전략’을 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복 노선 통합 정리 및 기종 단일화 등 현실적인 부분에 대한 고려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세 개 회사가 통합하는데 굳이 운항이나 자제 관리 인력 등을 중복으로 둘 필요가 없다. 또 중복 노선에 대한 정리도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대한항공 계열인 진에어의 주력 기종은 보잉 B737이고, 아시아나항공 계열인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은 에어버스 A320이다. 기종을 통일하지 않으면 조종사·정비사·승무원 등 교육도 번거롭고 그에 따른 비용도 늘 수밖에 없다. 김포-제주, 김포-부산, 인천-오사카 등 중복 노선도 적잖다. 다만 지난 12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고 못 박았다.
#슬롯 재분배 기대되지만 소비자 뺏길 우려도…신생 항공사들 볼멘소리
통합 LCC의 등장으로 다른 LCC 업체가 타격을 입을 건 분명하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1~12월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국적 LCC 시장 여객 점유율은 각각 21.0%, 18.5%, 5.6%로 집계됐다. 합쳐서 45.1%다. 제주항공(26.7%), 티웨이항공(22.6%), 이스타항공(4.8%), 플라이강원(0.7%)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세 기업의 매출도 2019년 기준 2조 원(진에어 9101억 원, 에어부산 6331억 원, 에어서울 2335억 원)에 달한다.
허희영 교수는 “통합 LCC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어 다른 LCC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좋은 슬롯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단가를 낮추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소비자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윤식 교수는 “LCC 시장에는 충성 고객이 많지 않다. LCC 이용 승객들은 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통합 LCC가 저렴한 항공권을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이동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일부 LCC 기업들은 ‘중·장거리 노선’ 확보로 활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중·대형기 도입을 통한 노선 다각화 전략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플라이강원 관계자는 “다음 달 유상증자와 이미 확보된 60억 원 정도의 강원도 운항장려금을 통해 내년 2분기까지 운영자금을 마련하려 한다. 이를 토대로 중·장거리 노선을 운행할 기종을 들여올 계획이다”고 했다. 에어프레미아는 “특별한 전략은 없다. 기존 중·장거리 노선 확보라는 차별성을 그대로 가져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기에 국제선 회복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한계는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양도할 운수권이나 슬롯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4일 발행한 ‘대형항공사 M&A 관련 이슈와 쟁점’ 보고서에서 “양대 항공사가 높은 슬롯 점유율을 보유한 노선에서 비계열사 LCC들에 운수권이나 슬롯 등을 양도하는 조치를 통해 소비자 편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통합 LCC 출범 이후 전략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경쟁사가 줄어들고 중복 노선의 재배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앞서의 플라이강원 관계자도 “우리는 중국 등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관광)에 주력한다. 만약 관련된 노선을 하나라도 받으면 상당히 도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신생 LCC 사이에서는 한숨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에어로케이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이 합치는 건 기업의 오너리스크에서 촉발됐다. 원칙적으로는 자구 노력을 해야 하는데 독과점 위험에도 용인해준다는 점에서 억울한 면이 있다. 소비자로서도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며 “‘신생 LCC 죽이기’라는 생각도 든다. 통합 LCC에 대응할 별다른 전략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에서 운항 개시 시점을 맞추지 못하면 페널티를 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으로 안다. 대형 항공사 결합으로 항공업 살리겠다고 하지만 그러면 신생 LCC에도 똑같이 코로나19 특수성을 반영해 조건을 완화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나머지 LCC의 결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허희영 교수는 “LCC 업계에도 ‘몸집 키우기’ 경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제주항공이 주도하는 M&A 등이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항공사들은 “아직 논의된 바 없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통합 LCC 출범 전 일부 기업의 도산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신생 LCC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며 매각설까지 나돌고 있다. 정윤식 교수는 “일단 통합 LCC가 등장하기 전에는 LCC 시장의 큰 순위 변동 없이 지난해와 비슷한 흐름을 이어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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