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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경복궁 속 숨은 문화유산 찾기

불귀신 잡는 '드므',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 동궁전의 '뒷간'까지

2021.01.26(Tue) 15:25:37

[비즈한국]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가장 만만한 문화유적은 고궁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한 번으로 가기 편하고, 너른 마당이나 아기자기 꾸며 놓은 정원을 산책하며 역사의 숨결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은 어떨까. 경복궁은 현재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비대면 입장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미 가본 적이 있다고? 그렇다면 이번엔 경복궁 속 숨은 문화유산들을 찾아보자. 

 

코로나 이전 관광객들이 찾던 경복궁의 모습. 경복궁은 현재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비대면 입장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화마를 막아라! 근정전 드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은 누구나 익숙하다. 그렇다면 근정전 돌계단 한쪽에 있는 드므는 어떨까?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독’이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옛날 화로처럼 생긴 쇠독에 물 채워 두었다. 불을 막을 목적으로 궁궐의 중요 전각마다 두었다는데, 자그마한 크기에 물을 담아봐야 건물의 불을 끄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드므는 화재 진압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정전 돌계단 한쪽에 있는 드므. 화재를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드므란 ‘넓적하게 생긴 독’이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옛날 궁궐의 남쪽, 남산 넘어 관악산에는 불귀신 한 마리가 살았단다. 하루는 그놈이 경복궁으로 놀러 와서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근정전이 제일 멋지니 여기다 불을 한번 놔볼까?’ 했더란다. 그래 근정전 월대에 올라 막 불을 지르려 하는데, 드므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게 되었다. 이 불귀신은 태어나 한 번도 자기 얼굴을 본 적이 없없다. 흉측한 자기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 ‘아니 여긴 이미 무서운 놈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구나’ 하고는 다시 관악산으로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보물, 십장생굴뚝

 

근정전에 드므가 있다면 자경전에는 ‘십장생 굴뚝’이 있다. 자경전은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경복궁을 중건한 흥선대원군이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곳이다. 자신의 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만들어준 조 대비를 위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마운 조 대비를 위한 침전이니 돌 하나 나무 한 조각 소홀할 리가 없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보물 8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십장생 굴뚝’이다. 자경전 뒷마당에 있는 십장생 굴뚝은 글자 그대로 ‘십장생’을 새겨 넣은 굴뚝인데, 실제로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벽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걸작이다. 

 

자경전 뒷마당에 있는 보물 810호 ‘십장생 굴뚝’. 글자 그대로 ‘십장생’을 새겨 넣은 굴뚝인데, 실제로 연기를 뿜어내는 굴뚝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벽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는 걸작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기서 십장생이 무엇인지 아이와 함께 하나하나 확인해볼까? 겨울에도 푸르른 정절의 소나무, 선계(仙界)의 필수 아이템 구름, 500년을 살면 희게 된다는 사슴, 장생의 대명사 거북, 진시황이 찾아 헤맨 불로초, 신선이 타고 다닌 학, 영원히 밝은 해와 달, 변함없는 바위, 영원히 돌고 도는 물까지. 석류와 포도는 십장생에 들지는 않지만 씨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다산의 상징이라 같이 넣었단다. 

 

#단 하나 남아 있는 궁궐의 뒷간

 

세자가 살던 동궁 영역에는 빼먹지 말고 봐야 할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자선당 바깥에 있는, 경복궁에서 가장 자그마한 건물로 바로 궁궐의 ‘뒷간’이다. 임금님이야 전용 이동식 화장실인 ‘매화틀’을 사용하셨지만, 궁궐의 다른 사람들은 경복궁 곳곳에 있던 뒷간을 이용했단다. (사실 임금님도 가끔은 궁궐 뒷간을 이용하셨다고.) 원래 20여 곳이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동궁에 유일하게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기왕 화장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경복궁을 본 중국 관광객 중에 “이건 북경 자금성의 화장실만 한 크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자금성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일면(!) 수긍이 갈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두 가지 이유에서 어불성설이다. 

 

세자가 살던 동궁 영역에 있는 ‘뒷간’. 원래 20여 곳이 넘게 있었는데, 지금은 동궁에 유일하게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먼저 경복궁은 일제가 조직적으로 파괴하기 전에는 330여 동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찬 대규모의 궁궐이었다. 일부만이 복원된 지금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또 하나 더 중요한 이유는, 허허벌판에 무식하게(?) 크게만 들어선 자금성과는 달리 우리 경복궁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 건물 규모를 정했다는 사실이다. 경복궁은 ‘검소하면서도 부족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않은’ 궁궐이었다.

 

<여행메모>


경복궁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161

문의: 02-3700-3900

이용시간: 1~2월 09:00~17:00, 3~5월 09:00~18:00, 6~8월 09:00~18:30, 9~10월 09:00~18:00, 11~12월 09:00~17:00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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