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일이면 국내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꼭 1년이 된다. 그간 우리나라는 대규모 진단검사와 빠른 동선 추적, 적절한 치료가 바탕이 된 ‘K-방역’으로 코로나19 방역 모범 국가로 평가받았다. 진단키트와 진단 의료기기 등 K-방역 제품 수출이 크게 늘었고, 정부는 K-방역 모델의 국제 표준화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3차 대유행으로 접어들며 믿었던 방역체계에도 허점이 보이는 게 사실이다. 1년간 우리 방역체계는 어떻게 작동했으며, 우리는 이제 어떤 대책으로 전환해야 할까.
#‘K-방역’은 지난 1년간 어떻게 작동했나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이 첫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2월 17일까지 3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신천지 교회발 코로나19 대량 확산으로 신규 확진자가 하루에만 수백 명씩 나왔다. 정부는 전면적인 국경봉쇄 대신 방역으로 감염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3월 말 신규 확진자 수는 두 자릿수로, 4월 중순에는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지난 3월 스콧 고틀립(Scott Gottlieb) 전 미국 FDA(식품의약국) 국장은 “한국은 코로나19가 현명하고 공격적인 공중 보건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K-방역’은 해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우리와 같은 날 첫 확진자가 나온 미국은 3월 중순 신규 확진자 수 7000명, 누적 확진자 수 3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를 두고 외신은 한국과 미국의 방역 체계를 비교했다. 지난 3월 영국 가디언은 “한국과 미국의 유사점은 1월 20일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왔다는 데서 끝났다. 한 나라는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격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위기를 억제했다. 반대로 한 나라는 여행 금지 조치가 전부였고, 검사 부족은 집단 발병지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방역체계의 중심에는 ‘3T 모델’이 있었다. △대규모 진단 검사를 통해 확진자를 빠르게 분류하고(Test), △추적을 통해 감염 고리를 끊어내고(Trace), △확진자에게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Treatment)하는 전략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최초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가 늦어졌고,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 명단이 공개되지 않았고, △확진자의 접촉자에 대한 전수 조사가 지연돼 방역 조치가 늦어지면서 방역망이 뚫린 경험에서 비롯된 결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르스 사태 이후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평에 질병관리본부장이 차관급으로 격상되는 등 질병관리본부의 권한이 커졌다면, 코로나 사태 때는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돼 감염병 대응 역량을 키우는 데 더욱 집중하게 됐다.
우선 신속한 검사를 위해 정부는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후 20여 민간 업체를 모아 코로나19 진단기기 개발에 속도를 내달라고 주문했다. 또 이동형 선별진료소를 운영해 검사하는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방식도 도입했다. 감염을 최소화하면서 ‘조기 발견’을 늘린다는 취지였다. 당초 ‘여름이 되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 것’이라며 다소 안일하게 대응하던 외국에서도 한국의 검사 방법에 관심을 가지면서 수출도 크게 늘었다. ‘K-진단키트’ 대장 격인 씨젠은 2019년 대비 10배 정도 증가한 연 매출 1조 원을 기록했고, SD바이오센서는 상장을 추진 중이다.
12월부터는 수도권에 임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해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30분 만에 검사 결과가 나오는 신속항원검사와 침으로 검체를 채취하는 타액 PCR 검사도 새롭게 도입됐다. 기존엔 콧속에 면봉을 넣어 검체를 채취해 48시간 이내에 결과를 알려주는 ‘PCR 검사(비인두도말 유전자증폭 검사법)’만 시행됐다. 물론 신속항원검사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12월 14일부터 한 달간 수도권 확진자 중 11%가 이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되면서 2월 설 연휴 특별방역기간까지 운영 기간이 연장됐다.
역학·추적 단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이 주된 역할을 했다. 지난 3월 보건당국은 자가격리자 이탈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을 출시했고, 자가격리자가 증상을 입력하면 전담공무원이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또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이용내역을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정보 수집이 이뤄졌다. 개인 휴대전화에 하루에도 몇 번씩 코로나19 확진자가 어디를 다녀갔는지 안내하는 문자가 왔다. 그러나 자가격리자 안전보호 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 이동 경로 추적과 공개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 절차인 격리·치료 단계에서 정부가 택한 방식은 국경봉쇄나 록다운이 아닌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는 △1단계(생활 속 거리 두기) △1.5단계(지역적 유행 개시) △2단계(지역 유행 급속 전파, 전국적 확산 개시) △2.5단계(전국적 유행 본격화) △3단계(전국적 대유행)로 나뉘고, 이에 따라 방역 수칙이 달라진다. 보건당국은 확진자 증가 수 상황에 맞춰 해당 조치를 재정비했다. 또 3월부터 생활치료센터를 개소해 경증 확진자는 생활치료센터에서, 중증 확진자는 감염병 전담 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도록 했다. 18일부터는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도 운영을 시작했다.
#한 박자씩 늦는 정부 대응만…공공의료 확충 논의도 자취 감춰
전문가들은 지난 1년간 우리 방역체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는 “80점 이상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것 같다. 3T 체제가 빨리 정립됐고 지금도 3T 체제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강윤희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위원)는 “메르스 때의 교훈으로 이번에는 초기 대응이 빨랐다. 그 방식으로 3T 전략이 작동했고 지금도 이 방법이 유효하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소장은 “메르스와 달리 방역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동부구치소와 요양병원발 감염으로 12월부터 본격화된 3차 대유행 이후부턴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창보 대표는 “3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나왔다. 11월 20일 전후 대유행 징조가 보였고 12월 초에는 대유행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다수 확인됐다. 당시 전문가들이 중증 환자 폭증을 대비해 병상을 미리 준비하는 등 과감한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12월 18일에야 상급종합병원 등에 중환자 치료 병상을 확보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강윤희 전문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강 전문의는 “집단 감염이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르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고 정부가 뒤늦게 논의하는 행태가 반복됐다”며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는 워낙 초기라 차치하더라도, 최근 발생한 요양병원 병상 대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확진자 수에 따른 대응 시나리오가 있었다면 환자를 잃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18일과 19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이틀 연속 300명대를 기록했다. 확산세가 잦아들며 다소 숨통이 트이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이디 투렉(Heidi Tworek) 브리티시콜롬비아대 교수는 9월 발간한 ‘코로나19 기간의 민주적 건강 커뮤니케이션’ 보고서를 통해 “한국 방역체계의 성공은 효과적인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왔다. 정기적으로 최신의 정보와 명확한 메시지(정보)를 대중에게 전파했고 그것이 보건당국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을 높였다”며 우리나라 방역체계 성공 요인으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재 의료 시스템으로 몇 명의 집단감염에 대응할 수 있으며 보완책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 구체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계획’을 발표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것. 가짜 뉴스에 대응할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창보 대표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상온 노출 사태 당시 국민이 백신 접종을 불안해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때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음 달부터 국내에서도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만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나오지 않아 백신 접종을 두고도 아직 국민 사이에서는 여러 의문점이 혼재한 상황이다(관련기사 '한국은 언제?' 미국 CDC 코로나19 백신 접종 매뉴얼 살펴보니). 의료계에서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셀트리온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에 대한 임상2상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는 셀트리온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와 학술대회 발표가 전부라는 것. 김준현 소장은 “안전성·유효성과 관련한 정보제공이 투명해야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의료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국회가 의결한 올해 예산안에 따르면 공공병원 증축을 위한 설계 예산은 15억 원뿐이다. 신축 예산은 ‘0원’이다. 국내 보건당국은 감염병 전담병원을 중심축으로 하는 진료 체계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현 소장은 “권역에서의 전담병원 지정은 계속 지체됐다. 결국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공공 보건 의료 기반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김창보 대표는 “1, 2차 대유행 때는 ICT 기술로, 3차 대유행에서는 백신이나 치료제로 인해 공공 병상 확충 논의가 뒷전으로 밀렸다”며 “현장의 간호사와 의사 등 의료진이 비명을 지르며 감염관리에 투입돼 겨우 버텼다. 코로나19는 경증이나 무증상 환자가 많아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가 가능했지만, 다음 감염병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치료 방법이 보편적인 해법이 아닌 거다. 결국 기본기가 중요하다. 공공의료를 더욱 강화해야 하는데 지금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민의 사회·경제적 활동 제약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할 제도 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준현 소장은 “가족 돌봄이 필요한 경우 근로자의 가족 돌봄 휴가나 근로시간 단축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가족구성원의 질병이나 사고 외에 어린이집 휴원이나 정상적인 등교 지원 등에 따른 경우도 돌봄 사유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아프면 쉴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상병수당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만이 아니라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비전형 근로자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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